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크기변환]Britney spears 'the woman in me'.jpg

브리트니 스피어스 자서전 '더 우먼 인 미' 표지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1999년 'Baby one more time' 앨범으로 데뷔했으며, 앨범 발매와 동시에 전세계 약 2,500 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모방한 틴 팝 소녀가수들이 대거 생겨나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했으며, 10대 솔로 가수 최다 판매 앨범이라는 기록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크기변환]Britney spears 'toxic'.jpg

브리트니 스피어스 'Toxic' 뮤직비디오 中

 

 

데뷔 성공 이후 'Oops! I Did it again', 'Britney', 'In the zone', 'Blackout', 'Circus', 'Femme Fatale', 'Britney Jean', 'Glory' 등 앨범을 꾸준히 내며 활동했습니다. 그녀의 인기는 여전히 명실상부 하였으나, 그 속에서는 그녀의 아픔이 존재했습니다. 이후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회고록 '더 우먼 인 미'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리트니 VS 스피어스'를 통해 살펴본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브리트니는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고, 어머니에 의해 길러졌습니다. 이혼 이후 아버지와는 일절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머니는 브리트니의 노래 실력을 알아보았고 8살부터 여러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스타서치'에 출연하여 'Love can build a bridge'를 부르면서 얼굴이 알려져 광고 제의도 들어오며 유명해졌습니다. 이후 스타들의 등용문 프로그램이었던 '미키 마우스 클럽'에 선발되기도 하였으며, 몇 차례 데뷔 무산을 겪은 후 '자이브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한 후 솔로 데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담으로, 'Baby one more time'은 뮤직비디오가 인기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원래 소속사에서는 우주 괴물과 외계인을 물리치는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촬영하고자 했습니다. 브리트니는 이를 거부하고 방과후 여학생 컨셉으로 촬영하길 원했고, 이를 반영한 결과 대성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001년에는 마이클잭슨과 함께 'The way you make me feel'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브리트니는 2005년에서 2008년에 암울한 시기를 겪게 됩니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케빈과 결혼 후 두 아이를 낳았지만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케빈은 브리트니의 자금으로 자신의 앨범을 내기도 하였기 때문에 많은 비난에 시달렸지만, 브리트니 또한 많은 파파라치에게 시달려야했습니다. 브리트니는 각성제 애더럴을 복용중이었는데, 꽤 많은 이들이 애더럴을 복용하지만 양육권 소송 중이었던 브리트니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였고 양육권은 케빈에게 주어졌습니다. 끊임없는 스케쥴 강행, 양육권 소송, 케빈과의 이혼 등으로 인해 브리트니는 삭발을 하거나 타투를 하는 등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때 가장 브리트니를 돌봐주어야할 가족은, 오히려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 '성년후견 제도'를 택했습니다. 브리트니 어릴 적 이혼한 후 한번도 찾아오지 않던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가 갑작스럽게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J.에드워드 스파'박사를 통해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스스로 변호인을 고용하고 지명할 능력이 없다, 치매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등의 진단서를 얻어낸 후, 브리트니를 대상으로 '성년 후견 제도'를 시행하기 시작합니다.

 

성년 후견 제도(Conservatorship)란, 피후견인이 성년이 된 사람임에도, 스스로 자립하거나 생활할 능력이 없다고 보이는 경우, 후견인이 해당 피후견인을 돌봐주는 제도입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 대인관계, 직업, 업무 등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악용된 사례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제이미 스피어스 또한 브리트니의 재산으로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주목했습니다.

 

제이미 스피어스는 '브리트니가 정신적으로 쇠약해서 성년 후견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각종 투어와 엑스펙터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그녀의 정신적 압박감을 유발하지 않는다'며 브리트니를 투어에 참여하도록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브리트니는 후견인의 요구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으며, 제이미 스피어스는 브리트니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아이들을 더이상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대외적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LA투어 등등을 성공적으로 해내며, 성년 후견 제도를 통해 부활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그녀는 집 앞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먹고 싶어도 후견인의 허락을 받아야해서 최소 20분 이상의 대기를 해야했고, 하루 30분의 차 드라이브 또한 후견인의 허락과 감시 하에 정해진 경로로만 가능했습니다. 솔직한 인터뷰들도 매우 제한적이었고, 사람도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남은 인터뷰 혹은 공연 도중 남긴 말들 중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과 같은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상상해봐요. 그 많은 변호사와 의사. 매일 나를 분석하는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날 짓누르지 않으면 정말 자유롭고 나 자신다운 기분이 들 거예요."

 

- 브리트니 스피어스 인터뷰 中

 

 

또한, 친구에게 방송에서 읽어달라고 부탁하며 쓴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자필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었습니다.

 

 

The people controlling her life have maken 3 million dollars this year...as long as the people are getting paid and she has no rights, it could go on for a while, but it doesn't make it right at all.

브리트니의 삶을 통제하는 이들은 올해 3백만 달러를 벌었어요. 돈이 벌리고 브리트니에게 권리가 없는 한,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옳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given her brother a 2 million dollars apt, her mother an estate in Louisiana and her 4m the best job in father.

오빠에게 2백만달러짜리 아파트를 줬고, 엄마한테는 루이지애나의 저택을, 아버지한테는 연예게 최고의 직업을 줬어요.

 

She is a very giving person and would love to get a respect she deserves.

브리트니느 베푸는 걸 좋아하며 마땅히 존중받길 원합니다.

 

- 브리트니 자필 편지 中

 

 

그러나 이 편지는 성년 후견 관련인들에 의해 발표되지 못했으며, 해당 친구가 복사해둔 사본 외의 원본은 폐기되었습니다. 대개 성년 후견 제도에서는 피후견인을 위한 변호사도 마련해주기는 하지만, 그 변호사도 결국 성년 후견 제도가 유지되어야 후견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시스템이기에, 브리트니의 성년 후견 변호사 샘 잉엄은 브리트니가 성년 후견 제도를 끝내기를 원하는 것을 전달받았음에도, 모른 척 하며 성년 후견 제도를 이어나갔습니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에게는 여자친구 루테일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선망 받으며 '트라이스타'라는 회사를 운영중이었기에, 제이미 스피어스가 루테일러를 브리트니의 매니저로 지정했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가 브리트니를 잘 보살펴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루 테일러 또한 브리트니가 공연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이용해 재산을 불려나가기 바빴습니다.

 

2008년부터 성년 후견이 시행되었고, 브리트니는 이를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아버지 대신 자신의 약혼자 제이슨을 후견인 자리에 두려고 하였으나, 아버지는 후견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브리트니가 변호사를 고용하려고 해도, 성년 후견 제도를 들먹이며 '변호사를 고용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으로 매번 무산시켰습니다. 아버지는 브리트니 곁에 경호원들을 배치시켰고, 브리트니는 수영장 화장실에서 몰래 변호사 계약을 체결했으나, 해당 계약서의 서명이 브리트니의 서명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시 무산시켰습니다. 그리고 성년 후견 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브리트니가 투어를 돌도록 했으며, 2-3일 마다 다른 나라에 도착해서 공연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렇다면 브리트니는 어떻게 13년 만에 성년 후견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먼저, 브리트니가 성년 후견 제도에서 아버지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제이미 스피어스가 브리트니에게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겠다 협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이미 스피어스와의 만남을 거부했고, 브리트니의 전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케빈은 제이미 스피어스를 상대로 접근 금지 신청서를 내게 됩니다. 이로써 브리트니는 더이상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로부터 '아이들을 못 만나게 하겠다'는 협박을 듣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브리트니 공식 SNS 계정에 투어를 앞두고 '가족 건강 문제'로 투어를 취소하겠다는 글이 올라온 이후, 브리트니가 나타나지 않자, '브리트니 실종설'이 부각되게 됩니다. 이로써 대중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한 '성년 후견 제도'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대중은 '브리트니를 해방시키자'라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이후 브리트니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이 공개되면서 브리트니는 성년 후견 제도 종결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브리트니는 그렇게 2021년에, 13년 만에 성년 후견 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대중의 비난이 심해지나 성년 후견 제도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직하며 '업무에만 관여했을 뿐 성년 후견 제도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라며 발뺌했고, 사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샘잉엄은 브리트니 성년 후견 변호인으로서 3백만 달러를 벌고 난 뒤였습니다. 제이미 스피어스의 여자친구이자 브리트니의 매니저였던 루테일러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리트니VS스피어스' 제작진에게 '트라이어스 회사 언급 시 고소 하겠다' 등의 문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브리트니는 이에 대해 '현재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말했고, '이제 음악계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유령 작가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곡을 쓰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더 우먼 인 미'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재능이 많았지만, 가족들에게 착취당하던 브리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인에게 받는 상처보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성년 후견 제도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브리트니와 같은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보완책을 제시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