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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목표와 꿈을 세운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행운을 소망한다. 나 역시 새해 첫 곡으로 아일릿의 ‘Lucky Girl Syndrome’을 선곡하여 2025년의 럭키 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단순한 결심만으로는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덴마크 영화 ‘A Fortunate Man’은 이상과 현실, 그리고 결핍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더 나은 삶으로 가는 방향성과 통찰을 제시한다. 168분의 긴 상영시간을 3일간 이어보며 페르의 고통과 슬픔, 그를 둘러싼 억압적 세계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고, 2025년 신년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맞아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긴 여운 때문에 여전히 찝찝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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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르의 선택, 그 이면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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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는 'A Fortunate Man (2018)' 은 부와 성공을 좇아 가족을 떠난 공학도 페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에게 엄격한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오직 신을 섬겨야 한다는 집안의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은 공학도 페르는 가족을 떠나 코펜하겐에서 기술 혁신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성공에 집착할수록 그의 오만함과 결핍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자신을 지지해 주던 약혼자 야코베와의 관계 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페르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도망쳐온 가족적, 종교적 가치를 돌아보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페르는 안타깝게도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를 불행의 골짜기로 끌어당기는 선택을 반복한다. 특히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미숙한 모습을 보이며, 해소되지 않은 그의 내면적 결핍들은 영화 전반에서 드러난다. 그에게 있어서 특히 주목해야 할 관계는 크게 공학자 대령, 야코베, 그리고 영화 후반에서 그의 아들과의 관계이다.


공학자 대령 우선 가족을 떠나 코펜하겐으로 간 페르는 자신의 기술적 재능을 현실로 구현하고자 하는데,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프로젝트 재가 권한을 가진 대령에게 선택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령이 자신의 배경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모욕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예의 없는 말들을 내뱉는다. 이후 한 번 더 그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사과의 자리가 만들어졌지만,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오히려 역정을 냈고, 그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완전히 무산되었다.

 

약혼자 야코베 야코베는 페르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그의 인생에서 그를 가장 크게 지지한 인물이기도 했다. 야코베는 페르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가족들과 어떤 갈등을 겪었는지를 전부 알면서도 그를 수용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페르는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시골로 갔다가 새로운 여자 잉에르에게 마음을 뺏기게 된다. 그리고 코펜하겐에 돌아와 야코베와의 약혼을 파기하는 통보를 직접 전한다. 야코베는 임신한 상태였고 큰 충격에 빠졌으나,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수용하고 페르와 같이 가정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한다.


 

시데니우스 가문의 특징인가 보네. 자기 내면의 미숙한 감정을 감추는 거. 맙소사! 그건 허영심을 감출 뿐이지.

 

- 'A Fortunate Man'의 야코베의 대사 中

 

 

페르의 아들 코펜하겐에서의 모든 것을 청산한 페르는 잉에르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키운다. 유난히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을 가진 그의 아들에게 페르는 마치 자기 아버지처럼 더욱 엄격한 방식으로 훈육한다. 작업물을 망가뜨릴 뻔한 아이에게 크게 화를 내고, 아이는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 사과도 하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잉에르는 아이들에게 좀 더 친절히 대해달라고 부탁하고, 페르 역시 그런 자기의 모습에 복잡한 심경을 보인다.

 

이렇게 페르는 영화 전반에서 여러 인물과 관계를 맺는데,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어딘가 삐그덕거린다. 공학자 대령과의 관계에서는 유난히 권위와 전통에 대한 반발심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며, 이는 공손하거나 정중하지 못한 태도로 이어진다. 야코베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존심이 강한 페르는 야코베를 사랑하지만 자기의 경제적 계층과 사회 배경적 차이 때문에 계속해서 충돌한다. 야코베의 진심보다도 자신의 내면적 고통과 갈등을 우선시하는 그는 결국 야코베의 임신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그녀에게 일방적 약혼 파기 통보를 한다.

 

페르는 특정 상황을 맞닥뜨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핍이 반영된 반응을 보이고 만다. 공학자 대령과의 사건도, 야코베와의 관계에서도 바로 그 지점이 페르를 갈수록 고통과 좌절의 늪으로 이끌었다.

 

모든 관계에 있어 페르가 느끼는 절망적 감정이나 분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신의 결핍이 건드려졌을 때, 그는 자신을 더 이상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결핍의 가장 큰 맹점이다. 대체 그의 내면적 결핍은 무엇이길래 그의 삶을 이토록 힘들게 만든 것일까?

 

 

 

종교와 가족, 억압적 세계에서의 페르


 

인간관계 안에서 보이는 페르의 행동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의 결핍과 상처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가 전통적인 가족적, 종교적 가치와 개인적 야망 사이에서 겪는 가치관의 충돌은 그 행동을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몰아넣었다.


그가 가진 내면의 핵심 갈등은 개인과 가족, 사회라는 환경 간의 갈등이다. 작품은 19세기 말의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영화에서는 종교적 이념과 신념을 뚜렷하게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가치관의 갈등은 여전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지속되며, 영화의 인물들은 단순히 과거에 머문 인물들이 아니다.


특히 페르가 가진 가족적, 종교적 가치와 현실적 성공 사이의 갈등은 그의 내면적 투쟁을 다양한 차원에서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는 페르의 코펜하겐에서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코펜하겐에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쓴다. 돈이 없지만 부잣집 친구의 가족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돈이 없지만 양복점에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그의 가족 사이에 껴서 어떻게든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시데니우스 군, 돈은 자력과도 같네. 그 작은 금속 조각은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과 마음의 가장 고결한 흥분을 자아내지, 안 그런가?

 

- 'A Fortunate Man' 

 

 

중요한 점은 페르에게 있어 가족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는 사실상 동일한 억압으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페르에게 가족은 단순히 혈연의 울타리를 넘어 종교적 가치와 긴밀하게 연결된 억압적 구조이다. 따라서 페르의 고통은 단순히 개인적 욕망과 도덕적 신념 사이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억압적 구조에서 탈출하려는 일종의 몸부림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학문적 혹은 철학적 정의로 따지자면 가족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페르의 가족은 페르에게 사랑과 지지보다는 희생과 겸손이라는 종교적 도덕률을 강요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페르는 이 두 가지 가치를 결국 동일한 하나의 억압적, 전통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고, 영화 전반에서는 그가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포착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현실적 성취에 대한 욕망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전통적 가치와 대비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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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페르에게 있어 결과적으로 가족적 관계는 종교적 신념의 실체화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된다. 아버지의 냉정한 훈육과 가부장적 권위는 결국 신을 섬기고 받아들이기 위한 길을 가르치려는 것이지, 온전히 페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르의 갈등은 단순한 욕망과 도덕성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 가족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를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좀 더 복잡한 형태에 해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결국 아버지와 페르의 관계 또한 페르에게는 신과의 관계처럼 강제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고,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이유의 일부였던 셈이다. 페르는 그런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코펜하겐의 공학자 대령에게서도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가 대령에게 유난히 불손한 태도를 보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코펜하겐에서의 페르의 행동들은 진심으로 부와 명예를 좇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보다, 가족적 가치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근원적 갈망의 표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그의 인정 욕구나 자존심과 같은 여러 심리적 요인과 맞물려 점점 비극적인 선택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졌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와의 억압적 관계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시계'다. 이 시계는 과거 페르의 할아버지가 페르의 아버지를 위해 남긴 선물이었다. 이 시계에는 당시 어린애였던 페르의 아버지도 페르처럼 자기 아버지의 뜻을 오해하고 그를 거역했었지만, 그가 자기 가방에 넣어둔 선물인 시계를 발견하고 집으로 돌아가 용서를 빌었다는 일화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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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의 아버지는 페르가 집을 떠날 때도, 자신이 죽음을 앞두었을 때도 이 시계를 페르에게 주고자 했지만, 페르는 외면하고 거절했다. 그가 이 시계를 외면한 이유는 이 시계 자체가 페르에게 있어 하나의 억압적 전통 가치를 상징하며, 어쩌면 세대 간 반복되는 결핍 또한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페르는 영화 전반에서 다양한 인물과 관계를 맺지만, 그의 행동 사이사이에는 결국 이러한 결핍들이 불쑥 나타난다. 페르는 스스로가 ‘선택’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모든 선택은 결국 해소되지 않은 그의 결핍에서부터 비롯된다.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페르이지만 그의 행동이 안타깝게 느껴진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 수용의 불완전성



삶의 실패 속에서도 페르는 영화 후반부에서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잠시 시골로 돌아간 페르는 내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과 새로운 여자의 등장은 페르를 혼란으로 몰고 가는데, 이 혼란 속에서 페르는 결국 자기 잘못과 죄를 깨닫는다. 끈질기게 거부했던 아버지의 시계 역시 결국 받아들이며, 아버지의 무덤에 그 시계를 걸어둠으로써 그의 성찰을 드러낸다.

 

 

가호를 내려주세요. 부모님을 저버린 절 용서해 주십시오. 이반과 야코베를 저버린 것도요. 더는 누구도 해 입히기 싫습니다. 전 벌 받아 마땅해요.

 

- 'A Fortunate Man'의 페르의 대사 中

 

 

페르는 고통스러운 내면을 가진 채 목사에게 가호를 구한다. 이는 결국 자신이 세상에 도전했던 싸움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어린 시절부터 얽매였던 종교 및 가족에 대한 분노와 상처를 내려놓고자 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또 코펜하겐으로 돌아가 야코베와의 약혼을 파기하는데, 이는 곧 페르가 자신의 성공 욕망과 인간적 결핍을 내려놓으려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그것들을 누리기에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신을 끔찍하게 증오했던 페르이기에, 그가 가호를 구하는 장면은 언뜻 봐선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용서와 가호는 신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기 위한 행동에 가깝다. 즉 페르는 일정 부분 자신의 과오를 마주하고 결핍을 수용한 것이다.


이후 시골에서 잉에르와 결혼한 페르는 자녀들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기도 한다. 이 역시 그가 아버지처럼 신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받아들였다기보다, 종교적 행동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 즉 종교 자체보다 내면적 상처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말년까지 세속적 가치와 거리를 두고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는 그의 모습은 그가 자기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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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발끈하기도 하고, 제 아들에게도 엄격히 대하는 페르의 모습을 보면 그가 시골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내면의 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만큼 현실적이고 솔직하다. 페르의 자기 수용은 절대 완전하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그의 변화가 불완전하고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해도 페르의 자기 수용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조금씩 자신을 지키고 받아들이는 페르는 설령 그 과정이 불완전했을지라도, 부와 명예를 좇았던 자신의 가치관이 자신의 결핍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일부 깨달았다고 보인다.


현실에서 자신의 결핍을 완전히 수용하고 극복하는 것은 판타지와도 같다. 페르처럼, 사랑과 존중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게 어떤 모양인지 몰라 타인에게 줄 수 없다. 그 거대하고도 작은 결핍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인물들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점을 영화 말미에서 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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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 ‘A Fortunate Man’은 ‘행운의 남자’, ‘행복한 남자’로 번역된다. 이 제목은 물질적 성공의 잠재력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그 행운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내면적 자각과 자유를 얻지 못한 페르라는 사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행운과 충만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유난히 곱씹을 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페르의 부잣집 친구인 이반의 친척이 페르에게 이런 말을 했다. ‘행운은 바보 편이다’. 처음에는 이 대사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 봤다. 여기에서 ‘바보’란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바보의 의미라기보다, 결핍을 온전히 수용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0(영)’의 상태를 가진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온전한 무(無)의 상태, 자신의 상처와 결핍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행운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새해가 밝으며 각자의 행운을 바랄 것이다. 페르의 삶을 보며 올해 나는 더 큰 행운과 변화를 안고 갈 수 있는 내면의 상태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설령 페르처럼 불완전할지라도, 적어도 나와 나의 사람들을 상처 입히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각자의 삶에서 각자의 행운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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