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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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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에서 특정 문화와 체계에 대한 평가는 종종 현대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접근은 과거의 복잡한 사회적 맥락과 발전 과정은 간과하고 현대의 시각에서만 과거를 평가하게 만든다. 또한 책이 한국인이 아닌 서양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동양문화사』의 특정 구절은 이러한 경향들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저자는 초기 한국 역사를 서술하면서 '중국형 국가'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한국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로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단군 신화보다는 기자 전설에 초점을 맞추어 중국의 문화적 영향을 강조하며 중국의 문화적 영향이 만주와 한국으로 들어왔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역사적 특성이나 고유의 문화는 충분히 나타내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다. 이와 같은 서술은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한국의 입장에서 이해하기보다 서양 중심의 시각이 나타난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단순화하고 왜곡할 위험이 있다.

 

삼국 시대 중 신라에 대해 설명한 부분에서 사용된 표현 중 ‘낡은 부족 사회’는 그 자체로도 부정적 어감을 줄 뿐만 아니라 신라 사회의 발전 과정과 복잡성은 무시한 채, 그 당시 사회의 구조를 낮추어 평가하는 시각을 드러낸다.

 

또한 한국의 역사에서 정치나 경제의 변화는 단순한 한 원인으로만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의 지속적인 발전과 변형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데 이를 불가피한 결과로 환원하는 것은 역사적 발전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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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근대화는 쇄국 정책, 당파 간 대립, 외세의 개입, 보수주의 등의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지연되었고 일본과 중국의 대립 역시 조선 내 정치 및 외교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외세의 개입과 주변국들의 개혁 압력으로 인해 많은 혼란을 겪었다. 대외 접촉이 증가하며 중국과 일본은 계속해서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했고, 흥선대원군과 같은 보수파는 외세와 개혁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원군은 한갓 정력적인 배외주의자에 지니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묘사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흥선대원군을 배외주의자로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그의 정책 중 일부 요소에 기반한 것일 수 있지만 흥선대원군을 단순 배외주의자로만 정의하기엔 한계가 있다. 흥선대원군은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고 쇄국정책을 유지하며 서양과의 접촉을 제한했는데 이 점에서는 외세를 배척하려는 배외주의적 성향이 나타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원군의 주요 목표는 외세를 단순히 배척하는 것이 아닌 조선의 정치적 자주성과 전통을 유지하고 왕권 강화를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었으므로 이를 배외주의로만 평가하기엔 제한적이다.

 

동양문화사는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의 문화적 흐름을 통해 각국의 문화적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동양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제국의 변천사나 문화적 교류를 통해 동양 각국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과정은 오늘날의 국제 관계와 그 뿌리를 이해하는 데까지 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연구는 동양 내부의 발전을 존중하고, 각국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바르게 알아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기준에서 동양을 해석하려는 태도는 왜곡과 편견을 초래할 수 있으며 특히 한국사 연구에서는 중국의 영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한국 고유의 문화와 정치 전통을 균형 있게 평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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