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알 수 없는 몽글몽글함이 군불처럼 가슴에 남는 전시 - 2025 그림책이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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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들고 전시실 벽에 걸린 그림을 촬영하며 히히히- 히죽 웃고 있었던 내 얼굴을 누가 봤으면, 누가 뭐라 그랬을까? 것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전시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이에서 말이다.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을 카톡으로 보내고, 또 찍고. ‘이거 진짜 웃기지 않냐. 코딱지 할아버지래. 어어. 아이스크림 구하려고 요구르트 5형제가 살아난다ㅋㅋㅋ 뭐든지 아니, 라고 말하길 좋아해서 아니사우르스래.’ 혼자 숨죽여 웃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니?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봐도 너무 재밌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왔건만. 누구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이 너무 애석할 따름이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그림책'은 왠지 모르게 애들 책이라는 인식 때문에 선지, 손이 잘 안 간다. 서점에서도 그림책은 동떨어져 있는 코너라 굳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도서관 내 따로 마련된 어린이 도서관에는 더더욱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관심은 있었다. 무엇보다 짧은 분량 안에 스토리의 핵심만을 담아야 할 뿐 아니라, 그림을 직접 그리는 연출적인 면도 곁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게 된 <2025 그림책이 참 좋아>展이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 맞은편에 위치한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음악당을 갔을 때도 서울서예박물관은 항상 외관만 보고 돌아갔던 터라 내부가 이렇게 방대한 줄은 몰랐다. 방대한 공간에 걸맞은 방대한 양의 전시이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을 전시장에 머물렀다. 가방을 보관하려면 돈을 내야 하길래 맡길까 말까 하다가, 맡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안 그랬으면 어깨가 내려앉았을지도 모른다.
그림책 작가들의 책과 삽화가 작가별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중간중간에 어린이들이 체험하기 좋은 부스들이 많았다. 덕분에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엄마를 구출하라'라는 작품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상영되고 있었는데, 삼면이 다 영상이어서 꽤 실감이 났다. 슬그머니 뒷좌석에 앉았었는데, 앞 좌석을 꿰찰 걸이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아이들을 촬영하는 부모님 틈에 버스 한 자리를 차고앉아 엄마를 구출하려는 이야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이 외에도 그림책 속 캐릭터로 꾸며진 포토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 층고가 꽤 높은 미디어아트존 등이 있어 지루함 없이 아이들이 다양하게 책을 접할 수 있었다.
김영진 작가의 <엄마를 구출하라> 애니메이션 상영 공간 관람했던 그림책 중 몇 가지 기억나는 그림책을 소개해보겠다. 먼저 윤정주 작가의 <꽁꽁꽁>이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 왔는데 이런! 냉장고 문을 열고 간 것이다. 냉장고 속 음식물들은 비상이 돼서 아이스크림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내일 아침 서운해할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상상력이 너무 귀엽지 않은가. 박물관이 살아있다 식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냉장고 속 음식물들이 살아 움직이다니. 반응이 좋았던 탓인지, 시리즈가 계속 나온 것 같다. 세계관을 야외로 확장하면 냉장고에서 아이스박스로 주무대가 바뀐다. 거의 뭐 마블세계관 급 프랜차이즈 시리즈물이 아닌가!
꽁꽁꽁 댕댕 ⓒ 윤정주, 책읽는곰 다음 작품으로는 노인경 작가의 <아니사우르스>이다. 내 최애 작품이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실제로 책을 구매했다.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이라는 치트키를 쓴 것을 떠나서 이야기 구성도 좋고, 그림체도 마음에 들었다. 아니사우르스는 뭐든지 “아니”라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작은 공룡이다. 어느 날 엄마의 말에도 "아니"라고 대꾸하다가 엄마가 화가 크게 났다. 엄마의 화를 풀어내 줄 방법을 궁리하려고 집밖으로 나서다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나름 흥미진진하다. 더욱이 ‘아니사우르스’의 작품을 설명하는 부분도 새삼 마음에 들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규칙과 질서에 편입되기 전에 더 많은 도전과 시도, 그리고 저항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는 말에서 작가의 진심이 느껴졌다.
구매한 노인경 작가의 <아니사우루스> 그림책 중 한 장면 작가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빗대어 또는 자기 안에 있는 어린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아 그림책을 만든다. 그래서 비단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른 내면의 미처 자라지 못한 아이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 대표적인 책이 조던 스콧의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이다. 일전에 우연히 들른 독립서점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림책이라는 이유로 구매하기를 망설였는데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구매했다. 두고두고 보면 매번 다른 의미로 되어 다가올 것 같았다.
한편, 그림이 아닌 손으로 만든 조형물을 일일이 찍어 만든 페이퍼아트 그림책도 있었다. 평소에 스톱애니메이션도 좋아해, 전시장 한편에 실제로 모형이 떡하니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모처럼 쿵쾅쿵쾅 했다. 박성익 작가의 그림책 <어쩌다 산타>였다. 그래서 이 책도 구매를 고려해 전시를 다 관람한 후 책을 사려 했는데, 전시장에서 봤던 페이퍼의 질감과 책으로 출판된 종이 위에서 보는 질감은 또 너무 달라 아쉽지만 소장은 포기했다. 오히려 스톱애니메이션으로 봐도 참 좋을 것 같다.
박성익 작가의 <어쩌다 산타> 그림책의 페이퍼 아트 마지막 작품으로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초등학교 시리즈>이다. 다양한 장갑들이 의인화되어 개성이 각자 다른 친구들을 표현했다. 쌍둥이 장갑, 비닐장갑, 고무장갑들에 캐릭터가 부여되어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확실히 간단명료하고 이야기에 훅이 있는 그림책이 많은 사랑을 받는듯했다.
아 하나 더!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다른 한편으로 몽글몽글한 감정을 준 작품을 이야기해야겠다. 김유진 작가의 <엄마의 여름방학>이라는 그림책이었다. 엄마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에 함께 들어간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무엇보다 나에게 없는 기억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유독 잔상이 남는다.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청각 오감을 모두 동원하게 만드는 김유진 작가의 그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외에도 김성미 작가의 그림책 <이웃> 등이 생각이 난다.
김유진 작가의 <엄마의 여름방학> 중 한 장면 어릴 적 남동생은 동화중에서도 전래동화를 참 좋아했다. 권성징악. 기승전결. 아름다운 결말과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곁들여진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고 보면 동화도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또 과거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을 수도 있다. 이처럼 동화 또한, 전혀 동화 같지 않은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차가운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냉철한 시선이 담긴 이야기도 좋지만 무언가에 빗대어 더 나은 세상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동화도 세상에는 필요하다.
좋은 이야기는 사실 동화, 우화 가릴 것이 없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는 아름다운 결말로 향할지라도 절대 그냥 휘발되지 않는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몽글몽글함이, 따뜻함이 군불처럼 가슴속에 오래오래 깊이 남는다. 그런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한 전시가 <2025 그림책이 참 좋아>展이고, 올 3월 안으로 꼭 한번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여기서는 마음껏 눈치 보지 않고 그림책을 펼쳐볼 수 있으니.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추운 겨울 가슴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민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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