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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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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그들의 시선과 역사를 빌려 완성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마스터피스를 이해합니다.

 

 

 

달콤한 솜사탕 같은 세계를 그립니다, 작가 전별희를 소개합니다!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과슈를 활용해 저의 환상 세계 속 동물과 요정 친구들을 그리고 있는 작가 전별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크기변환]starcatcher3_캔버스에과슈_15x15cm_2024.jpg

 

 

 

지금의 환상 세계를 있게 해준 과거의 작품관, '소통의 부재'


 

- 작가님께서 과거 모노톤의 펜화로 그리셨던 시기의 작업들을 돌아보고 싶어요. 지금의 그림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인데, 당시의 작업과 현재의 작업, 지향하는 바를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저는 지금과 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기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시니컬한 성격을 갖고 있었어요. 이 세상에는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쁜’ 일들과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잖아요. 저는 그 사실들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이전 작품도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과 함께 지내고 싶지 않다’는 저의 마음을 주로 담아내고 있었죠. 그래서 초창기의 저의 그림은 지금과는 굉장히 분위기가 달라요. 무섭다고 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그만의 분위기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하지만 인간은 어쨌든 사회적 동물이고,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잖아요. 그 사실에서 평화로운 환상 세계에 대한 갈망이 커지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그림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또, 그런 부정적인 주제를 주로 담고 있는 그림을 오래 작업하다 보면 저 스스로도 너무 우울해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무거운 주제를 깊게 파고들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현재의 챕터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 작가님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띄어요.

 

완벽한 성인도, 그렇다고 완전한 어린아이도 갖지 않는 소녀만의 이미지가 좋았어요. ‘소녀’는 성장의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미숙하다고 볼 수는 없는 존재잖아요. 만약 이 소녀가 소녀가 아닌, 정말 ‘아이’의 모습이었다면 그 불완전함이 용서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완전히 성장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숙한 면이 많아요. 어중간하고, 불안정하죠. 그래서 특히 초기의 그림에서는 더욱 불안정한 소녀의 모습을 많이 그렸습니다.

 

 

[크기변환]여섯개의마법의눈물방울_캔버스에과슈,58×50cm_2020.jpg

 

-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그 당시 표현하고자 하셨던 ‘미숙함’이 잘 담겨있는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신다면.

 

3명의 소녀가 그려진 <기묘한 대화>라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한 명은 코가 없고, 한 명은 눈이 보이지 않으며, 한 명은 귀가 먼 소녀들의 그림이에요. 그들의 시선이 서로 엇갈리며, 서로에게 필요 없는 것을 전달해 주는 그림이죠. 눈을 감고 있는 소녀에게 귀를 건네주고, 귀가 먼 소녀에게 코를 건네주고 있어요.

 

이 그림은 ‘어긋난 소통’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했을 때 그렸던 작품이에요.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사람들이 대화를 아예 하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서로 엇갈린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오해한다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건네주었을 텐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엇갈려버렸기에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전해주는 것이죠. '소통의 부재'에 대해 고민하던 그 당시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크기변환]기묘한 대화,gouacheonpaper,80x80cm,2013.jpg

 

 

- 현재는 이 '소통의 부재'에 대한 그림을 작업하지 않고 계세요. 작가님께서는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셨던 바는 다 말씀하신 걸까요?


네. 과거의 챕터에서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전부 이야기했고, 그 이상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 전개하고 담아내었던 주제는 이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하나의 주제를 깊고 꾸준하게 연구해서 작업을 진행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 멋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저는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저 스스로의 의사로 마무리 지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저의 작품의 흐름을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처음에는 이상향을 꿈꿨다가 그 꿈에서 벗어나고 현실의 암울함으로 그림이 흘러갈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암울함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거기에서 벗어나 보다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만큼 저 스스로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거니까요. 제가 바라보는 세상, 제가 그려내는 세상은 점차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어서 제가 앞으로 그려낼 세계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환상 세계와 소통의 부재 그 사이, 전별희 작가가 걸어온 과도기의 깊이



- 작가님의 예전 그림을 보다 보면 천사의 이미지도 참 많아요. 지금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인데, 작가님께서 당시 그렸던 천사의 의미란.

 

천사는 지금 제가 그리고 있는 요정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전, 제가 과도기를 겪을 당시 현실에서 없는 존재를 그리고자 하며 그렸던 존재 중 하나에요.

 

일반적으로 전사하고 하면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이미지가 있잖아요. 처음 제가 그렸던 인간 세계에서의 소녀와는 오히려 극과 극에 위치한 존재죠. 지금은 현실 세계와는 다르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는 요정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조금 더 극명하게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자 하며 후광이 있는 천사 등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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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께서 칭하는 '과도기'의 기간에 그렸던 그림이라니 인상 깊어요. 그 과도기에 그렸던 다른 작품 중에서도 오래 기억에 남은 작품이 있다면.

 

아래의 작품은 <루루(淚淚)의세계>라는 작품이에요. 물, 동물, 천사적인 이미지, 소녀 등이 함께 등장하는 그림이죠. 2020년에 그렸던 그림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도기에 그렸던 작품이지만 현재의 제 그림 스타일, 그리고 저의 작품 세계관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해요.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는 저의 과거와 현재,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물과 구름의 순환, 유니콘의 뿔 등이 다 담겨 있어요. 제가 그리고 싶어 하고, 제가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요소들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 것이죠. 그래서 저의 현재의 작품 활동의 기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 그림을 그릴 때 저의 세계, 그리고 저의 지금까지의 모든 그림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포괄적인 작품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저의 작품은 대부분 그 크기가 크기 않은데, 이 그림은 50호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꽤나 그 크기가 있어요. 그 큰 캔버스 안에 저의 이야기를 가득 담아낸 작품입니다.

 

 

[크기변환]루루(淚淚)의세계gouacheoncanvas, 90x116cm, 2020.jpg



그런데 사실 저는 이 그림을 제가 굉장히 좋아해도, 다른 분들도 이 그림을 좋아해 주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 그림은 울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다른 분들은 주로 밝고 행복한 그림을 선호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리고 몇 년 뒤 어떤 분께서 이 그림에 ‘그림이 너무도 아름답다’고 댓글을 남겨주셨어요. 그 댓글을 보며 너무 행복했습니다.

 

 

- 심장과 파란 장미가 해당 그림의 중심 상단에 있네요. 다른 그림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요소인 만큼 작가님께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저는 동화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부터도 항상 동화책에 나오는 삽화를 따라 그리곤 했어요. 그런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 현재의 작품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고, 그 영향을 받은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 심장과 파란 장미예요.

 

저의 그림 세계에 가장 처음 영향을 받았던 동화는 바로 <눈의 여왕>이었어요. 카이라는 소년의 심장에 거울의 파편이 박히고, 게르다는 소녀의 눈물이 그 심장에 박힌 거울 파편을 녹이는 내용이죠. 저에게는 그 내용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이 타인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어요. 그런데 <눈의 여왕>에는 꽃도 참 많이 나오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크게 영향을 받았던 <눈의 여왕>에서 나오는 요소들을 활용하여 저의 작품에는 눈물과 심장, 꽃을 함께 녹여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파란 장미의 꽃말은 기적인데, 파란 장미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 지어 푸른 장미가 담긴 심장을 그림에 담아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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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별희 작가가 담아내는, 따뜻하고 무해한 환상 세계


 

 - 작가님께서 이러한 작품의 흐름을 통해 도달한 '환상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요?

 

저의 환상 세계는 저에게 평화롭고, 약자들도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세계를 의미해요.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세계죠. 약한 동물들도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런 세계입니다. 그래서 제 그림에는 일반적으로 강자의 입장이 아닌, 토끼, 사슴, 양 등의 힘없는 동물들이 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크기변환]꿈길의애정.jpg

 

 

-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신 '환상 세계'는 곧 약한 존재를 보듬어주는 세계라고 해주셨어요. 이러한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을까요?

 

저는 저의 환상 세상을 ‘나는 이것을 꼭 표현하고 담아낼 거야’라는 의도에 따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에요. 그저 자연스럽게 제가 좋아하는 흐름을 따라 그림이 변화하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처음에는 지금과 같은 동물 그림이 아닌 소녀 한 명이 있는 인물화를 주로 그렸어요. 그 소녀가 흘리는 눈물에서 여러 환상적인 존재들이 태어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죠. 처음에는 그 눈물에서 꽃, 무지개 등이 태어나다가, 이후에는 동물들도 생명을 얻어 등장하게 되었어요.

 

그 동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전설의 동물’ 중 하나인 유니콘처럼 이마에 뿔을 달고 등장하며,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요소들과 함께 그림에 담기기 시작했어요. 이는 꽃, 별, 달 등으로 확장되며,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세계가 확립되게 되었습니다.

 

 

- 작가님이 표현하고자 했던 세상의 ‘무해함’이 가장 잘 담긴 작품을 하나 소개해 주시겠어요?

 

최근에 그린 [Eternity]라는 작품이 저의 이상향을 잘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떠한 공격으로부터 위협받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며 잠에 든 두 마리의 양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거든요.

 

이 작품을 보시면 양의 주변에 피어난 식물이 있어요. 이 식물은 ‘램스 이어(Lamb’s-ears)’라고 하는 식물인데, 풀 전체가 은백색의 털로 뒤덮여 있고, 그 촉감 또한 굉장히 부드러워서 ‘양의 귀’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에요.

 

저는 평소 꽃말을 찾아보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하는데, 처음 이 풀을 발견했을 때 너무 귀여워서 꽃말을 찾아보았어요. 그런데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더라고요. 나의 세상에서 두 양이 서로에게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는 그림을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린 작품입니다.

 

 

[크기변환]eternity_캔버스에과슈_23x19cm_2023.jpg

 

 

- 현재 작가님의 작품은 아름다운 색감이 큰 특징이에요. 지금과 같은 색감의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다면.

 

소녀의 이미지에서 세계관이 확장되며 동물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분홍색, 파란색, 보라색 위주의 컬러를 사용하며 색채가 훨씬 다채로워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의식해서 ‘이런 컬러를 사용해야겠다’고 지금과 같은 통통 튀는 색감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도 세상에는 예쁜 색이 참 많다고 생각하고, 다채롭게 색상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환상의 동물을 많이 그리다 보니,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색상의 동물들을 많이 고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세상에는 흰토끼, 검은 토끼, 갈색 토끼는 있지만, 분홍색 토끼나 민트색 토끼는 없잖아요. 유니콘도 일반적으로는 흰색 유니콘을 많이 그리고요. 그러면 나의 세계에만 존재할 수 있는 독특한 토끼, 독특한 유니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조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재의 색감이 확립된 것 같아요.

 

 

- 과거와 현재,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달라져도 소녀가 등장한다는 사실만큼은 바뀌지 않는 것 같은데. 소녀가 갖고 있는 의미는 그림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을까요?

 

지금의 환상 세계에서 담아내는 소녀는 ‘불완전’한 존재보다는 ‘안전한 세계에서 꿈을 꾸는 무해함’을 더 많이 내포하고 있어요. 물론 세상에 완전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제가 그리는 소녀가 불완전한 것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전의 저는 그 불완전함을 싫어했어요. 서로 완벽하게 소통할 수도 없고, 오해와 갈등이 쌓이는 그 불완전함이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결국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더라고요. 우리가 텔레파시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잖아요. 그 대신, 세계 자체를 서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세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꿈꾸게 되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녀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 작가님만의 환상을 표현하기 위해 중요시 여기는 점이 있을까요?

 

저는 저의 세상과 그림에서 ‘뿔’이라는 요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양, 사슴 등의 동물을 주로 그리는데, 사실 두 동물 모두 원래부터 머리 양쪽에 뿔을 갖고 있는 동물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양쪽의 뿔을 일부러 그리지 않고, 대신 유니콘처럼 이마 정중앙에 뿔 하나를 표현하고 있어요.

 

일반적으로 양과 사슴 등의 동물들이 갖고 있는 뿔은 모두 자기 자신을 지키고, 다른 존재와 싸우기 위해 갖고 있는 것이잖아요. 즉, 생존을 위한 무기인 거죠. 하지만 제가 그려내는 세상은 자신을 지킬 필요도, 싸울 필요도,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칠 필요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있었던 생존을 위한 뿔을 일부러 표현하지 않고, 대신 그 존재 자체가 ‘환상’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도록 이마의 뿔로 대체해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예전 작품들은 한 마리의 동물만 등장할 때가 많았는데, 최근 작품을 살펴보면 두 마리의 동물이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릴 때가 더 많아요. 그리고 그 모든 존재들이 다 눈을 감고 있죠. 모두 함께 하며 각자의 꿈을 꾸고, 그 안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세계를 담아내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자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격으로부터 무방비하다는 의미잖아요. 그렇다면 잠을 자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주변이 안심하고 잠에 들 만큼 평화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저의 세계에서 공격하지 않고, 날카로운 것이 없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크기변환]꿈꾸는토끼요정_나무판넬위에과슈_15x15cm_2024_20240318_182031.jpg


 

- 작가님께서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초식 동물을 위주로 그리시죠. 그래서 그리셨던 그림 중 설표가 유독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설표라는 동물은 먹이사슬에서 포식자니까요.


맞아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저의 그림에는 설표가 있는데, 대신 저는 무언가를 공격해서 살아남는, 성체의 설표보다는 조금 더 무해한 아기 설표의 그림을 그려냈어요.

 

설표는 체온 유지를 위해 자신의 꼬리를 물고 다닌다고 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았어요. 저의 세상은 서로 보듬어주는 세상이니, 이곳에서는 서로의 꼬리를 물고 체온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기대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크기변환]설표요정의방문,캔버스에과슈,34x39cm,2022.jpg

 


- 그 외, 작가님이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Dream Vision]이 마음에 들어요. 과슈, 유화, 오일 파스텔 이 세 가지 재료를 함께 사용해서 그린 그림이거든요. 일반적으로 액자는 현실과 그림 속 이상 세상을 분리하는 느낌을 주는데, 이 세 가지 재료를 나누어 사용한 것과도 연결을 지어 작품을 설명할 수 있어요. 해당 작품에 있는 꽃은 양귀비인데, 양귀비의 꽃말은 ‘위로, 몽상’이거든요. 이 작품 자체가 양귀비를 테마로 하여 현실 세계가 아닌 작품 안의 세계를 장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그린 작품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은 폐 놀이공원에 친구와 함께 놀러 갔을 때예요. 널브러진 놀이 기구들은 다 깨져 있고 망가져 있는데, 그 과정에서 회전목마가 눈에 띄더라고요. 이 아이들은 영원히 같은 공간을 계속 빙글빙글 돌 수밖에 없잖아요. 설령 놀이공원이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도요, 저의 그림에 담아 이 아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크기변환]dreamvision_캔버스에과슈,오일파스텔,유화_50.8x40cm_2020.jpg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열 마리의 양]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목이 유독 마음에 들게 지어진 그림이거든요.

 

작품을 보면 총 7마리의 양을 발견하실 수가 있는데, 사실 소녀의 뒤에 두 마리의 양이 숨어있고, 그 양들의 귀만 빼꼼히 눈에 보여요. 그리고 그 귀로 인해 소녀 또한 한 마리의 양으로 보이게 되며 총 열 마리의 양이 완성되는 작품입니다.

 

 

[크기변환]열마리의양_캔버스에과슈_58×50cm_2020.jpg

 

 

- 작가님께서는 식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품 속 모든 식물에는 그 의미가 담겨있는데, 앞으로 그려보고 싶은 식물이 있다면.

 

제가 최근에 데려온 식물의 이름이 ‘블루버드(boulevard)’인데, 이 블루버드를 꼭 그려보고 싶어요. 일반적으로 블루버드라고 하면 파랑새를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이 식물의 이름으로 붙여진 블루버드는 프랑스어로 큰 가로수길이라는 뜻이에요. ‘그대를 위해 살다’라는 꽃말을 갖고 있죠. 이 낭만을 그림에 담아보고 싶어요.

 

 

 

마무리 지으며



- 나중에는 어떤 작품을 그리고 싶으세요?

 

저의 그림이 저도 모르게 계속 추구하는 바가 변화하고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물과 바다를 배경으로 많이 그렸는데 최근에는 구름을 배경으로 그리는 것처럼요. 그런데 기회가 된다면 다시 물에 집중하고 싶어요.

 

제 세계관 자체가 눈물이라는 요소에서 시작되어서 확장이 된 것도 있고, 물이 증발하면 결국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비가 되어 내리며 물로 돌아가니까 그 순환의 세계를 현재 저의 그림이 변화해온 과정과 연관 지어 더욱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 작가님만의 꿈이 있다면.

 

최근 히구치 유코 작가님의 전시에 다녀왔어요. 그런데 정말 인상 깊었던 부분이, 그분의 전시장에는 특정 종류의 작품만이 걸려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조형도 있고, 미술 작품도 있고, 동화책도 있고, 피규어도 있고… 그 범위가 정말 넓고 다양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작가님의 세계가 얼마나 견고한지 확실히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제가 작업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시켜서 언젠가 그분처럼 저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이것을 어떠한 재료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그렇다면 그렇게 다양한 재료 중 가장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도자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도자기라는 것은 고온에서 한 번 구워낸 것인 만큼 단단한 느낌이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떨어뜨리면 쉽게 깨질 정도로 유약하잖아요. 실제로 저는 저의 개인전으로도 ‘연약하고 견고한 세계’를 제목으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저의 작품을 잘 나타낼 수 있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자기가 갖고 있는 상반된 두 개의 특성, 즉 유약하지만 또 그 안에 숨겨졌던 단단함을 제가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와 연관 지어 작업을 전개한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신가요?

 

저는 저의 작품을 보고 행복해진다고 말씀해 주실 때 정말 기뻐요. 이따금씩 저의 작품을 판매한 분들로부터 연락이 올 때가 있거든요. 그분들께서 저의 그림이 너무 예쁘다, 우울할 때마다 저의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된다,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말씀을 해주시면 저는 너무 기뻤어요. 그 소중한 말씀들이 저를 함께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저의 세상의 파수꾼, 문지기, 초대자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려내는 환상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초대해 드리는 존재이죠. 우울하거나 힘들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잠깐이나마 머물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물론 힘이 들어 도망치고 싶지만, 그렇다고 계속 도망쳐 있기만 해서는 안 되잖아요. 결국 우리는 현실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저 현실 도피로 빠져있기만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그로 인해 다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으실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 인터뷰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무리 인사 부탁드립니다.

 

저의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 늘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조금 사는 것이 힘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가셨으면 해요. 그 과정에서 저의 그림이 위안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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