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은 내 친한 친구 두 명의 생일이었다. 즐겁게 축하를 나누었던 그날은 이제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12월 3일 화요일
밤 10시 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는 친구들로부터 연락을 받아 그날의 비상계엄을 접했다. "비상계엄이라는데?"라는 친구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자마자 곧바로 인터넷에 '비상계엄'을 검색했다. 이게 가짜가 아니라니, 아니 21세기에 무슨…. 나는 내가 보고 있는 뉴스들을 믿기 어려웠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은 꽤 일찍 가결되었지만, 대통령의 해제 선언이 있어야만 정식으로 해제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상황을 살폈다. 오전 4시 반, 나는 대통령의 두 번째 긴급 담화를 본 뒤에야 잠에 들었고, 결국 세 시간도 못 잔 채 등교했다.
12월 7일 토요일
그 주의 토요일, 12월 7일의 오후 5시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표결되었다. 나는 하던 것을 제쳐두고 실시간으로 뉴스를 시청했다. 평생 이렇게 뉴스를 열심히 볼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봤다. 같은 시각, 국회 앞에는 20만 명이 넘게 모였다.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 당원들이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국민에게 '소중한 한 표'를 부탁하던 이들은 그렇게 국민의 뒤통수를 쳤다. '국민의힘'이라는 당명을 그들 스스로 부정하는 순간이었다.
12월 13일 금요일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국 선언문과 대자보를 작성하기 시작했고, SNS에는 집회에 참여한 지인들의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집회에 가지 않은 지인들은 뉴스나 인터넷 기사를 캡처해 올리기도 하였다. 모두의 관심이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지난 7일의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국회 앞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과 그 속에 섞여 있었을 나의 지인들이 아른거렸고, 다음에 있을 집회 일정을 찾아보며 매일 생각하고 고민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나도 용기를 내 저 현장에 함께 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겼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그걸 가로막기도 했다. 보통 소극적인 성격이 아닌지라 나에겐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다음 대규모 집회는 2차 탄핵 표결이 이루어지는 14일 토요일이었다.
12월 14일 토요일
나는 모자와 마스크, 장갑, 롱패딩으로 중무장하고 가방 속에 '아미밤(방탄소년단 응원봉)'과 단백질 바 두 개를 넣은 채 집회 현장으로 향했다. 처음 가는 집회인 데다 오롯이 혼자 가는 길이었기에 지하철을 타기 직전까지도 '이렇게 냅다 가는 게 맞나?' 하며 고민했다.
여의도역으로 가는 5호선을 타자 조금씩 내가 어디에 가는 길인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돌돌 말려 있는 깃발, 생수, 방석, 망토 등 다양한 물품을 챙긴 사람들이 같은 목적지에서 내렸고, 나는 사람들이 'ㄹ'자 모양으로 길게 줄을 선 곳의 뒤에 붙어 그저 따라 나갔다.
출구 밖으로 나와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돌돌 말려 있었을 깃발들은 높이 펄럭였고, 수많은 경찰들이 차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차도까지 꽉 채울 정도의 수많은 인파는 한 곳을 향해 밀물처럼 걸어가고 있었고, 그 방향의 끝에는 국회의사당의 둥근 지붕이 있었다.
친구들에게 내가 집회 현장에 가는 길임을 알려주려고 카카오톡을 켰는데 도무지 메시지가 전송되지 않았다. 생중계되는 뉴스를 보기 위해 유튜브에 들어갔더니 유튜브 로딩도 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전파가 잘 터지지 않는 것 같았다.
휴대폰도 못하는 채로 멍- 하니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니 어느새 여의도 공원에 도착한 상태였다.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노래는 공교롭게도 요즘 한창 떠오르고 있는 '다시 만난 세계'였다. 집회 현장에서 직접 이 노래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노래를 들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국회와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보려 노력했는데 오히려 낭패를 봤다. 이미 국회대로가 꽉 차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힘겹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는데, 되돌아가는 길이 더 험난했다. 뒤에서 그 상황을 모르는 인파가 계속 앞으로 몰려오는 바람에 앞뒤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하게 되었다. 한 15분가량을 그렇게 서 있다가 뒤쪽에 그 소식이 전달되었는지 단체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여의도 공원으로 돌아왔을 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뒤편에 슬쩍 자리를 잡고 앉아보았다. 여전히 휴대폰이 먹통이어서 그저 파란 하늘에 높이 치솟은 깃발들을 찍어두기만 했다.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어느새 4시가 조금 넘어있었고, 체감상 얼마 지나지 않아 탄핵 가결 소식이 들려왔다.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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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구 트위터)에서 집회 관련 정보를 알아보며 눈에 띄었던 게시물들이 있었는데, 집회 현장 근처 카페에 음료 몇 잔을 선결제 해두었으니 OOO의 이름을 대고 무료로 받아 가라는 내용의 글들이었다. 비단 한두 명의 선행이 아니었다.
시민이 시민을 돕고 응원하기 위해 시작한 '선결제' 문화는 아이유, 뉴진스, 소녀시대 멤버 유리와 같은 몇몇 연예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더 큰 연대를 불러왔다. 실제로 여의도역부터 국회의사당까지 가는 길목에 놓인 카페 몇 군데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음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깃발과 응원봉을 드느라 시린 손들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녹여주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재치 있는 카피로 만든 깃발, 응원봉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특별한 2024년의 대한민국 집회에 내가 한 명의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7일의 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미안함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정말 싫어한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 명소나 맛집이어도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으면 아예 목적지를 바꿔버린다. 그런 내가 수많은 인파로 인해 더 이상 국회 쪽으로 전진하지 못했던 때에 들었던 감정은 짜증도, 답답함도 아닌 벅차오름, 신기함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뜻으로 모였다니, 국회 앞까지의 저 먼 길을 이미 사람들이 꽉 채웠다니, '대한민국 정말 (긍정적으로) 미쳤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시민들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아직 거쳐야 할 단계가 남아있기에 오늘의 시민들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 함께할 것을 약속했다. 나 또한 앞으로의 집회에 계속 관심을 가지며 시간이 되는 날엔 다시 한번 가보려 한다. 그땐 외롭지 않게 친구도 대동하고 싶다.
집회에 참여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 자신을 칭찬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 홀로 집에> 대신 <나 홀로 집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