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들이 준 삶의 새로운 시선 -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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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희망해 자녀들과 수도원으로 향했던 메리안, 사람들과의 교류가 단절된 채 살았던 고흐,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극복하고자 했던 뭉크, ‘외모 강박’에 시달렸던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이는 ‘미술 에세이스트’이면서 작가인 이유리의 책,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에서 등장하는 화가의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둡거나 고통스럽고, 아름답지 않거나 다소 유쾌하지 않은 그림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미술의 이면, 혹은 기존의 미술사에서 ‘마이너’한 부분에 빛을 비춘 채로. 그래서 주류 서양 미술사를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며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술 작품이나 대상의 이면을 보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미술 작품들이나 화가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고흐의 들라크루아 모작인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유명한 화가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로 책이 구성된 것도 이해가 간다.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
이 책에서는 그림에 얽힌 저자나 피사체의 사연을 통해서 저자, 혹은 저자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을 투영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어머니를 향한 딸들의 애증의 감정을 담은 챕터인 ‘딸들에게 씌워진 이중의 굴레’에서는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의 딸인 잔느 보닌-피사로와 피사로의 아내이자 잔느의 어머니 쥘리 벨레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사연이 소개되지만 그들은 카미유 피사로의 그림 속 피사체로만 존재했는데, 이는 마치 가부장제 속에서 지워지는 여성에 대한 은유 같이 느껴졌다.) 저자는 그 둘의 사례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를 성찰한 후 ‘어머니’가 된 자신 역시 되돌아본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은 양육자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자녀와 어린 아이들을 어떻게 존중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소개하는 화가들의 사연 역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타인과 관계하며 존재하는 인생의 본질에 대해 하나의 전형으로, 혹은 반면교사의 형식을 경유해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총격을 겪고 자신의 취약성을 받아들이고 드러내게 된 앤디 워홀의 이야기를 통해 내면의 성장을 읽어낸다. 알마를 통해 사랑에 상처받고, 올다를 통해 치유한 오스카르 코코슈카의 그림들은 사랑의 능동성, 더 나아가서 감정에 대한 능동적 주체로서의 한 인간에 대해서 말해 주는 것 같다.
반면 제임스 엔소르의 모순적인 삶을 통해 종종 ‘위선’으로 비난받는 사회적 가면의 중요성을, 나치의 반유대주의를 이용했지만 나치에 의해 ‘퇴폐 미술’로 몰린 에밀 놀데의 이야기를 통해 방관이라는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 예술 작품이 시대적, 사회적 구성물인 것을 상기시키고 예술 작품의 역설적인 면을 보게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이야기를 통해 삶에 대한 저자의 지향과 가치관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억압들에 대해서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독립적 주체인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에 의해 타자화된, 혹은 비체화된 소수자들과 그러한 억압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명예 남성’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을 포세이돈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인 메두사를 처벌했던 아테나에 비유하고, 화가 부부인 호퍼와 조세핀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내 폭력’의 단면을 읽어내며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분석한다.
또한 그림 <바보 배> 등을 통해 서양사에서 지적 장애인의 위상에 대해 다루며 현대 장애 인권을 이야기하고, 이처럼 ‘이성’을 배제의 논리로 삼은 근대적 논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밀레의 <새 사냥>을 다루며 동물권 이슈까지 가 닿는다. 또한 자신의 해방을 위해 낮은 계급의 여성을 이용했던 (이는 여성의 신체를 ‘비-문명’적인 것으로 이상화하는 방식의 대상화에 해당한다) 크리슈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망명과 자긍심』의 저자 일라이 클레어의 “모두가 해방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해방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인용한다. 이는 다양한 억압들이 서로 얽혀 있고, 동시에 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소수자를 차별하고 억압했던 그 당시, 혹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때로는 고발의 형식으로, 아니면 화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채 은폐의 형식으로 그림 속에 드러났다는 것을 알아가며, 우리는 미술 작품의 단순한 표면 뿐 아니라 복잡한 층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미학’, 또는 아름다움이라는 가치가 꽤나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 또한. 어쩌면 이러한 지점이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에서 드러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다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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