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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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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을 보기 전까지 나는 최영우를 알지 못했다.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지냈던 당시 인도네시아의 풍경을, 그가 온전히 감수해야만 했던 폭력적인 상황을,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지금 이 시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까지의 고됨을 알지 못했다. 역사를 알고, 직면하고, 인식하는 것에는 늘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 없이 역사를 배우려는 건 위선이나 다름없다.


연극의 커튼콜까지 끝난 후, 나는 그들에게서 위선을 느꼈다. 특히 자신을 ‘조선놈’이라 칭한 외국인 포로 아드리안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이병준에게 그랬다. 일제가 패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조선인이라서 벌 안 받을 거야’라고 말하며 안심하던 그를 보며 왠지 모를 혐오감까지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서 과거 베트남전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한국군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 도저히 편한 자세로 공연을 관람할 수 없었다. 일제의 패망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 장면을 제외하고는 매 순간이 갈등의 연속이었다. 최영우가 배의 가판대 위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장면마저도 우리는 우리는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모두가 이미 그 참담한 결말을 다 알고 있었기에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최용우의 교수형 집행 직전, 그는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 아드리안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를 담았다. 극적으로 아드리안이 그를 용서하여 결국 풀려나게 된다는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참 멀고 고된 길을 돌아서 왔다.

 

작품의 드라마만 놓고 봤을 땐 진부한 내용이나 그 속에 담긴 역사적 함의는 공연이 올려짐으로써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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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필름 퍼포먼스’라는 독특한 형식을 안고 간 이 작품은 연극의 새로운 ‘보여주기 방식’을 개척했다.

 

미니어쳐를 활용해 최용우가 갇혀있는 감옥을 표현한 연출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느린 속도로 감옥 천장부터 아래에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최용우를 담아냄으로써 감옥의 공간감과 그가 감옥 안에서 얼마나 작고 쓸쓸한 존재인지를 동시에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하수 안쪽에 위치한 화면은 인물들이 놓인 상황을 카메라가 담아내는 데 효과적으로 쓰인다. 이처럼 무대 곳곳에는 극적인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이 배치되어 있다. 자칫하면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무대를 효율적으로 잘 활용한 예시다. 이 같은 영상 연출은 관객이 주인공인 최영우의 감정에 몰입함과 동시에 철저히 제 3자 입장에서 그의 행위를 판단하길 바라는 창작진의 의도가 엿보인다.


카메라 감독들은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위치를 바꿔가며 최영우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들은 한쪽 어깨에 카메라를 받쳐 든 채 다양한 각도에서 최영우의 삶을 기록했다. 나는 암전 속 이들의 움직임을 보며 ‘연극은 시간과 순간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특정 장면에서 정해진 타이밍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카메라 감독들이 움직임 또한 이 서사의 일부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관객이 알지 못했던 (혹은 외면해 왔던) 역사를 실험적 형식을 빌려 지금, 이 시대에 연극으로 올렸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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