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방문학생을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 6개월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특히 한류에 관해서 말이다. 여름에 하이드 파크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하여 나와 내 친구도 함께 구경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 공연이 막 시작할 때 도착하였고, 우연히 스트레이키즈라는 케이팝 아이돌의 공연이 시작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즉, 런던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의 마지막을 한국 아이돌이 장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스트레이키즈의 공연을 본적도, 노래를 즐겨듣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큰 공원과 공연장에서 케이팝을 울리는 걸 보며 괜스레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놀랐던 건 다름 아닌 수많은 유럽팬들의 모습이었다. 각국에서 모인 여자 아이들은 스트레이키즈의 굿즈를 준비하고, 응원봉을 흔들며 그 공연에 감격하는 듯했다. 공연 티켓을 구매하지 못한 팬들은 한 곳에 자리 잡아 멀리서나마 보이는 전광판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공연의 열기를 즐기기도 했다.
나는 일본인 친구와 함께 멀리서 들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스트레이키즈의 응원봉을 들고 춤을 추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일본인 친구 역시 스트레이키즈의 오래된 팬이었는데, 나에게 스트레이키즈의 인기를 새삼 실감 나게끔 여러 가지 영상과 릴스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 이후에도, 런던의 메인 스트릿에 가면 수많은 스트레이키즈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돌 팬들은 소속사에서 제작하여 판매하는 인형이나, 포토카드를 홀더에 넣어 가방에 걸고 다니곤 하는데, 나 역시 그 공연 이후 스트레이키즈를 찾아봐 구분이 가능하기도 했었다. 한인 마트를 가거나 한국 화장품 가게, 한식당에 가면 더 많은 케이팝을 좋아하는 외국 팬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흔히들 말하는 ‘국뽕’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에는 아이돌 그룹을 런칭할 때, 타깃팅 할 국가를 정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며 대중성과 코어를 잡아 한국식 그룹을 만들 것인지, 혹은 해외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음악이나 스타일링을 통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다국적 그룹을 만들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이키즈는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수많은 팬들의 응원과 서포트로 롱런하는 그룹임을 직접적으로 깨달았고, 한류에 큰 힘을 되어주고 있었다.
케이팝과 더불어, 한류에 또 새로운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 바로 한강작가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류라고 하면 음악, 드라마만 생각하겠지만, 포괄적으로 한류는 대중문화의 해외화이기에 도서 역시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수업시간, 그룹 프로젝트를 하며 스웨덴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었다. 스웨덴 친구는 나에게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한국인임을 되물었고, 나는 자랑스럽게 맞다고 대답했다. 스웨덴 친구가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노벨 문학상은 스웨덴에서 선정하여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당연히 언젠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을 것을 나 홀로 확신한 적도 있었다. 1학년 때, 전공과목인 현대 문학 입문을 수강하며 과제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비평하여 비평문을 작성해야 했었다. 그때, 밤새 책을 덮었다 펼쳤다 끝을 내기가 아쉬워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무언가를 이리도 생생히 손끝에서 써 내려갈 수 있고, 그걸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작가님이다. 그런 작가의 영광적인 수상은 해외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 근처 daunt books라는 서점에서는 책이 한 달간 입고되지 않아 내내 기다리기도 했고, 또 다른 서점 근처를 둘러보면 ‘한강 존’이 따로 만들어져있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후, 드디어 번역본을 사게 되었다. 번역본을 구매하고 싶었던 이유는 한국어로 읽었을 때의 감정이 동일하게 느껴지느냐가 궁금했었고, 해당 번역본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기에 더욱이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내 주변 미국인 친구들도 한강 책을 읽고선 후기를 알려주거나, 한국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책에 대한 소개나 줄거리를 알려달라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우리는 종종 타 문화의 환상이나 동경에 젖어 한국의 독특하면서도 차별화된 문화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 문화를 무시하거나 해외에서는 비주류로 묶인다는 식의 비판을 날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또다시 나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비록 아직은 주류문화가 아닐지라도 앞으로 미래에는 더 많은 나라에서 한국문화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