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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능은 무언갈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무얼 하고 싶은지 분명히 아는 것, 바로 그것이 재능이다.
여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사람들을 잘 만난 것 같다. 그들이 쓸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했고, 내 글을 열심히 채찍질하기도 했다.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에게 의욕을 느끼게 해준 이들도 있었다. 내가 찾아간 사람들도 있었고 나를 찾아와준 사람들도 있었다. 어쩌다 알게 된 이들도 있었고, 신기한 만남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중에 나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종류의 사람은 없었다. 내 고집이 보통이 아닌 것도 있지만은.
질투라는 재능, 존경이라는 재능
초등학교 학년 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하는 4학년의 '후지노'는 자신의 그림 실력에 자신만만하다. 아이들은 후지노를 치켜세운다. 그러나 어느 날 옆 반의 등교 거부아인 '쿄모토'가 학년 신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여론이 들썩인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뛰어난 그림을 보고 질투를 느낀다.
후지노는 배경 묘사가 세밀한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서 그림의 여러 기법을 익히기 시작한다. 친구도, 학교생활도, 성적도 뒷전이다. 오로지 그림, 그림이다.
질투가 재능을 채찍질하는 이 모습.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학교 때 글씨를 잘 쓰고 싶어서 글씨를 예쁘게 쓴다고 주변에서 칭찬을 듣는 어떤 아이의 글씨체를 따라한 적이 있다. 그냥 무작정이었다. 노력 끝에 나는 그 아이의 글씨체를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질투는 거기서 끝이었다(그 아이의 글씨가 어땠는지는 잊어버렸다. 아마 지금 내 글씨와 그 아이의 글씨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질투란 감정은 그렇게 후지노의 재능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쿄모토의 그림 또한 나날이 발전한다. 결국 6학년 중반, 후지노는 학년 만화에 실린 쿄모토의 그림을 보고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한다.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의 벽을 마주하고 돌아서기로 한 거다.
쿄모토는 후지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쿄모토도 후지노에게 질투를 느끼고 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걸까? 그 의문은 후지노가 쿄모토의 졸업장을 전달해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쿄모토의 집에 방문하게 되면서 풀린다. 쿄모토는 후지노를 '선생님'이라 칭하면서, 여태 후지노가 해온 작업에 대한 감탄을 연발하고, 옷에 사인을 받기까지 한다.
후지노의 질투 어린 호기심과 쿄모토의 존경 담긴 호기심이 만난 그날. 재능의 막다른 벽이었던 곳이 쿄모토에게 가는 문임을 알아챈 그날. 담담히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후지노의 걸음걸이가 인상적이다. 속의 무언가 답답한 게 풀렸다는 해방감과 존경을 받았다는 기쁨, 그런 기쁨이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후지노의 걸음을 경쾌하게 만든다. 후지노는 공모전을 준비하려고 만화를 그만뒀다는 거짓말을 진짜로 실천하기 시작한다. 후지노를 낙담시켰던 쿄모토가 다시금 후지노에게 그림을 그릴 의욕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서로라는 재능
후지노는 쿄모토와 같이 자신의 방에서 지내며 공모전을 준비하는 데에 일 년간 전력을 쏟는다. 그 과정에서 둘은 더없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결국 단편 만화가 공모전에서 가작에 당선되면서 그들은 데뷔를 하게 된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재능은 흔히 선배나 스승, 멘토가 이끌어주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후지노와 쿄모토는 그런 사람 없이, 학원이나 과외 없이, 독학으로 그 정도 실력에 올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실력을 쌓아갔기 때문이다. 한쪽은 질투, 한쪽은 존경이었을지 몰라도, 복도와 방에 쌓인 수많은 스케치북, 책장에 꽂힌 수많은 그림 서적, 스케치북을 들여다보는 중에도 숱하게 지나가는 계절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를.
그 정도로 비슷했기에 서로를 처음 보게 됐을 때 우정으로 뭉칠 수 있었고, 가작 당선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일 테다. 그건 단순히 잘한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의 재능보다도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알고 노력했다는 의미의 재능처럼 보인다.
그 문을 열어준 사람
영화에서 '문'이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그 문은 책상에 앉아 있는 후지노와 쿄모토의 뒷모습과도 유사하다. 밖에서 문을 보면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등지고 앉아있는 그 사람을 불러 그 사람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거기에 무엇이 있고, 그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렇듯 문은 언제나 그 대상의 뒷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누군갈 알기 위해서는 그 안을 들어가야, 그 앞모습을 보아야 한다.
후지노가 방에 틀어박혀 살던 쿄모토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문을 두드려준 사람이라면, 문을 열고 나온 쿄모토는 후지노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을 함께 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후지노와 쿄모토는 세상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본 것들을 토대로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사람이 무서워 학교에 가지 않았던 쿄모토는 점점 세상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꿈이 하나 생긴다. 미대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 것. 쿄모토가 망설이다 겨우 진심을 털어놓자 후지노가 몇 번이고 만류한다. 그러나 쿄모토의 강한 의지를 보고 결국 갈라서기로 한다. 자신만 따라오면 된다 했던 사람과, 그 사람을 따라가려 했던 사람은 그렇게 갈라서게 된다.
갈라서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중 문제의 사건이 벌어진다. 자신의 그림이 도용되었다는 오해를 품은 어떤 남자가 미대에서 흉기 난동을 부려 쿄모토가 죽게 된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곱씹을수록 질투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는 애초에 재능도 없었을 것이다. 재능도 없는데 피해만 주다니 참 씁쓸하고 화가 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문을 열기까지
쿄모토의 죽음에 충격받은 후지노는 만화 연재를 중단한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방문 앞에 주저앉는다. 세상에 쿄모토란 존재는 없다. 후지노가 열지 못한 쿄모토의 문만 남았다. 그 문 안에는 보지 못했던 쿄모토의 방, 쿄모토의 앞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쿄모토는 죽었다.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후지노는 문 앞에서 생각한다. 내가 그날 쿄모토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 4컷 만화, 쿄모토를 질투하는 의미가 담긴 그 만화를 그리지 않았다면. 그 만화를 쿄모토의 방문 아래로 흘리지 않았다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애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후지노는 쿄모토의 방문 앞에 아직도 놓여있는 그 4컷 만화를 찢어버린다. 그런데 그중 맨 앞의 컷, “나오지마!”라는 대사가 적힌 부분이 쿄모토의 방문 아래로 들어가 버린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나오지 마!”라 적힌 만화를 보고 의아해하는 쿄모토, 결국 후지노와 만나지 않은 채 미대생이 된 쿄모토가 등장한다. 쿄모토는 미대에서 실제 일과 똑같은 위험에 처하는데, 그때 도와주는 건 다름 아닌 후지노다. 후지노는 초등학교 때 만화를 관두고 친언니의 권유대로 가라테 운동을 해왔던 것이다.
후지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연락처를 물어본 쿄모토는 후지노의 이름을 보자마자 그녀를 기억하고 ‘선생님’이라 부른다. 만화를 왜 관두었냐는 쿄모토의 질문에 후지노는 다시 만화를 그릴 생각이라며 연재를 따내면 어시스턴트가 되어달라며 떠난다. 집으로 돌아온 쿄모토는 그때의 기억에 휩싸이며 자신이 수집한 후지노의 4컷 만화 스크랩북을 펼쳐본다. 그리고 후지노가 자신을 구해주었던 일화에 관한 만화를 하나 그리는데, 그것이 열어놓은 창문으로 흘러든 바람 때문에 방문 아래로 날아간다.
그것이 후지노에게 답장처럼 도착한다. 질투 어린 호기심에 쿄모토의 집까지 갔지만 어떤 걸 마주할지 알 수 없어 그 방문을 두드릴 수조차 없었던 초등학생 후지노는, 어른이 되고, 만화가가 되고, 쿄모토를 잃은 뒤, 그 만화를 보고서야 문을 연다.
후지노의 사무친 후회가 쿄모토의 또 다른 일상으로 이어지는 전개가 독특하면서 희망을 불어넣는다. 후지노가 문을 열 때 정말이지 떨렸다. 쿄모토가 살아있는 건 아닐까. 방 안에서 지금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러나 쿄모토는 없다. 쿄모토 대신 쿄모토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후지노가 연재했던 만화 ‘샤크킥’ 전권, 창문에 붙은 4컷짜리 만화들, 방을 둘러싼 스케치북들, 그 방에서 뒤를 돌아서야 후지노는 마주한다. 처음 만났을 때 쿄모토가 입고 있던 옷. 자신의 사인이 크게 적힌 그 옷. 그 옷이 방문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쿄모토는 후지노와 갈라선 뒤에도 매번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후지노의 이름을 보았던 걸까. 쿄모토는 언제나 후지노를 기억하며 세상으로 나아갔던 걸까.
후지노는 왜 그림을 시작했는지를 더듬는다. 쿄모토가 한때 자신에게 물어본 것이기도 한 그 질문은 재능의 발원을 찾고자 하는 분투이자, 자신의 삶이 어떻게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후지노에게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을까, 좋아하는 예술가가 있었을까. 후지노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건 쿄모토와 같이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던 그 세월이다. 그 세월의 컷이 켜켜이 쌓여가며 지금에 이른다. 영화는 말없이 그것을 보여줄 뿐이다.
후지노는 다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선다. 그리고 작업실에 돌아와 앉아 빈 4컷 만화 종이를 창문에 붙여둔 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후지노는 밤이 될 때까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언제나 붙어있을 그 빈 종이처럼 후지노는 쿄모토를 기억하며 그림을 그릴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재능이 되어줄 수 있다는 귀한 믿음, 나는 후지노처럼 뒤돌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지금의 내가 될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사람들, 나를 기억했을, 기억하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 지금 나는 그들을 기억하며 키보드에 손을 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