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코카인 흡입과 소지로 기소돼 법정에 선 프랑스의 대표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한 말이다. 사강은 그가 남긴 문장처럼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았다. 19살 혜성처럼 등장해 주목받는 작가로 데뷔했지만 도박과 마약, 알코올 등 각종 쾌락을 탐닉하다 모은 재산을 탕진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그의 발언은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테제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명확히 이 문장과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사회적 동물, '인간'이기에, 자기 파괴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이란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유기적이므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의 파장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에겐 태어남과 동시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하는 '책임'도 부여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영화 '룸 넥스트 도어'를 관람하고 '잘 죽을 권리'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영화는 잉그리드가 출간 기념 사인회에서 친구로부터 오랜 기간 연락이 끊긴 마사의 투병 소식을 전해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잉그리드는 병동의 1인실 침대에 누워 있는 마사를 마주하고, 그가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자신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며 담담하게 말했던 마사지만, 새로운 치료가 시작한 이후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됐다는 판정을 받고 큰 실망에 빠진다. 그러나 좌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고, 마사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다크웹에서 안락사 약을 구하고, 잉그리드에게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 옆방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망설이던 잉그리드는 결국 마사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마사의 계획에 동참한다. 둘은 뉴욕 외곽 별장에서 한 달간 지내며 죽음을 준비한다.
'죽음'을 둘러싼 이미지
"난 잘 죽을 권리가 있어, 존엄을 지키며 퇴장할래."
영화 속 마사의 대사와 강렬한 색깔의 패션, 집안의 화려한 소품은 죽음에 관한 사회의 통념과 철저히 대비된다. '병마'에서 '이기고' 돌아온 건강한 육체를 칭송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나약하게 바라보는 인식은 우리가 죽음, 질병에 대해 얼마나 획일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단정 지어 온 나의 생각을 돌아본 이유가 여기 있다. 기본적으로 삶은 긍정적인 것, 죽음은 부정적인 것으로 이분화해서 바라봤기 때문에 어떤 조건이 붙든 죽음이란 선택지를 고르는 일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안락사는 이렇게 단순화해 말하기엔 훨씬 복잡한 논의이지만, 매일 모두가 조금씩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돌아볼 필요는 있다.
사(死)그리고 생(生)
결국 사(死)가 있으므로 생(生)이 의미 있는 것이다. 영화는 겉보기엔 죽음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관람하고 나면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죽음을 앞두고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한다. 동네 책방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고르고, 선베드에 누워 눈을 감은 채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이 틀 때까지 서로에게 기대 영화를 보고, 숲속을 산책하다 숨이 가쁘면 잠시 누워 숨을 고른다. 두 사람은 사가 없었다면 이리도 소중한 줄 몰랐을 생의 순간들을 온전히 즐긴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쓸쓸한 교회 마당에도, 온 우주를 지나 아스라이 내린다. 그들의 최후 종말처럼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내린다."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사람들'에 나오는 이 문장들은 영화 내내 반복해 등장한다. 특히 엔딩에서 잉그리드가 마사의 죽음 후 선베드에 누워 읊조리는 대사("눈이 내린다. 네가 지쳐 누워있던 숲으로, 네 딸과 내 위로, 산 자와 죽은 자 위로.")는 삶과 죽음이 아주 가까이 맞붙어 있는 것이라는 명료한 진리를 기반한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히 내리는 눈처럼, 삶과 죽음은 그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므로.
영화는 내내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각 장면은 다채로운 색채를 담고 있다. 병실 밖 창문으로 보이는 분홍빛의 눈과 뉴욕 전경, 죽음을 앞두고 샛노란 정장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마사의 모습... 무채색으로 표현되곤 하는 죽음과 대비되는 감각적인 미장센이 인상 깊다.
영화 속에서 안락사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게 바람직한가, 에 관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오늘날 '룸 넥스트 도어'는 어떻게 죽는 게 바람직할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진다.
종점처럼 여겨지곤 하는 죽음이 영화에서만큼은 끝을 의미하지 않았다. 마사의 죽음은 딸과의 관계 회복에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작가인 잉그리드가 영구적으로 기록할 대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마사는 옆방 가까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사를 넘어, 생과 연결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