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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창 밖에 소복이 쌓이는 눈, 반짝이며 방을 밝혀주는 트리와 벽난로,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하는 포근한 밤. 우리가 익히 떠올리는 크리스마스의 전경이다. 이렇듯 ‘로맨틱 홀리데이’, 가족애와 고백을 부추기는 수많은 시즌 영화 사이에서 우리를 무엇보다 강렬하고 낯선 크리스마스로 이끄는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연출: 오시마 나기사, 출연: 데이비드 보위, 류이치 사카모토 외
지난 11월 20일,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원제: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41년 만에 국내 첫 재개봉을 했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왠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을 아리게 하는 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동명의 OST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를 모르는 이들도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이 곡은 거장 故 류이치 사카모토가 처음으로 작업했던 영화 음악이기도 하다.
백발에 안경을 쓰고 피아노 앞에 앉은 흑백 사진의 류이치 사카모토가 익숙한 그대라면, 영화 속 강렬한 눈빛의 요노이 대위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와 한 화면 속에서 호흡하는 잭 셀리어스가 영국의 전설적인 아티스트 데이비드 보위라는 사실 또한 말이다. 이처럼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그의 음악을 영화관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별이 된 두 거장의 생경한 젊은 시절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러 갈 이유가 충분하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2년,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다만 이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다. 따스한 가족적 크리스마스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원작은 로렌스 반 데 포스트의 소설인 <씨앗과 파종자(The Seed and the Sower)>이다. 전장이란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특수한 시공간 속에서 관계는 어떻게 뿌리 내리고, 싹 틔워 꽃 피우며, 열매 맺은 뒤 태초로 돌아가는가?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것은 요노이와 셀리어스의 미묘한 관계이다. 다시 한 번 포스터를 보자. 무사도와 제례를 중시하는 요노이는 눈을 감은 채 검을 수직으로 들고 있고, 한 줄기 가시 철조망에 가로막혀 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셀리어스는 신비로운 두 눈을 뜬 채 꽃을 든 손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이때 그의 손은 마치 철조망 너머의 우리에게 꽃을 건네는 듯하다. 영화는 이토록 이분법적으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그들 만의 방식으로 얽혀 드는지 보여준다.
특히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업한 사운드트랙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비유를 여실히 머금을 수 있다. 셀리어스와 요노이의 첫 만남 장면에서 삽입된 곡, ‘Germination (발아, 성장, 싹 틔움)’. 군사법정에서 셀리어스를 처음 마주한 요노이가 자신과 완전히 다른 그에게 첫 눈에 이끌린 것을 씨앗의 발아에 비유했다. (해당 음악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그렇게 요노이는 사형될 위기에 처했던 셀리어스를 포로수용소로 데리고 오지만, 이 곳에서도 이어진 셀리어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감정적 혼란을 겪는다. 둘의 장면에 삽입된 곡, ‘The Seed and the Sower (씨앗과 파종자)’에서도 이러한 알 수 없는 끌림과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이후 포로수용소 내의 격화된 갈등으로 요노이가 영국인 포로 부대장을 죽일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다가와 양 뺨에 키스한다. 이때 삽입된 곡은 ‘Sowing the Seed (씨앗을 뿌리다)’이다.

해당 행동에 의해 세일러스는 모래 구덩이에서 목만 내놓은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모래에 파묻혀 죽어가는 세일러스에게 다가와 머리칼을 한 움큼 잘라 돌아간 요노이는 이후 영국군 포로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할 줄 알아 통역가와 중재자의 역할을 했던 존 로렌스에게 일본의 자신의 고향에 이를 들고 가서 신당에 바쳐달라고 부탁한다.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관계 맺었고, 서로를 위했음이 드러난 장면이다.

그렇다면 왜 ‘로렌스’인가?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요노이와 셀리어스이지만, 영화의 중심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로렌스이다. 로렌스는 두 사람의 관계 사이는 물론 격화하는 일본군과 영국인 포로들 간의 갈등 사이에서 완충재가 되어준다. 그는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분법 너머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로렌스는 적군 혹은 아군,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고 판단하는 이분법의 전장 속에서 의문을 표하고 변화를 권유한다. 할복과 항복 중 무엇이 더 비겁한 행동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처벌하고 죽이는 것 중에 옳고 그른 것이 있는가? 로렌스는 긴밀하게 지냈던 일본군 하라 상사에게 사실 모두가 옳지 않으며, 모두 그른 판단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4년 뒤, 1946년 일본의 패망 이후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사형을 하루 앞둔 하라와 중령으로 지위를 회복한 로렌스가 다시금 마주한다. 로렌스는 그에게 어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다.
“셀리어스가 그의 죽음으로 요노이에게 씨를 뿌리고, 거둔 곡식을 우리가 나누는 것 같아.”
하라는 4년 전, 자바 섬의 보잘것없었던 크리스마스날 밤, 취한 자신이 크리스마스 아버지(산타클로스)라며 독방에 가두어졌던 로렌스와 세일러스를 석방시켜주었던 그 날을 기억하느냐 묻는다. 그 때와 같이 웃어 보이며 건네는 하라의 마지막 인사.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Merry Christmas, Merry Christmas, Mr. Lawrence.)"

하라의 마지막 인사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라는 시대적 갈등 상황 속에서 마침내 그들이 이분법을 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뿌리 내리고 거두어 들였던 관계를 마무리하는 담백한 끝맺음 이었다.
언제쯤 겨울이 올까, 하던 나날들이 지나고 이제 진짜 시린 겨울, 크리스마스다. 이 세상은 영화 속 세상이 아니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현실이다. 전장에서 이념과 갈등을 넘어 인간과 인간이 마주하기를 바라는 것이 터무니 없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서든 관계는 뿌리 내리고, 꽃 피우고, 마침내 곡식을 거두게 하며 그렇게 순환한다. 그러니 그곳이 어디든, 이 관계의 생애가 계속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