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 특히 여성을 그리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19세기 말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빈 분리파 운동의 창시자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 예술을 비판했다. 클림트는 느리지만 멈출 수 없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쇠퇴와 그 배경이 된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에로티시즘과 관능미가 뛰어난 예술가로, 코코슈카, 실레와 함께 표현주의의 위대한 거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클림트의 다양한 작품, 연도별 대표작과 함께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여정을 담아냈다.
19세기의 거장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의 그림은 알고 있을 정도로 미술사에 있어 유명한 인물이다.
이 책은 2024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 기념으로 출간된 책이기에 전시를 즐기기 전에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황금빛을 그린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전체적으로 그의 삶과 대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젊었을 때 전통을 따른 화풍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896년 초부터 신체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하며, 1897년에는 빈 미술가 협회에서 탈퇴하고 지인들과 빈 분리파라는 새로운 단체를 결성한다. 자신들만의 회관 ‘제체시온’을 세우고, 건물 입구에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빈 분리파의 모토를 새긴 것이다.
기억에 남는 몇몇 작품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유디트>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에게 ‘유디트’는 문학 작품에서 만났던 여인인데, 이렇게 그림으로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다.
유디트는 성서에서 블레셋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죽임으로써 유대 민족을 구한 여인으로 도나텔로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유디트를 애국심과 용기 있는 여성의 전형으로 삼았다. 유디트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살로메와 함꼐 본격적인 팜므파탈의 지위에 올랐는데, 이 시대에 유디트를 예술로 묘사한 작품 중 클림트의 <유디트Ⅰ>는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높이 올린 머리, 강한 턱선, 반쯤 감긴 눈과 벌어진 입술로 황홀경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클림프의 유디트는 위협적인 여성의 성을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다.
<키스> 또한 클림트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 할 때면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1908년 작품으로 같은 주제로서 로댕과 뭉크의 계보를 잇는다.
<키스>는 로댕과 뭉크의 작품과 비교했을 때 가장 상징적이고 에로틱한 장식을 사용한, 가장 노골적으로 성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을 중등 때 교과서로 처음 접하기도 했고, 많은 기업이 오마주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었다. 클림트가 이런 성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음에도 우리가 그림에서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가 아마 <키스>의 화려한 장식적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게도, 여성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클림트의 특성이 여기서도 묻어나는 것인지 화려한 여성의 옷과 후광에 비교했을 때 남성은 회색, 검은색과 같은 단적인 색깔을 사용하며 얼굴을 거의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여성을 그리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였기에, 그의 삶 또한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걸 명확히 확인하기가 힘들다. 클림트는 상당히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화려한 그림을 그리고 에로틱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의 사생활이 어떠한지 노출이 극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여성과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알려졌는데, 그와 동시에 엄청 희박한 정조 관념을 가졌다고 알려졌었다. 하지만, 에밀리라는 여성과는 죽을 때까지 진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녀는 클림트의 동생 에른스트 아내의 자매였는데, 실제로 클림트의 작품에 그녀의 초상화가 남아있다. 초상화에 나타난 에밀리의 헐렁하면서도 유선형으로 흐르는 드레스는 당시 세련된 여성들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스타일로, 클림트 특유의 기하학적 무늬와 만나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다.
현실적인 모습보다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을 추구했던 그의 신념을 통해 삭막한 현실보다 풍족하고 아름다움이 가득찬 세상을 원했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