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나 삽질이라는 말로 명명되는 순수한 열정들이 있다. 이 열정의 가치는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고,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주목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말로 그 가치가 바래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쌓아가는 모습에서 도리어 눈길이 가고 더 큰 배움으로 다가온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저자 사이토 뎃초도 세상의 성공 기준과는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다. 열도의 평범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는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집필하는 일본인 루마니아 소설가이다. 그의 수식어는 낯설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루마니아를 가보지도 않았지만, 그는 히키코모리라는 자신의 상태를 십분 활용해 루마니아를 돌아다닌다. 무작정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과 메시지를 보내고 필요하다면 배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그는 그 문화와 사람들에 깊은 식견을 갖게 되었다. 인디 영화를 수천 편 보며 평론을 하기도 하고 독학으로 영어를 터득하기도 하는 그의 몰입 능력이 루마니아어라는 세계를 접한 후 완전히 꽃피운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 사이토 뎃초의 겸손함이 드러난다. 본인이 히키코모리라는 것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저 근사한 사람은 아닙니다…. 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묘한 패배감까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 용기가 솔직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고립이 오히려 다른 세계를 편견 없이 관찰하고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느껴진다. 본인을 낮추는데 거리낌이 없기에 오히려 무한한 열린 사고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의 성취 아래에는 그런 삶의 태도가 살아있었다.
이런 태도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루마니아의 시인 토니 키라에게 배움을 청하는 에피소드에서 강하게 느껴진다. 시집을 아직 출판하지 않은 신인 작가에게 무작정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고 루마니아 시의 미래에 대해 열렬히 설명해 결국 연을 이어갔다. 그를 키라 선생님이라 칭하며 꾸중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배운 시에 대해 그가 존중하는 태도는 어쩐지 감동을 주는 구석이 있다. 에밀 시오랑의 글을 오마주하고 통렬한 비판을 받았다는 그의 모습이, 진땀을 흘리며 시를 쓰는 그의 모습이 상상했다.
그래,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된다. 제1 언어가 아닌 언어로 소설을 집필한다는 것. 심지어 그가 루마니아를 가보지 않았음에도 페이스북으로 언어를 소통하고 끊임없이 배움을 태도를 유지한 과정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 별난 그의 투지가 느껴진다. 그 과정 자체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신선함을 불러일으킨다.
히키코모리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사이토 뎃초는 현실과 동떨어지지는 않았다. 무척 뾰족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타국의 언어로 글을 쓰다 보면, 특히 페이스북 소통에 진심인 그에게는 별안간 원색적인 인종차별의 메시지가 오기도 한다. 또 기고하는 소설에도 아시아인을 보는 색안경이 작용하지 않을지, 이들의 관심이 그저 호기심은 아닐지 냉철하게 바라본다.
4장 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도망치지 못한다.'에서 그런 부분이 있다. 일본인 루마니아 작가로서 일본 작가들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 경험을 나눈다. 국적이 같다는 이유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경험은 나에게는 아직이지만, 글만으로도 떨떠름해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 하면서도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혹은 류) 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는 말로 글을 유쾌하고 맺는다. 더해서 자신은 이제 적극적으로 답한다는 그만의 기개를 보여준다. 이런 천진하면서도 불편함을 관통하는 시각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엿보았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나라의 세계를 엿보는 것과도 같다. 일본어의 일인칭은 여성적 남성적 같은 젠더의 영향이 큰 데 반해 루마니아어의 일인칭은 eu 하나로 그런 분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저자가 일본어로 쓴 소설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하며 다루는 미묘한 어조의 차이를 본래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일본어가 적절한 구석이 있을 테다. 사이토 뎃초는 그런 언어의 차이를 소설가이자 번역가, 편집자로서 가장 세밀하게 느끼는 예술가이다.
그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해당이 되고 용기가 될 이야기다. 일본인 루마니아 소설가가 된 이후 그는 난치병 장 질환인 크론병을 진단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집필했고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수술을 받고 약을 먹는 등 변화와 어려움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집필에 더욱 몰입했다고 말한다.
그 자리에서,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을 애써서 하는 것. 그게 그가 살아가는 힘이자 그가 보여주고 싶은 삶의 모습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모습은 어쩐지 감동을 주는 면이 있다. 어쩌다가 잠깐 삶이 힘들어도, 그럼에도 나로서 사는 일. 스스로를 마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가까이서 보면 방황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궤도일 뿐이다.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간다. 어차피 한 명의 삶인데 이상할 이유 있을까. 모두 지레 겁먹지 말기를. 지금 하는 일을 그저 해가기를. 사이토 뎃초의 삶과 그의 글에서 배운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