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통과 쾌락은 하나라는 보홀에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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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휴가는 필리핀 보홀에서 보냈다. 휴양지 여행은 딱히 내키지 않는다. 아, 휴양지로 여행 가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경험해 보기도 전에 이미 제멋대로 판단한 셈이다.
바다를 보고, 밥을 먹고, 바다를 보고, 잠을 자는 것만 반복할 거라면 요 근처 동해로 떠나면 되지 않을까. 나에게 휴양지 여행이란 딱히 관광할 거리가 없는 곳을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라며 때깔 좋게 ‘휴양지’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었다.
아스팔트로 잘 다듬어진 거리와 도로, 그 위를 달리는 멀끔한 승용차들, 마셔도 되는 깨끗한 수돗물에, 높은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서울. 이곳을 떠나 도착한 보홀은 출발지와는 반대되는 모습의 도착지였고 사실 꽤 낯설었다.
태풍이 다 지나가지도 않았던 날씨에, 질퍽거리는 비포장도로들. 배틀 그라운드에서나 보던 차와 오토바이를 합쳐 둔 툭툭이라는 교통수단. 씻으려면 필터까지 껴야 한다는 환경. 게다가 도착했을 땐 숙소 앞 바다에 물이 다 빠져 있었다. 불편하고 투박한 것투성이던 보홀의 첫인상에 나는 첫날부터 한국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게 됐다.
나는 내가 되게 털털한 사람인 줄 알았고 기안84의 쿨한 여행을 동경하며 그런 여행을 꿈꿔왔다. 하지만 현실은 털털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일 뿐, 영 그럴 그릇은 아니었나 보다. 물 한 모금 마실 때면 이 물을 마셔도 되는지 물어본 뒤 썩 시원치 않은 표정으로 꿀떡 삼켰다. 어딘가에 앉거나 누울 때면 자리에 묻어 있는 것은 없는지 재차 확인하며 살포시 앉았다. 아이고, 유난이다. 유난.
잘 다듬어진 도시 속에서 ‘난 쿨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 정반대의 환경에서는 아주 이것저것 재보고 따지는 게 많은 까탈스러운 사람이 따로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자니 자신이 살던 환경이 당연한 거고 그게 다인 줄 아는 좁은 시야를 가진 개구리 같았다. 까탈스러운 우물 안 개구리. 잠자리에 누워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임무를 맡게 됐다.
그래. 결국 나도 이 원시 상태의 지구로부터 태어났고 또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뭐 좀 아무거나 먹으면 어때. 뭐 좀 묻고 더러워지면 어때. 하나하나 불편한 것들을 보며 다 따지고 넘어가기엔 즐기기만 해도 부족할 이 짧은 여행을 낭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태풍이 지나간 둘째 날부터는 바다 관광이 가능했다. 새벽 5시가 되자마자 조식을 먹고 서둘러 수영복을 입은 뒤 설레는 마음으로 고래상어를 보러 나섰다. 다른 건 다 안 봐도 괜찮으니까 꼭 상어만큼은 보고 싶었다. 다큐멘터리로만 보던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거대하고 경이로운 생명체. 어디 갇혀 있지 않은 상어를 바로 옆에서 보고 함께 바닷속을 누빈다니 기대가 됐다.
굉장히 신나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냥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에 더 가까웠다. 수영을 안 한 지도 오래됐고, 스노쿨링이 생전 처음이었음에도 만만하게 보고 들어갔다가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숨을 헐떡거리며 경미한 과호흡이 오고 말았다. 숨이 안 쉬어지는데 가이드들은 고래상어를 보라며 ‘look!’을 수십번을 외쳤다. 스노쿨링 마스크 사용법도 제대로 몰라서 고개를 담글 때마다 물이 찼고 눈앞이 뿌예졌다. 고래상어를 보려면 바다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다. 내 주변으로 입을 벌리고 다가오는 고래상어보다 바다가 더 무서웠을 정도다.
웃기게도 고통과 쾌락은 하나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고래상어를 보기 위해선 그 고통을 견뎌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숨 참고 눈 부릅뜨고 고래상어의 모습을 보았을 땐 정말 행복했다.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이렇게 거대한 자연을 마주할 수 있을까. 며칠간 온몸이 쑤시고 힘들었지만, 고래상어를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고 좋아하는 마음이 다시 부풀어 오른다. 세상에 역시 공짜는 없는 법. 이렇게 상상치도 못한 때 쾌락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지혜를 배우게 됐다.
세상은 카메라 렌즈로 다 담을 수 없다. 특히 아주 어두운 밤에는 더더욱 그렇다. 어디선가 봤는데 한 쪽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서 ‘찰칵’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면 그 장면이 선명히 남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기술이지만 이날 밤만큼은 그 기술이 필요했다. 별보다 아름다운 반딧불이 투어를 선명하게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별과 반딧불이 중 뭐가 더 예쁜지 따져보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다. 하늘에도 별이 무수히 많았고 아주 가까이에도 별이랑 닮은 반딧불이들이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로는 절대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찍기 위해 애쓰는데 시간을 흘려보내는 대신 눈을 더 크게 뜨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나무 주변을 빙빙 도는 생명체들이 빛을 내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눈으로 동선을 따라가 본다. 손가락 끝으로는 습한 공기와 바람을 느껴 본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같이 검은색 형체만 보이는 야자수 나무와 그 위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이. 카메라 렌즈가 무용지물일 때는 모든 감각들을 총동원해 열심히 그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반딧불이 사진을 찍으려고 잠깐 노력해 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저장해 둔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날의 풍경은 절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직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사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며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바다를 즐기러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발리카삭 섬으로 향했다. 향하는 길엔 돌고래 가족도 보고 심지어 바다뱀까지 보았다. 어렸을 적 바다 수영은 해봤지만,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본 아쿠아리움이 아닌 정말 바다에 사는 바다거북이와 물고기들.
이게 맞다. 보고 싶으면 직접 바다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을 해치지 않도록 조용히 둥둥 떠다니며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바다 아래는 고요하고 후욱- 후욱- 하는 나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조용한 바다 아래에서 저렇게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는 생명체들을 다시 육지에서 보게 된다면 이젠 낯설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것만 같다.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섬을 나오기 위해 다시 배를 탔다. 투명한 초록색 바다만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바다 한복판이고 정말 지구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여기서는 나도 그저 저 거북이, 저 니모와 똑같이 그저 지구에 잠시 살고 있는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배의 최전선에 앉아 항해하고 있는 가이드의 뒷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이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이 바다가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사는 곳이자 매일 보는 곳이니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을까? 알 수 없지만, 우리도 매일 지하철에서 지나치는 한강에서 눈을 떼지 못하니까 아마 그 역시도 매일 보는 이 바다가 매일 봐도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추측했을 뿐이다.
마지막 날, 저녁을 먹고 알로나 비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7시 30분에 시작하는 불 쇼를 관람하게 됐다. 별 기대 없이 타이밍이 맞아 보게 된 것이었는데 20분 넘게 서 있었는데도 쉽사리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행 와서 처음으로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서 울면 옆에서 같이 구경하고 있는 언니의 평생 놀림감이 될 게 뻔했기 때문에 눈에 힘을 꽉 주고 절대 참았지만 말이다.
불을 다루는 기술들이 멋지고 화려하긴 했지만 역시 어느 나라나 음악과 춤은 만국 공통이다. 비록 장르나 형태는 다를지라도 각자의 방식대로 음악을, 그리고 인생을 진심을 다해 즐기는 그 마음이 나한테까지도 전해졌다. 우리는 서로 아주 먼 곳에 살고 다른 배경에서 자라 왔지만, 음악을 듣고,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모두 똑같이 겪고 있다. 환경은 다르지만 우리는 다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예술과 함께.
그들이 얼마나 연습했을지, 또 여기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어떤 꿈을 꿔 왔을지, 사람들 앞에서 쇼를 보여주는 것에 얼마나 기쁨을 누리고 있을지 상상함과 동시에 온몸으로 리듬 타는 그들을 보며 감탄보다 감동을 더 느끼게 됐다.
알로나 비치에서의 정말 뜨거웠던 밤을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지만 그때의 경험과 느낌은 여전하다. 불편한 모든 것을 다 감내하면서 그 순간의 쾌락을 좇겠다고 다짐했을 때 비로소 재미있었던 곳.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조식을 먹었다. 이른 시간부터 물고기를 보러 바다에 나가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또 수영했다. 배고파지면 점심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야자수 가득한 해변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그리고 또 내일의 바다를 기대하며 잠에 든다. 그렇게 보낸 보홀에서의 3박 5일은 내가 꿈꾸는 먼 미래의 삶을 잠시 체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연과 아주 가까이에서 아무것도 재지 않고 그저 유유자적한 삶.
첫날엔 그토록 오고 싶었던 한국이었는데 막상 오니 질리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곳, 익숙한 맛. 잠시나마 서울과 반대되는 자연에서 사는 삶을 상상을 했지만 나는 결국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금세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지금, 내가 혹시 영화 백치들의 등장인물이 된 건 아닌가 싶었다. 반대되는 삶을 흉내 내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현실에 안주하며 현실이 주는 편리함과 안정성을 포기하지 못한다. 보헤미아를 꿈꾸지만 이미 여기가 너무 익숙한 나에겐 이 여행이 어쩌면 3일이면 충분했을 일탈은 아니었을까.
어디에서 뭘 하고 살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할 터이다. 나는 이미 이렇게 태어나버렸으니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바다가 좋다고 당장 바다에 가서 살 수 없는 노릇이다. 대신 지금 이 순간, 어느 곳에 있든,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모든 이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러니 이곳의 나도 현재 주어진 내 자리에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며 묵묵히 살아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곧 다가오는 평일을 담담히 맞이할 것이다.
[이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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