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그날도 상담 시간에 울었어.

 

버티고 버텨서 이별의 아픔을 참는다고 하지만 결국 참는 게 아니더라. 아픈 걸 다 견뎌내야 하나 봐.  심리 상담 선생님은 단순히 소외감으로 보이지 않는대. 상실감. 상실했다는 느낌. 그게 핵심이래.

 

꿈만 같았던 해외 생활을 보내고 나서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의 삶. 텅 빈 황무지 같았어. 내가 그리워했던 인연들 몇몇이 이렇게도 허무하게 다 없어져 버리는 게 믿기 힘들었어. 그래서 상실감을 크게 느끼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래. 그 애도의 시간은 짧아도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간다네.

 

지금은 우리가 헤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직도 네가 어딘가 내 옆에서 맴돌고 있는 것만 같아. 무의식, 관성, 습관, 이미 굳어진 감각이 이렇게나 무섭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한순간 호르몬의 충격으로만 이어지는 시절 인연으로써 끝나는 건가 봐. 어릴 때는, 왜 저 사람들이 잘 사귀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헤어지는 게 내가 다 아쉽고 서운했는데 이젠 그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됐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모를 정도로 스며들었던 인연이, 정신 차리고 보니까 엔딩이 되어있네.

 

다 끝났으면 이불 덮고 모든 생각과 감정을 OFF 하는 기계적인 마인드가 내 안에도 있으면 좋겠다.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대부분은, 울고 싶으면 울래. 소리 내어 울래. 그래야지 떠나간대. 충분히 애도하고 아파야 한대.

 

그날도, 그다음 날에도 상담 선생님 앞에 가면 눈물샘이 고장 났어. 갑자기 받아들여야 하는 상실의 아픔을 온전히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상담 선생님이라서. 그렇게 1주일에 한 번씩 꼭 나를 다독이고 알아가는 시간을 계속 가졌지.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제 4개월. 그동안 슬픔과 분노, 우울함, 상실감, 소외감, 배신감, 후회, 원망, 노여움, 복잡함을 모두 느껴보니 지금은 한 단계의 다른 페이지의 문을 연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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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랑 만나서 무엇을 하든, 결국 인생은 내면의 성숙을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어떤 시절에는 누구랑, 다른 시절에는 그 사람이랑, 또 새로운 시절에는 예상치 못한 귀인 또는 인연을 만나면서 계속 성숙의 여정이 펼쳐지는 거겠지.

  

진짜 인연이라는 것은 타이밍과 때가 전부일지도 몰라. 그리고 타이밍이라는 건 내면의 성숙 정도, 지혜의 깊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겠지. 아직 나도 너도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것 같아.

  

물론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더라도 행복했겠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같이 해온 것들이 많기 때문에 더 이상 후회되거나 미련이 흘러넘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그리운 건 그때인지, 그대인지도 점차 희미해져가. 지난 추억을 가끔씩 그리면서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천 번, 수만 번 오늘은 연락을 해볼까, 오늘은 갤러리에 있는 사진을 몽땅 다 지워버릴까, 선물 받은 옷가지와 인형까지 흔적을 다 지워버릴까, 심지어는 멀티 프로필로 기본 프로필을 설정해 평생 나를 궁금하게 만들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그 무엇도 하지 못했어. 그 사이에 너야말로 먼저 내게만 기본 멀티 프로필로 설정해서 평생 너를 궁금해하도록 만들었지. 얄밉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이제 어떤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조심스럽고 그 행동이 불가역적인 것을 알아서 손대지 못하겠어. 언젠가 손을 댈 수 있는 날이 있다면 그때 다 되겠지. 후회나 미련이 없이 후련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의 모든 시기에 있었을 법한 흐르고 영속되는 고전이라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나만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 같아도, 나만 세상에서 가장 멍든 가슴을 숨기는 것 같아도, 세상에 떠도는 목놓아 우는 노래를 들으면 각자의 사연이 가장 애틋하고 슬픈 거겠지. 그렇게 다들 버티고 추억하면서 또 다른 미래를 현재로 만들며 살아가는 거겠지. 영원히 아파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내가 아니라 너 자신 위해 천천히 멋진 사람이 되어가면 된다"라는 그 한마디가 요즘 들어 떠올라. 네가 없이도 내가 스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 줬지. 그 말이 지금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별이 파국의 페이지로 끝난 게 아니라 새삼,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온 세상이 문학과 책으로 새로운 관심을 돌리고 있어. 한강 작가는 좋아하는 여행도 이제 안 가고, 카페인과 술도 끊었대. 그저 읽어도 읽어도 줄어들지 않는 명작이 꽂힌 책을 보면 그걸로 행복하대. 그리고 전성기가 6년 남은 걸 인식하면서 앞으로 책 세 권을 펴내는 것에 집중하겠대.

 

다른 사람의 인정과 관심에 목말라하는 예전과 작별하면서, 끊임없이 너에게 받는 사랑에 집착했던 과거와 이별하고 있어.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하는 내면적 성숙과 지혜의 축적에 새로운 일상을 만들고 싶어. 또다시 50일 뒤의 나, 100일 뒤의 나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을까. 그때쯤에는 이 일기장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흘러가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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