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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푸치니의 투란도트. 오페라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필자에게도 매우 익숙할 만큼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이다. 올해는 투란도트가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의 내한 공연으로 한국에서 상연되었다.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로, 축제 개막 공연으로 선보였던 투란도트가 국내 올림픽체조경기장을 찾은 것이다.

 

100년 만의 첫 내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각종 매체와 인터넷에서 공연 애호가들의 떠들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한국과 이탈리아가 올해로 수교 14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도 이번 공연에 의미와 화제성을 더했다. 뜨거운 주목과 기대감 속에서 막을 올린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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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세트에 시선을 빼앗겼다. 플로어 객석 앞에는 오케스트라가, 거대한 무대 위에는 여러 단으로 중첩된 세트가 자리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와 함께 백여 명의 군중이 일사불란하게 무대로 올라왔다. 각자의 동선을 따라 정연하게 자리를 찾아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초장부터 압도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무대와 거리가 가깝지 않아 한 명 한 명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지만 모두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덕분에 실제 군중이 모인 광장에 초대받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군중이 무대 위로 모이고 나면 익히 알고 있는 투란도트의 줄거리가 펼쳐진다. 1막의 골자는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다. 고대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청혼해 온 남성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낸다. 세 문제를 모두 맞히면 청혼을 받아들이지만 만일 맞히지 못한다면 도전자는 참수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때까지 무려 13명의 남성들이 날카로운 칼날에 목이 잘려 죽어 나간 가운데, 백성들의 공포는 커져만 간다. 그 무렵 전쟁으로 왕국을 잃은 칼라프 왕자가 등장한다. 여느 남성들처럼 투란도트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칼라프는 징을 크게 울리며 도전장을 내민다. 공연장 전체를 울리던 징 소리에서 굳은 결의와 함께 죽음을 감수하는 무모함을 느꼈다. 그러나 해당 장면에서 칼라프의 움직임보다 눈에 띈 것은 수많은 백성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계속되는 죽음으로 이미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상태다. 그러한 상황에서 외지인이 찾아와 스스로 죽음의 구렁을 향하는 모습을 본다면 더욱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칼라프의 실패와 또 한 번의 죽음을 예감하며 좌절하는 군중, 그리고 그 상심과 불안을 오롯이 표현한 배우들의 사실적인 몸짓에 마음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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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2막이 시작되었다. 칼라프가 징을 울리고 배경은 중국의 황궁으로 옮겨간다. 중국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공주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세 문제의 답은 각각 희망, 피, 투란도트. 정답을 모두 맞히게 된 칼라프는 기쁨에 환호한다. 그러나 일전의 서약과 다르게 투란도트는 결혼을 거부한다. 결혼하면 자신의 삶과 자유를 잃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격노하는 투란도트에게 칼라프는 한 가지 제안을 건넨다. 동이 트기 전까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라는 것. 공주가 이름을 말하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칼라프의 결단으로 2막의 막이 내린다.

 

1막의 배경이 되는 광장도 충분히 거대하고 화려했지만 2막의 황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1막 세트의 뒷벽이 열리며 처음으로 2막 세트를 마주했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하고 눈부신 장식으로 가득 찬 황궁과 공연장 천장에 비치는 노을빛 조명을 보며 극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아름다운 황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수께끼의 내용 역시 흥미로웠다. 특히 첫 질문. ‘그것은 무한히 어두운 사람들 위로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고, 모든 이들이 그것을 소망하며, 모든 이들이 그것에 애원한다.’ 정답으로 ‘희망’을 말하는 칼라프의 외침을 들으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마지막, 3막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투란도트 공주의 명령에 따라 중국 관리들은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들은 백성들을 추궁해 칼라프와 대화를 나눈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티무르와 류가 잡혀오게 된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칼라프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은 채 끝까지 입을 열지 않던 류는 끝내 자결을 택한다. 이후 류의 용기와 칼라프의 진심을 느끼게 된 투란도트는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마침내 칼라프는 투란도트의 승낙을 얻게 되고 두 사람의 사랑과 미래를 축복하는 황궁의 모습을 비추며 장대한 이 이야기는 끝이 난다.

 

3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하나만 지목하라면 단연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꼽을 수 있겠다. 오페라의 아리아 중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와 함께 항상 언급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곡이기도 하다. 흔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한다. 곡이 흐르자 칼라프 역 배우의 대단한 성량과 목소리의 울림이 공연장을 단번에 장악했다. 승리를 확신하는 자신감과 다부진 기백이 느껴지는 외침에 잠시 전율을 느꼈다. 아리아의 선율이 잦아들자마자 다른 때보다 배로 쏟아지던 환호성과 박수갈채에 감동했던 순간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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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투란도트와 칼라프, 두 인물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그런데 그들보다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작음에도 더욱 큰 마음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류라는 여성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니까 엄청난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심지를 잃지 않는 기개가 아름다웠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강인하게 만드냐’는 질문을 듣고 ‘사랑’이라고 단호하게 답하는 그 용기에 마음을 모두 뺏겼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류가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을 때 굉장한 허무와 안타까움을 느꼈다. 류가 자결하고 난 그제서야 칼라프의 목숨을 걸고 그녀의 생명을 위협했던 오만을 뉘우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고문을 견디고, 고통을 끌어안고, 종내에는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를 지키던 류의 마음이 그 무엇보다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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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초연된 작품인 만큼,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모든 내용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극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이 말하는 ‘사랑의 가치’에는 분명한 공감을 표한다. 물론 투란도트에서는 타인을 향한 사랑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타인에 대한 사랑이든, 자신에 대한 사랑이든, 아니면 그 어떤 무엇에 대한 사랑이든, 사랑의 본질은 숭고하고 고결하다. 류가 그랬듯, 거센 역경이 닥쳐도 결코 물러서지 않게 만들고, 무너질 위기가 찾아와도 절대 지지 않게 만드는 것은 단연 사랑이다.

 

그리고, 하나 더. 화려한 무대, 형형색색의 의상과 소품, 사실적인 몸짓, 그리고 섬세한 목소리에도 자꾸만 무대 아래로 시선이 향하던 이유가 있다. 지휘자 다니엘 오렌과 오케스트라의 탁월한 음악 덕분일 것이다. 내내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로 극에 깊이 이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일등공신들에게 마지막으로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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