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건 남자와, 그를 시험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수수께끼를 내는 여자. 어딘가 흥미로운 이 이야기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이야기다.

지난 12일, 이탈리아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서거 100주년과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며 오페라 <투란도트>의 내한 공연이 시작됐다. 이번 공연으로 첫 내한을 경험하는 세계적인 오페라 공연팀 ‘아레나 디 베로나’와 오페라 역사상 최고의 작품 <투란도트>가 보여주는 시너지는 예상대로 어마어마했다.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베로나의 세트장을 그대로 구현했는데, 마치 베로나의 원형 공연장이 떠오르는 듯한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모인 수백 명의 사람들의 노력이 느껴지는 좋은 공연이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아름다운 음악과 목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오페라! 특히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기에, 더 새롭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오페라를 관람해 본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 연출과 예술적인 목소리는 너무 쉽게도 나를 사로잡았다.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이토록 좋은 공연, 이토록 좋은 문화 속에서 이유 모를 행복을 느꼈다.
특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잘 알려진 Nessun dorma를 들으며 뜨거워지는 가슴을 느꼈다. 영상으로만 봤던 그 노래가, 내 앞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그 실력과 웅장함은 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좋았다.

투란도트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공주인 투란도트와 망국의 왕자 칼리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망국의 왕자 칼리프는 투란도트에게 한눈에 반해 구애하지만, 투란도트는 그를 냉철하게 거절하며 세 가지 수수께끼를 맞힌다면 자신과 혼인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긴다.
수수께끼를 맞히는 데 실패한 구혼자들을 가차 없이 죽이는 투란도트지만, 칼리프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투란도트의 아버지 알톰은 물론, 삼대신 핑, 팡, 퐁까지, 그 누구도 칼리프의 미친 듯한 사랑의 질주를 막지 못한다.
하지만 투란도트는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를가졌지만,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갈등과 선택, 혹은 도전과도 같은 희로애락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사랑을 향한 인간의 선택과 희로애락 속에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공주인 투란도트도, 왕자인 칼리프도 아닌 티무르의 노예 소녀 ‘류’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스스로를 포기하는 류의 사랑 노래, <얼음으로 뒤덮인 그대여>는 가히 최고였다. 자신을 봐주지 않는 상대의 사랑을 응원하는 류의 복잡한 감정이 내게 다가왔다. 류와 칼리프 모두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으나 그 결말은 달랐다. 그 때문인지, 어딘가 류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 박히는 것 같았다.
투란도트를 보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토리와 연출을 떠나, 나만의 포인트를 집어내는 것도 즐거웠다. ‘베이징’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판타지 속의 동양국을 만들어 놓은 듯한 오묘한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를 찾아내는 것은 물론, 구애와 거절을 두고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투란도트와 칼리프를 보며, 끝나지 않는 ‘창과 방패의 싸움’과도 같은 유머러스한 포인트들이 생각났다.
수수께끼를 모두 맞혔음에도 계속해서 칼리프를 거절하는 투란도트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느새 그녀에게 공감하고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투란도트>는 세계적으로 흥행한 마지막 오페라라고 한다. 1926년부터 지금까지, 이를 뛰어 넘는 오페라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투란도트가 이토록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란도트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메인으로 다루고 있다. 사랑을 위해 직진하는 칼리프, 끝내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투란도트,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류를 보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 가장 진솔하게 말하고 는 투란도트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흥미진진한 사랑 얘기에 더해진 화려한 무대와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가 더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게임 끝’이 아닐까.
언젠가는 베로나의 원형경기장에서 투란도트를 보고 싶다. 그 안에서 울릴 투란도트, 칼리프, 그리고 류의 목소리가 기대되어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투란도트가 주는 전율을 기억하며, 또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약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