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종교지만 나는 절이 좋아 - ep.3 용화사

이제는 관성이 되어버린 절에서의 머무름
글 입력 2024.09.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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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절에서의 머무름. 나에게 이 잠깐의 머무름은 어느덧 하나의 취미이자 관성으로 자리잡은 듯하다. 벌써 세번째 에피소드를 쓰고 있고 다음 머무름의 나름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는 시점에서 다소 엉성한 충동에서 시작된 나의 이 독특한 취미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온전한 쉼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참 신기하고 다행스럽기도 하다.


처음 에피소드에서 이 얇고도 꾸준히 이어지는 여행길의 시작은 사실 일종의 도피였다. 왜, 많은 이들이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머리 깎고 절이라도 들어갈까? 라는 말을 하지않는가. 템플스테이를 취미로 삼은 이후로 나도 절간의 환경이 선사해주는 걱정과 불안을 소각시켜주는 듯한 그런 안온함의 힘을 믿고 있다.


3회차를 맞이한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물론 도피의 목적도 있지만 이 시점부터는 확실히 내가 이 기묘한 여행을 나만의 놀이와 취미로 만들어 즐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본래 여행을 떠나기 전 행해야 하는 모든 밑 준비 과정을 귀찮아 하는 사람이고, 실제로 그로 인해 (특히 해외로 떠나야 할 때) 차라리 여행을 안 가고 말아 버린 적이 꽤 많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마음먹으면 어디서 그런 의지가 샘솟는 것인지 일사 천리로 계획을 짜고 예약을 마쳐 버리곤 한다. 심지어 이제는 그 준비 과정을 즐기는 지경까지 와 버렸달까. 준비 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절의 위치다. 자차가 없는 슬픈 뚜벅이이지만서도 이왕 여행 간 김에 2박씩 지내며 뽕을 뽑자는 주의인 내게 머무름의 장소로 삼을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절간의 위치가 너무 속세와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속세와 너무 가까우면 첩첩산중 둘러싸여 자연 속에서 근심을 잊는 경험을 포기해야 하고, 그렇다고 관광지와 크게 떨어져 있으면 템플스테이 이후의 여행 루트를 짜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까다로운 기준을 만족해야 했기에 이번 템플스테이는 과감히 명성과 인증된 후기를 조금 내려놓고 통영의 작은 절 용화사로 향하게 되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불확정성 또한 이 여행의 참 묘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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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충분히 갈 수 있으면서도 가파른 언덕, 그 위로 소담한 폭의 계단을 또 올라야 나타나는 절간의 위치도 흡족스러웠고, 낯선 여행자를 반기는 듯 걸려있는 오색찬란한 연등들도 마음을 참 설레게 만들었다. 종무소 앞에 짐을 놓고 들어가는 순간까지 나는 이 다음에 펼쳐질 장면들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채 평안한 절간의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여태까지 나의 소소한 템플스테이 이력에는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유명 절들 뿐이었기 때문일까 당연스레 함께 머물게 될 수련생들과 유의 사항 등이 프린팅 된 종이를 보며 체계적인 안내를 받는 그림을 생각했지만, 종무소 안에서 마주한 것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듯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신 어머니 나잇대 직원 분과 매우 강렬한 눈빛을 지닌 스님 두 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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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방치 이후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두 분과 함께 찻잔이 놓인 커다란 탁자에 둘러 앉게 되었다. 눈빛부터 범상치 않으셨던 스님은 알고 보니 이 절의 주지 스님이었고, 또 알고 보니 상당한 수다 능력을 보유하고 계셨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안내만 받고 곧 떠날 줄 알았던 자리에서 약 2시간 가량을 보내게 될 줄은 말이다.


나의 어쩔 수 없는 호응 습관과 오랜만에 찾아온 외지인의 존재에 신이 나신 스님은 종이를 꺼내 들어 필기까지 선보이셨고, 결국 나는 앉은 자리에서 이 절의 유래와 역사부터 시작하여 온갖 부처님의 교리와 말씀에 대한 설법을 꼼짝 없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밖에 놓아둔 짐이 걱정된다, 부모님께 도착했다는 연락을 드려야 할 것 같다는 모든 핑계와 화장실 찬스까지 동원해 보았지만 그 어떤 것도 스님의 말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절간의 분위기와 미감을 사랑한 것이지 그다지 독실한 불교 신자인 것은 아니었던 나였기에 이 상황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시련이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 경험만큼이나 온전히 절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어디 있겠나 싶다. 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신 스님께 직접 듣는 특강이나 다름 없었으니 말이다.


주지 스님의 오랜 설법이 끝을 보인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종무소를 선뜻 벗어날 수 없었다. 용화사는 규모가 작은 절이라 사실상 사무 직원 분이 한 명 뿐이었기에 다른 스님께서 사무 업무를 겸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계셨던 것 같았다. 때문에 전자기기에 능해 보이는 젊은이의 등장은 곧 훌륭한 사무보조 인력 활용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스님의 옆 자리에 앉아 홈페이지에 이전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감상문을 올리는 일을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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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참 기묘하면서도 어디에서도 못해볼 경험이지 않았나 싶다. 사실 그동안의 휴식형 템플스테이에서는 명칭과 달리 절을 그다지 깊게 경험하기 어려웠다. 이전에는 철저히 외부 손님으로서 절을 소개받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템플스테이에서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말로 절의 구성원이 되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의 숙박인이 나 뿐이었기 때문일까, 혹은 규모는 작지만 정이 많은 용화사의 특징이었을까, 그곳에 계시던 스님과 직원 분들도 모두 나를 한 1년은 함께 지낸 수도승을 대하듯 편하게 대해주었다. 같은 식당을 쓰더라도 분리된 공간에서 식사를 하던 이전과 달리 모두가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었고 타종 시간에는 선뜻 종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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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나는 이번 템플스테이를 통해 조금은 더 불교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꼭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정으로 절의 구성원으로 머물면서 이곳 사람들의 마인드와 생활 양식을 지척에서 목도하고 또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템플스테이를 하고자 했던 처음의 이유도 이렇듯 절에 조금쯤 더 가까이, 오래 머물고 싶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나의 템플스테이는 계속될 것 같다. 걱정을 내려놓은 곳이 필요할 때, 절에서 느꼈던 온기가 절실할 때, 또는 아무런 이유가 없더라도 절에서의 머무름은 이제 나에게 습관으로 자리잡았고, 다음 스테이에서 만날 인연과 경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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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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