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백종원으로 시작해 백종원으로 끝난 하루 [문화 전반]

괜찮아
글 입력 2024.06.12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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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11분.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도 아닌데 딱 맞춰서 눈이 떠졌다. 모처럼의 휴일이지만, 오늘은 옷을 보러 성수에 가야 했기 때문에 알람을 맞췄다. 티비를 보며 아점으로 엄마가 대강 구워 놓은 고기꼬치와 김을 햇반과 함께 먹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이렇다. 너무나 자연스러울 만큼.

 

티비에는 백종원이 나오는 새로운 예능이 하고 있었다. 일명 ‘장사천재 백종원’. 모로코의 세계 최대 야시장이라 불리는 곳에 가서 목돈 300만으로 장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원래라면 무한도전을 재방해주는 채널을 찾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백종원이 누구인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가게를 갖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까지 있다. 그의 전략이 과연 해외에서도 먹힐지 너무나 궁금했다.

 

결과는 역시는 역시. 장사 15분만에 자리가 꽉 차며 대성공을 이뤘다. 주방을 앞으로 놓아 철판쇼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식을 소개한다는 전략이 드러맞은 것이다. 그의 재능은 어디서든 통한다.

 

여유롭게 나갈 채비를 마친 뒤, 근처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성수에 도착했다. 춥다는 엄마의 말에 니트를 겹쳐 입었는데 더위에 땀이 나, 벗었다. 귀에 흘러나오는 'tyler'의 앨범이 약간 더위를 환기해줄 뿐이었다.

 

좋아하는 옷들을 구경하고 멋진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각 잡고 성수의 편집샵들을 둘러볼 기회가 없었는데, 실제로 구경해보니 눈이 바빴다. 무엇보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나도 나름 꾸민 것인데 이정도로 잘 입는 사람들이 많을 줄은 몰랐다.

 

되려 주눅들기도 했다. 편집샵을 옮겨 다닐 때마다 발은 무거워져만 갔다. 잘 모르고 브랜드 쇼룸에 들어가려 하자 초대받은 이들만 입장할 수 있다는 직원의 말에 얼굴은 몹시 붉어졌다.

 

어느새 해가 지니, 추워졌다. 니트를 챙기라는 엄마의 말에 괜히 챙겨갔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정말 다 아나 싶다. 춥다 보니 허기져 근처에서 혼밥하기 좋은 곳을 찾던 중 홍콩반점이 눈에 보였다. 오전에 티비에서 봤던 그 아저씨가 하는 식당. 간판에 걸려진 그의 사진 속 푸근한 미소가 왜인지 안심이 됐다.

 

짬뽕과 군만두를 먹으며 생각했다. 이 아저씨는 정말 요리에 모든 것을 걸었구나. 짬뽕의 맛이 특출나게 좋았던 것은 아니다. 문득 티비 프로에서 백종원이 모로코에서 미션을 받자 한 말이 생각나서였다. 그 말은 두려움 같은 감정이 아닌 자신이 통할 지 그저 궁금해하는 호기심의 말이었다.

 

옷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은 왜이리 패션을 좋아하는 걸까? 남들의 시선 때문에, 자기만족 때문에, 애인을 만들기 위해 혹은 진정 좋아해서 등 이유는 모르겠다. 괜시리 질투나 부러움이 생기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리 잘 입으려 해도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한다, 오늘처럼.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늘 하루는 백종원으로 시작해 백종원으로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본 백종원의 새 예능에서 백종원의 눈이 머리를 맴돈다. 명확한 꿈이 없는 나와는 달라보였다.

 

두려움이나 의기소침한 눈이 아닌 호기심과 열망의 눈. 그 눈은 흡사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해내겠다고 여기는 어린 소년과도 같았다.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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