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장래 희망은 일기 쓰는 할머니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 표현하는 삶
글 입력 2024.06.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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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의 가장 근사한 순간을 찍고 싶다 해서, 그 순간이 거기 멈춰 나를 기다려 주진 않았다. 그걸 알아채고 만나러 가야 하는 건 나였다. 멈추지도, 기다려 주지도 않는 시간 앞에서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 (김신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 중)

 

벤자민 버턴의 시계만 거꾸로 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 역시도 거꾸로 어려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14권의 일기장을 모두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애늙은이 같았지만, 이제는 해맑은 아이처럼 웃을 줄 알고, 행복의 'ㅎ'을 주워 담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자그마치 삶의 절반을 일기로 남긴 후에야 깨달았다. 그 안의 청춘은 너무도 불안해서 아파했고, 불투명한 미래에 소리치며 악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왜 태어났는지, 왜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지 끊임없이 물으면서.

 

["부유하는 마음 조각들이 있다. 난 그 마음을 종이로 얇게 부욱 찢어 눈을 만들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인 즈음에 뿌리기 위해 많은 종이 눈을 만들었다. 그해 여름엔 볼 수 있는 사치가 내렸다. 비와 함께 떨어진 금빛 종이는 젖어 찢겼고, 끝내 녹아버렸다. 그것들을 보며 왜 내 마음은 연약할까 생각했다. 더욱 연약해지고 싶다. 강해지라고 하는 세상에 약함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한없이 약해져 모든 것을 흡수해서 더 이상 다치는 것이 없도록 하고 싶다."] (18년 여름의 일기 조각 중)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던 이십대는 삼십대가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궁금했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넘어갈 때 느꼈던 그 낯설고 어색한 느낌일까, 아니면 또 다른 경계선에 서 있는 느낌일까. 말끝마다 물음표를 달며 고민하던 물음표 중독자는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쉼표와 마침표의 쓰임을 알게 되었다.

 

이십대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너의 걱정과는 달리 삼십대는 평온하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가볍고 잔잔한 물결 같은 삶이라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주워 담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너무 아파서 포기했던, 동경했던 꿈들도 하나씩 이뤄가고 있다고. 그리고 젊음을 더 젊게 사용해서 미리 늙어줘서,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고 말이다.

 

["오늘은 찬 기운이 선바람에 서려 있다. 어제 폭풍우 같던 비에 잔향이 배어 버린 습한 기운은 내일도 비가 올 거라고 암시한다. 결코 내 공간이 될 수도, 혼자만의 여유를 느낄 수도 없는 이곳에서 한동안 잊어버린 낭만을 찾아보려 애쓴다. 잔뜩 짊어지고 온 가방과 책들이 무색할 만큼 감성 가득한 곳에서 오랜만에 어깨통증을 느낀다. 나도 여름의 비 냄새를, 뜨거운 햇볕을, 바다를 거니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한때 여름을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살기에 바빠 다가온 그림자가 겹쳐 계절을 미워했다."] (21년 여름의 일기 조각 중)

 

이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생계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더는 진득한 아픔에 녹아드는 사람이 아닌, 일기장에 기쁨의 'ㄱ'을 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가방에 좋아하는 책과 일기장 한 권씩을 넣고 다니며, 전망 좋은 카페를 찾아다니는 낭만적이고도 명랑한 노년기를 보내고 싶다.

 

점차 나아져 가는 내 삶처럼, 아프지 말고 천천히. 조급해하지 말고,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아직 이곳에는 푸르른 풍경이 많이 남아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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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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