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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감정은 뭉툭한 어떤 느낌으로 스쳐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은 복잡하고 추상적이며 또 언어는 제한적이어서 그에 꼭 맞는 하나의 이름을 찾는 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지구 한 바퀴를 다 돌아도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감정의 구체적인 형상을 빚으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외로움을 외로움이라 말하는 대신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다”거나 “같이 있는데 꼭 혼자 있는 것 같다”는 표현으로 바꿔 말하는 건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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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 12년에 걸쳐 감정에 적확한 언어를 찾는 일에 도전해온 사람이 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을 쓴 존 케닉이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쓴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없는 언어 체계 자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든 언어의 확장을 시도해봐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개인 블로그를 시작으로 이후에는 유튜브와 책을 통해 해온 그의 십여 년 ‘감정 신조어 프로젝트’를 집대성한 이 책이 탄생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감정과 관련한 300여 개의 신조어 목록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외로움을 예로 들어보자. ‘이니티(innity)’는 “자신의 것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닌, 삭막하면서도 집처럼 편안한” 호텔방에서 느끼는 복잡한 고독감을 뜻하는 단어다. ‘inn(여행자를 위한 여관 혹은 주막)’에 ‘inanity(어리석음; 의미나 생각의 완전한 부재)’를 조합한 말이다.

 

그런가 하면 ‘웬베인(wenbane)’은 ‘wen(대도시; 종기처럼 부풀어 거대하게 충혈된 도시)’와 ‘bane(골칫거리, 독)’에서 온 말로, “지하철 벽의 포스터 말고는 누구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낯선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초라하고 외로운 기분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 이런 종류의 외로움도 있지 않은가. “그때 그 자리에 없던 사람에게는 그 강렬한 기억을 전할 방법이 없다는 슬픔”. 이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는 스코틀랜드어 ‘auld lang syne(그리운 옛날)’의 축약형인 ‘올래시(aulasy)’다. 이처럼 저자는 감정의 미묘한 차이와 특징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감정 사전이면서 시 같기도 한 신조어 목록을 완성했다.


 

라쿠너 (la cuna)

 

미개척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찌릿한 슬픔. 마지막 탐험가가 무리를 이끌고 지도상의 마지막 공백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다가 갑자기 집으로 방향을 돌려 마지막 섬 하나를 탐험하지 않은 채로 남겨둠으로써 우리가 그곳을 신비의 전략적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둘 수 있게 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슬픔.

 

어원 라틴어 ‘lacuna(채워지지 않은 공간이나 구멍)’+ 스페인어 ‘la cuna(요람)’

 


단어의 뿌리를 살펴보면 단어 의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가령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라는 사전적 정의의 ‘낭만’이 ‘물결 랑(浪)’과 ‘흩어질 만(漫)’이라는 한자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는 정보를 통해, 우리의 인식 속 단어 주변으로 ‘물결’과 ‘흩어지다’, ‘흩어지는 물결’ 같은 - 언뜻 보면 단어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 키워드가 달라붙고, 자연스럽게 의미가 확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단어들은 영어 외에도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를 뿌리로 하고 있고, 현존하는 단어를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어원은 저자의 박학한 언어지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일 뿐 아니라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의미들의 연결 가능성을 - ‘물결’과 ‘흩어지다’를 조합한 결과가 ‘낭만’이듯 - 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면 하나의 단어 그러니까 이 책 안에서는 감정이고 마음인 것들을 이해하는 일에는 상상력이 따른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 그 돌이 우리 손바닥 위로 차례차례 건너온다. 정확하게 만져지는 단단한 슬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오래 겪어온 슬픔들이 이름을 얻고 거기 놓여 있어서 너무 반갑고 너무 좋아서 계속해서 웃었다.


- 김소연 시인의 추천의 말

 


그리하여 감정은 선명해진다. 그래, 선명함.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한 체험은 선명해진다는 표현과 가깝다. 안경원에서 안경을 맞추기 위해 시력 검사를 한 뒤, 흐릿한 배경 위로 착착 렌즈가 돌아가며 물체의 초점들이 점점 선명해질 때의 명쾌한 기분. 어쩌면 이런 느낌도 책 속 어딘가에서 이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처럼 “언어에서는 모든 게 가능하”고 “정의하지 못할 만큼 모호한 슬픔은 없”으니까 이 자리에서 만들어볼 수도 있을 것이고.

 

오갈 데 없이 배회하던 감정에 또렷한 상이 맺힌다는 건, 감정을 더 이상 모른척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건 좋은 일이기도,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상한 감정들에도 마땅한 제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한 다행스러움, 마음에 숭숭 구멍이 뚫려있는 것 같은 기분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위안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애써 외면해온 감정들이 비로소 ‘있는 것’, ‘실체하는 것’이 되었을 때의 괴로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또 이 책의 단어들이 인간의 - 혹여 존 케닉 한 사람의 인식일지라도 - 인식을 비춘 결과물이기도 하다고 볼 때, 이 책은 하단 노트의 방식처럼 우리의 인식과 인간 본연의 속성을 이해하기 위한 힌트가 들어있는 참고서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모노이아 (harmonoia)

 

삶이 살짝 너무 평화롭게만 느껴질 때 (...) 두려워서 안달하게 되는 마음

 

note ‘harnomy(조화)’와 ‘paranoia(편집증)’의 조합. 조화로운 상태에서 겪는 편집증적 사고. 완전한 평화란 가능할까? 평화와 행복이 동일 선상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면 진짜 행복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이머렌시스 (immerensis)

 

왜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상태. 마치 문제가 정말 많아서 단지 움직이게 하려고만 해도 매일 손봐주어야 하는 중고차를 파는 듯한 기분이 들어 경고를 해주지만, (...)

 

note 라틴어 ‘immerens(...을 가질 자격이 없는)’을 어원으로 한다. 나 자신과 하루 24시간을 꼭 붙어 함께 지내본 사람이라면 - 그러니까 누구나 -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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