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앞과 무대 위를 잇다 - 더 발레리나

글 입력 2024.06.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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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이유


 

공연 예술의 묘미란 두말할 것 없이 현장성 아닐까. 공연의 모든 각 회차는 바로 그 순간, 그 공간, 그 사람들이 함께 뒤섞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조금 진지한 관객들과 함께 묵직한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고, 유쾌한 이들이 유독 많은 날엔 전체 현장의 분위기가 들뜨기도 한다. 어떤 회차든 완전히 똑같은 형태로 재현될 수는 없다.

 

그래서일까, 집에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와는 다르게 직접 공연장을 찾는 날에는 어쩐지 일종의 결심과 함께 집을 나서게 된다. 다시 없을 이 날을 온전히 즐겨주겠다고나 할까.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닌 듯하다. 장내의 조명이 어두워지면 웅성거림도 서서히 잦아들고, 약간의 숙연함이 감돌기 시작한다. 막이 완전히 오르고, 출연진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이어지는 적막. 숨을 삼킨 몸이 조금 뻣뻣해질 정도다.

 

다만 이런 사소한 뻣뻣함은 출연진들의 결연함에는 비할 바가 아닐 터다. 관객들이 마주할 앞으로의 한두 시간.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그 시간을 위해 무용수들은 몇 번이고 똑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른다. 온전히 다듬어진 상태를 선보이기까지 숱하게 거듭되었을 실수와 시행착오들은 모두 스테이지 밑에 두고 올라와야 한다. 셋팅된 머리, 아름다운 의상, 완벽한 기술. 그리고 그렇게 무대 안팎에서 생겨나는 구분마저 공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공연을 만났다. 무대 위의 완벽한 순간 자체보다, 완벽해지려던 처음의 이유에 초점을 한번 맞춰보자던 공연.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서, 딱 무대만큼 뻗어있던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자던 공연. 유니버설 발레단의 '더 발레리나'다.

 

 

포스터.jpg

 

 

 

더 발레리나


 

가끔 사이드에 치우친 좌석에서 공연을 관람할 때가 있다. 무대 가장자리가 눈에 잘 들어오니 남들보다 조금 빨리 출연진의 등장을 알아채고 박수를 보낼 수도 있고, 퇴장의 마지막까지를 눈으로 좇을 수도 있다. 그렇게 출연진들이 무대를 오르내리는 모습이 얼핏얼핏 보이는 자리는 나름의 재미가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자면, 급박하게 돌아가는 백스테이지에 대한 상상이 자연스레 뒤따르고 이내 묘한 기분이 든다. 순간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 같으니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겹겹의 현실이라는 자각이 찾아온다. 감춰졌어야 할 경계를 본의 아니게 엿본 듯하다.

 

그런데 '더 발레리나'는 그렇게 무대를 기준으로 생겨나는 경계를 처음부터 허물고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막이 오르기 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몸을 묻어두는 애매한 시간이 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잠시간은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는 합의, 그 합의에 대한 준비를 하느라 정신을 흘려보내는 때. 이번 공연에서는 특이하게도 그 시간 동안 몸을 푸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반투명한 막 너머로 그대로 보였다. 원래라면 무용수들의 동선을 제한하지 않도록 텅 비워졌어야 할 무대 한가운데에는 발레 바가 놓여 있었다.

 

 

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99).jpg

 

 

그렇게 뚜렷한 시작 신호 없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실내의 조도가 낮춰지기 시작했다. 약간은 어리둥절한 채로 앉아있으니, 연습 현장을 반투명하게 가리던 장막이 걷혔다. 동시에 연습을 멈추고 무언가 이야기가 진행되리라는 생각과는 달리, 무용수들은 그저 동작을 이어가고 무어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후의 진행은 더욱 예상을 벗어났다. 마치 연습 현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화려한 기술과 안무가 아닌 몸을 푸는 간단한 동작들이 계속되었다. 몸의 언어로 모든 것을 전달하던 기존의 발레와는 달리, 마이크를 거친 출연진의 육성이 이따금 귀에 꽂히기도 했다.

 

종종 흐트러지는 대열, 부상 당하는 발레리나, 거듭되는 코칭 멘트. 무대 의상 대신 연습복을 입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 발레하면 떠올렸던 막연한 동경과 선망과는 다른 결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무작정 멋있지만은 않은, 어쩌면 지루하기까지 한 반복의 시간들, 실수들, 인간의 한계를 딛은 채 몸을 계속 꼿꼿이 세우고 제어하는 일의 고단함... 그런 현실감은 내가 공연을 볼 때 굳이 찾으려들지는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직면은 나의 환상을 깨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했다. 현실감을 가득 쌓아올려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결과에 대해 오히려 경이를 자아냈던 것이다.

 

 

The Ballerina-ⓒ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3).JPG

 

 

문훈숙 단장의 해설 이후 공연 후반부는 기존의 발레처럼 완벽한 '무대 위'의 모습이 주로 이어지지만, 무대 양 옆에는 언제나 긴장된 몸을 풀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실 속 발레리나들의 모습이 함께한다. 이제 관객들은 라흐마니노프와 맥도웰의 선율에 맞춰 춤추는 무용수들의 화려한 몸짓을 보면서도, 그 빛나는 순간들이 한순간에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안다. 무대 위가 더욱 완벽해질수록, 다시말해 환상적일수록 그것을 환상처럼 '보이게 만든' 현실의 노력을 함께 의식하게 된다.

 

그렇게 '파가니니 랩소디', '맥도웰 2인무'를 거쳐 '미리내길'과 '비연'을 끝으로 갈라 형태의 공연이 끝나고, 다시 무대 아래 발레단의 연습 장면이 조명되지만 그를 대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처음의 의문스러움과는 사뭇 다르다. 이 일상적인 순간들이 더없이 멋진 무대의 형태로 쌓아올려진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같은 공연을 40번이나 올려야 한다며 웃음 섞인 투정을 뱉으면서도,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의 계기를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내는 단원들. 직전에 보았던 그들의 유려한 춤은 이런 숱한 '다시' 위에서 일궈진 것임을 알기에 이제 이 장면들은 '그저' 백스테이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스테이지를 성립하게 하는' 백스테이지인 것이다.

 

달콤한 시간을 기대하는 젊은 연인, 난생 처음 발레를 보는 아이와 그런 아이에게 발레를 설명해주는 어머니... 공연장에 모이는 사연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은 같다. 무용수들도 마찬가지다. 발레를 시작한 계기도, 맡은 역할도 각자 다르지만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멋진 무대를 올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은 같다. 그 마음 하나로 이어진 모두가 무대 앞과 무대 위에 모인다.

 

그렇게 연습을 이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는 '더 발레리나'는, 공연 예술이 본질적으로 품은 벅찬 사실 하나를 새삼스레 일깨운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과 시간과 마음들은 겨우 어떤 한 순간을 위해 모이고 쌓이기도 한다. 하필 이날, 하필 우리가, 하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황수빈.jpg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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