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뭐라 말로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나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저 사람은 '어떤 특정 사건' 때문에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다고 느껴 나를 미묘하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괴롭혀왔어. 그런데 가끔 내가 다른 더 높은 상사한테 공개적으로 망신당하며 깨지는 모습을 목격하면 그 사람도 사람인지라 나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듯해. 눈에 띄게 유하게 대해주는 것이 느껴져. 가끔씩은 도움도 주고. 그런데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만 내가 실수를 하면 다시 나를 이전보다 더욱 푹푹 쑤시며 갈궈. 그러면 이 사람은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편으로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 자유도 있다고 생각해. 서운함을 느낄 정도로 나도 딱히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나는 그 사람의 눈빛, 말, 행동이 계속 거슬리고 기억에 남는 게 너무 싫어. 나 역시 시간과 상황에 따라 그 사람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고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게 고통스러워'
이걸 '한 단어'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와 같이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복합적인 상황과 감정을 기존에 없던 한 단어로 정의하는 '신조 단어 사전'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 라웃워시 (routwash) - 여러 해 동안의 노력을 되돌아보고는 적은 성과만을 확인하고서, 줄곧 기술과 인맥과 경험을 모았음에도 결국에는 그중 대부분이 거의 무가치한 것, 이력서에 쓸 한 줄, 약간의 칭찬, 한 줌의 작두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 / 어원 : rout(패주) + wash(근소한 투자 수익률) + outwash(녹은 빙하에서 흘러내린 자갈투성이의 퇴적물)
* 아네코시스 (anechosis) - 자신을 이용하려드는 장사꾼이나 자신의 기분을 상하게할까 봐 두려워하는 지인에게서 계속해서 듣고 싶은 말만 들어서 지쳐버린 상태; 누군가 용기를 내서 마침내 자신의 헛소리를 큰소리로 지적해주고 자신의 오랜 추정에 이의를 제기해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다그쳐주길 - 그럼으로써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려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친절을 베풀어주길 - 바라는 마음 / 어원 : an (~에 맞서) + echoes(메아리)
* 안트로디니아 (anthrodynia) -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옹졸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방식으로 서로를 얼마나 자유롭게 쓰러뜨릴 수 있는지 알고서 지친 상태. 때때로 친절하고 진지하고 너그럽고 뻔뻔할 만큼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불러일으키는 반작용 효과를 낳기도 한다. / 어원 : 고대 그리스어 (인간 : anthropos) + (슬픔, 괴로움, 고통 : odune)
* 키르 (Keir) - 한때 집처럼 느껴졌던 장소로 돌아가 수년 전의 사랑스러운 기억을 재현해보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밀랍 인형 박물관을 걷기라도 하듯 기묘한 기분만을 안겨줄 뿐인 불운한 시도 / 어원 : 네덜란드어 (Kier: 길게 갈라진 틈; 모래시계의 가운데 부분처럼 좁은 입구)
* 하프와이즈 (halfwise) -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정신적 모래시계를 밤새 뒤집어서 힘차게 쏟아지는 놀라운 즐거움을 작은 마지막 환호성으로 바꿔 놓기라도 한 듯, 방학이나 한 학기 등의 즐거운 경험이 절반 이상 끝났다는, 시작했을 때보다 눈에 띄게 끝에 가까워졌다는 갑작스러운 깨달음 / 어원 : 노르웨이 공용어 중 하나인 부크몰 halvveis(중간에)
2009년, 작가 존 케닉은 불완전한 언어의 빈틈을 메우고 싶다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존 케닉의 개인 블로그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금세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냈고 유튜브 채널로 발전,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언론 매체로부터 찬사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해당 저서에는 기존에 없던, 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과 감정에 대한 수백가지의 신조어가 300페이지에 걸쳐 수록되어있다. 평소 단어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특수하고 섬세하지만 일상적인 상황을 위한 신조어를 만들고 그에 걸맞는 설명을 덧붙이는 작가의 작업이 정말 흥미로웠다.
해당 저서는 영어권 국가에서 쓰여진 책으로 '영어단어'(일부 외국어도 있지만)에 대한 편견을 깨어주기도 하였다. 각 국가별로 어휘,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기 마련인데 대게 한국어는 비슷비슷해보이는 요소들에도 각각의 세밀함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다채롭게 존재한다. (예: 샛노랗다, 시퍼렇다, 낯뜨겁다 등) 그에 반해 영어는 세밀한 표현의 단어들이 굳이 따로 존재한다기보다 소수의 단어들이 광범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 'amazing'은 놀랍다는 뜻뿐 아니라 멋있다, 최고다 등의 다양한 의미를 동시에 가지는 경향이 있음)
표현의 방식은 달라도 국경을 넘어 사람의 생각과 감정은 어느정도 겹치는 구석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영어의 특징은 원래 이렇다, 한국어의 특징은 원래 이렇다 하는 기존의 언어적 관습을 넘어 새로운 언어적 표현이 탄생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저러한 '섬세한 영어'가 신기하고 반가웠다.
'공감'은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있다. 상황 자체는 각자 전혀 다를지라도 '비슷한 특정 감정'이 들면, 공감을 불어일으킬 수 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사소함을 놓치지 않는 묘사가 기존에 없던 신선하고 새로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매력적인 책인 것 같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이러한 복잡미묘함이 나만의 것은 아닌 걸 알게 되었을 때, 모두한 이러한 복잡미묘함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의 공감의 폭은 더욱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