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흡연에 관하여 [음악]

윤종신 <담배 한 모금> (2002)
글 입력 2024.05.2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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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발머리 쓸어넘기고 쓰레빠 질질 끌며 우리 동네 슈퍼 ‘홈마트’로 걸어간다. 이곳은 중년 부부 두 분이서 운영하시는데, 아침이면 나물을 손질하는 아주머니가 바쁜 손길과 차분한 눈길로 자리서 일어난다. 아주머니는 내가 뭘 살지를 알고 있다. 저기요 숙취해소제 쎈 놈으로 하나 주시오라는 절박함과 상등하게 에쎄 체인지 일미리 하나 주세요. 를 물먹은 목소리로 부르짖는다. 왜인지 항상 에와 쎄 사이서 나는 삑사리를 낸다. 응 4,500원. 이런 젠장 아침부터 최저시급 절반을 탕진하다니. 오늘의 운세는 발기부전이라니.

 

탁탁탁탁탁탁탁 7번의 마사지 후, 게걸스럽게 비닐을 벗기고 종이를 뽑는다. 그리고 앙. 삼일은 굶은 것처럼 담배를 뜯어놓고는 불을 붙이니 이거 참 기분이 뭐랄까, 좆같다. 그러고 보니 ‘흡연금지’ 팻말이 눈에 걸린다. 우리 아파트는 최근 암묵적 흡연구역을 전면 폐지했는데, 합법적 흡연을 위해선 족히 25분을 걸어 구청 흡연장까지 가야 한다. 에라이 씨발 좆까라. 팻말 붙은 정자에 앉아 뻑뻑댄다. 가끔 그 팻말을 붙인 경비아저씨도 이곳에서 나와 맞담을 핀다. 죄책감이 하나 있다면, 하필 그때가 애기들 등교 시간이라 아저씨가 미안하다. 아저씨가 이걸 펴야 똥을 싼다. 싶다가도 눈이 마주친 애기의 쪼그맘이 너 좀 귀엽다. 저 멀리 분리수거장으로 찌그러져 다시 뻑뻑댄다. 그러다 보면 나 같은 아저씨들이 한둘 모인다. 하 그것참 나도 얘도 쟤도, 지금 이 반복이 좆같다.


아, 신호가 온다. 신호가 와. 삑삑삑삑 삐리링. 이제 막 일어나 쇼파서 커피 한 잔 중인 어머니와의 첫 대화는, 어휴 담배 냄새. 엄마 미안, 그렇다고 엉덩이만은 차지 말아줘. 찝찝한 듯 상쾌한 시간이 흐르고, 이제 좀 잠이 깬다. 노트북을 열어 메일을 확인하고 수신확인을 확인하고 읽지않음을 확인하고 이 새끼 봐라. 다시 뻑뻑대러 나간다.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다 뻑. 점심먹고 뻑. 이 새낀 또 뭐야 뻑. 이건 또 왜 렉걸리니 뻑. 다음 기회에 보셨으면 좋겠 뻑. 다 때려칠까 뻑. 너는 왜 연락을 안 하니 뻑. 하이패스 자동 출금에 뻑. 네 김미영 팀장인데요 대출 안 필요하세요 뻑. 그냥 줘라 뻑. 뻑뻑뻑뻑뻑뻑뻑뻑뻑뻑뻑 뭐야 이거 아침에 샀는데 왜 없어.


온종일 쥐어뜯은 머리를 가다듬고 쓰레빠 질질 끌며 홈마트로 간다. 저녁엔 아저씨다. 이정재 닮은 미남형 외모에 저녁이면 7080 LP를 트는 아저씨를, 나와 내 친구들은 ‘홈마트 이정재’라 부른다. 우리는 그의 외모와 선곡 센스가 정말로 자랑스럽다. 반면 홈마트 이정재는 내가 입구로 들어서기 3초 전 수줍어하며 부랴부랴 노랫소리를 줄인다. 아니, 우리는 당신이 정말로 자랑스럽다니까 왜 소리를 줄이는 거야 왜. 홈마트 이정재는 나를 본 지 10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미성년자인지 힐끔힐끔대다 물건을 준다. 수고하세요, 다시 커지는 노랫소리에 문득. 하루에 두 갑은 너무 중독자 같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 또다시 뻑뻑댄다. 그때 나 좀 센치해진다. 윤종신의 <담배 한 모금>이 가슴을 후벼판다. 그래 이 맛이야.


그 순간에 내가 인정이 좀 많아진다. 때릴까 싶던 아무개들 앞에서 비굴하게나마 다시 웃을 수 있을 거 같다. 백해무익이라던 담배와 저녁의 운세는 폐암이라는 담배각이 사랑스러워진다.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친다. 좀 더 오래 스쳤으면 해 한 대 더 문다. 그리고 꿰애액 헛구역질을 한다. 오늘도 너무 많이 폈다. 나는 네가 좋다가도 싫고 싫다가도 좋다. 피면 끊고 싶고 끊으면 피고 싶다.


그렇게 내 금연의 역사는 장장 30회가 넘어간다. 세상에서 금연만큼 쉬운 게 없다. 나는 이미 30번도 넘게 성공했으니까. 사람들은 내 말이 장난인 줄 아는데, 나는 진지하다. 마지막이다, 라며 태우는 돛대의 애절함을 당신이 아는가. 그게 얼마나 애절한지 필터까지 태우다 매번 켈켈댄다. 아, 종신이형 미안해요. 나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일 거 같아. 그 미안함을 당신이 아느냐고.


다시 아침이 밝고, 산발머리 쓸어넘기는 거까진 했는데 쓰레빠 질질 안 끄니 좀 허전하다. 어제 본 아주머니가 그립다. 내 삑사리가 듣고 싶다. 4,500원 그거 스타벅스 대신 맥심 먹으면 된다. 발기부전을 걱정하기에 나는 아직 많이 젊고 건강하다. 그러니까 허전하다. 거기까진 참을 수 있다.


너는 또 왜 날 화나게 하고, 얘는 또 왜 내 일에 훼방 놓고, 쟤는 또 왜 나를 질투하는 거야. 도대체 왜 날 짓밟지 못해 안달인 거야. 나는 또 왜 거기에 일일이 반응하는 거야. 왜 내 문제점은 일이 이 지경이 되고서야 보이는 거야. 종신이형 목소리는 왜 이리 좋은 거야. 왜 난 웃을 일이 없는 거야. 주모 안 되겠소 여기 에쎄 하나 주시오!


올해 들어 내가 이렇게 즐거운 적이 있었나 싶던 미소로 홈마트에 입장해 4,500원 시원하게 긁고 게걸스럽게 비닐을 벗긴다. 그리고 불을 탁. 아, 좆같네. 어쩜 이리 똑같은 레파토리인지, 네가 그럼 그렇지라는 비아냥에 찌그러져 있는다. 나는 정말 진심이었는데, 내 행동이 정말 장난 같아 좌절스럽다. 나는 언제쯤 담배 없이 살 수 있는 걸까. 흡연 없이 버틸 수 있는 몸이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되는 건가.


나를 달래주는 게 담배 한 대뿐이라는 게, 비루하다. 기분 좋은 일이 많아, 일이 술술 풀려 흡연 없이 살고 싶다. 아, 나는 정말 그러고 싶다.


이번엔 정말 그러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리됐네.


일단 담배 하나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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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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