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는 한국인의 역사적인 기억과 정체성이 담긴 곳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고문받고 희생된 장소이다며 한국의 역사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수행평가를 위해 친구들과 함께 처음 방문한 이후, 성인이 된 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문득 서대문 형무소가 떠올랐고 즉흥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15년 만에 다시 방문한 서대문형무소를 구경해보면서 여전히 내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였지만 달라진 부분도 있었다. 그건 바통곡의 미루나무가 모두 죽어버렸다는 점이다.
서울 서대문 형무소엔 사형장 담벼락을 사이로 비슷한 시기에 심은 두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 이 나무를 붙잡고 원통함을 눈물을 토해내며 통곡했다고 해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신기한 점은 두 나무 중 사형장 밖에 심은 미루나무는 쑥쑥 자랐으나, 사형장 안쪽에 심은 미루나무는 마르고 키도 밖의 미루나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안쪽의 작은 나무는 억울하게 죽은 독립운동가들의 한이 서려 있기 때문에 잘 자라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미루나무는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의미와 아픈 과거가 담긴 상징적인 나무였고,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15년 전에 방문했을 때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안쪽의 작은 미루나무는 2017년에 말라 죽어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고, 밖에 있던 큰 미루나무는 2020년 태풍에 의해 쓰러지며 죽어버렸다. 수명이 80~100년이라는 미루나무의 특성상 두 미루나무는 사실 천수를 누리고 간 것과 다름 없지만 역사적인 상징물이였던 통곡의 미루나무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아쉬움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미루나무는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기 전 뿌리에서 자행한 아기 미루나무 두 그루를 식재하였고 현재 다른 곳에 옮겨 심어진 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가 깃든 미루나무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뿌리가 자라 또 다시 새롭게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을 통해 통곡의 미루나무는 지금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통곡의 미루나무가 모두 사라진 이유는 지금 현재의 우리는 더 이상 통곡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 할 일을 마친 미루나무는 원통함에 눈물을 토해내던 독립운동가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들의 곁으로 떠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