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괴물 아닌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 잔혹사

학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한 가지
글 입력 2024.05.1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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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과학자들이 아주 냉철한 판단력과 탐구의 자세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문명이 진보를 거듭하는 동안 그들은 주어진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으며, 이에 의거한 지위는 의심할 나위가 없어 보인다. 부족한 예산, 떨어지는 체력과 끝없는 실패, 찾아오는 갈등과 서늘한 고뇌. 이들의 일생은 숭고해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과학 잔혹사>는 과학자들의 열정과 목적의식을 인정한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자에 대한 의심 없는 신뢰에 대해선 경고하고 있다. 정확히는 숭배에 가까운 믿음이 윤리의식이 조금 부족한 누군가에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도록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표본 채집을 위해 노예선을 출발시키고,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질병을 감염시키고, 전기 문명의 시작을 위해 동물을 전기로 고문하고... 

 

우리는 모든 발전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불쾌한 진실을 들춰본 적이 없다. 있더라도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친다. 전 인류를 위한다는 의식과 연구가 윤리 없이 만났을 때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하는지 공교육에서 진지하고 중점적으로 다뤄진 적이 있던가? 적어도 나는 그것을 암기한 기억은 없다. 

 

"양심이 있어야 할 곳에 진공이 있다."

 

누군가 에디슨에 대해 이렇게 조롱했다. 천재 과학자라는 수식어를 통해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사회성 문제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자신의 명성을 방패로, 사업수완과 비전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 행동에도 거리낌 없던 에디슨의 모습을 비판한 것이다. 우리가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여긴 이유에는 의식이 있어야 할 곳에 진공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평생 과학을 지식의 영역으로만 여겨왔다. 그렇기에 자세가 아닌 정보를 머릿속에 넣어두기만 했다. <과학 잔혹사>는 여기에 의문을 표하는 책이다. 우리가 과학을 지식의 영역으로만 여기고 이에 임하는 자세는 갖추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불이익과 고뇌의 폭풍은 발전의 기쁨보다 클 수 있다. 

 

"이들은 마치 좋은 것으로 나쁜 것을 상쇄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윤리를 도덕적 회계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과학자들에게 인명의 희생에 비하면 그러한 고통은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믿게 했던 냉전 시기의 편집증이 있었다."

 

책은 과학에 윤리가 접목되지 않아 발생한 다양한 나쁜 사례를 조명한다. 동기 혹은 실천 과정이 부적절해 공분을 사는 것은 별개로, 실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희생이 무의미할 만큼 지적 발견 혹은 가치가 없거나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예로, 책의 세 번째 장은 한두 세기 전 해부학자들의 필요로 인한 시신 도굴의 증가를 조명하고 있다. 도굴을 통해 은밀히 실험대에 오른 시신은 대개 무덤에 도굴 방지 장치를 해둘 수 없었던 가난한 이들의 것이기에, 계급 갈등은 물론이요 편향된 인체 정보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결과를 낳았다.   

 

비교적 현대에 와서도 이런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해왔다. 냉전 시기 고문 기술의 발전에는 자신도 모르게 지속해서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무구한 사람들이 숨어있으며, 성 정체성에 환경과 신체 무엇이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떤 아이들은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채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다. 이들이 받은 피해가 직간접적으로 야기한 사회적 비용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물을 알지 못한 채 혜택을 얻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전 인류에게 득이 되어야 한다는 과학 발전을 향한 여정이 어떤 이들에겐 불행을 가져온다는 점은 너무나도 모순적이다. 더욱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까닭은 그 불행이 편히 내 방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선진국의 나에게 닥칠 확률이 현저히 낮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잔혹사를 일구어낸 이들이 괴물 같은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지적 호기심이 집착이 되도록 용인하고 또 적당히 관심을 꺼준 이들이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었다. 사실상 모두가 공범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한 도덕의식이라는 도외시를 통한 암묵적 동의는 이토록 무섭고 쓸쓸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윤리에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편해지려면 어떤 행동강령이 갖춰져야 할까? 도저히 불법적인 무언가를 통해서가 아니면 탐구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에도 우리는 윤리를 지킬 수 있을까? 

 

발전을 위한 희생은 언제나 뜨거운 주제다. 트롤리의 딜레마에 정답이 있던 적이 과거에도, 앞으로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읽는 내내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필요악'이라는 단어가 있지 않은가. 어쩌면 과학의 잔혹사는 바로 그 필요악의 사례들을 묶어놓은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는 공범이지만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역사적 고발 책은 그것을 위해 쓰였다. 

 

앞으로 일어날 과학적 발견과 연구들에서 우리가 헤매지 않도록, 다시 괴물을 닮은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도록, 이 슬프고 아픈 이야기들이 길잡이가 되어줄지 모른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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