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라가 답신을 기다리는 중... [영화]

지구의 날, 영화 <수라>(황윤, 2023)
글 입력 2024.04.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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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을 쓰고 목련 가지로 몸을 기울인 사람. 역병 의사의 마스크처럼 긴 주둥이가 꽃송이를 파고든다. 빨려 들어간 공기가 정화통의 여과를 거친다. 목련 향은 색을 잃지 않고 그에게 닿을까?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위화감 없을, 파괴적으로 아름다운 구도의 이 사진은 4월 22일에 찍힌 가장 상징적인 사진 중 한 장일 것이다. 사진 속의 사람은 지구의 날이 처음 탄생한 1970년 4월 22일 거리에 나온 2,000만 군중 사이의 아무개였다.

 

그가 그날 그 자리에 있기까지 여러 조건이 포개어졌다. 1962년, DDT라는 살충제의 무분별한 남용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진술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와 미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인간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서서히 형성되었다. 1969년, 원유 시추 도중 파열로 일어난 산타 바바라 기름 유출 사고와, 폐유 등 오염으로 인해 수면 위에서 5층 건물 높이까지 불길이 솟았던 쿠야호가강 화재의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미 언론의 지면을 도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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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게일로드 넬슨 상원의원은 68년에 목격했던 거리에서 들끓던 힘을 환경 이니셔티브로 효과적으로 끌어올 적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대학원생 활동가 데니스 헤이즈를 필두로 6개월 간의 동원과 조직화, 홍보의 과정을 거쳐, 토론회, 연설, 환경 실천 집단행동, 집회 등의 풀뿌리 활동이 폭발적으로 번진다. 최초의 지구의 날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어 지구의 ‘날’보다는 ‘지구의 봄’에 가까웠다고 한다. 모든 미디어가 지구의 봄에 초점을 맞추며 환경 운동이 탄생하는 극적인 순간이 역사에 기록되었다.

 

곧 지구의 날이 54회를 맞는다. 근래 최악의 대기질이 연일 이어지면서 (방독면까진 아니어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거리에 속속 눈에 띄었다. 지구의 날과 마스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마스크의 이미지에서 더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환경 오염, 기후 위기는 상수에 불과하게 된 것만 같다. 인류의 시계가 종말의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과학적인 증명이 쌓여갈수록, ‘그래, 나도 알아. 새삼스럽게.’라는 식의 안일함이 덩달아 두터워지는 것 같다.

 

관 주도의 보여주기식 소등 행사와 기업의 프로모션으로 대표되는, 오늘날 한국의 지구의 날을 떠올렸을 때 그날이 시초에 역동하는 에너지와 함께했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현재 진행형의 종말 사건에 대한 기이한 집단 망각(나 또한 다르지 않다)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연구 주제에 걸맞을 거대한 질문은 일단 뒤로 한다. 당장은 관객을 한순간 망각에서 건져내는, 또 다른 파괴적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를 함께 바라보자. 황윤 감독의 <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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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가,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럼 된 거예요.”

 

잼버리 파행으로 인해 수면으로 떠오른 새만금 신공항 건설 문제를 기억하는가? 수라 갯벌은 새만금 신공항의 부지로 선정된, 새만금에 남은 마지막 갯벌이다. <수라>는 기억의 저편으로 저물어갈지 모를 수라의 시간들을 영사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미 끝난 싸움, 이미 운이 다한 갯벌로 망각되었던, ‘새만금 간척지’라는 묘비명을 받았던 생태가 스크린에서 살아난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갯벌이 자기 입으로 최후변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작은 새만금을 위해 싸운 사람들, 새만금과 함께 삶을(생계든, 목숨이든, 영혼이든)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갯벌을 대변하지만, 황윤 감독이 수라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점점 갯벌이 직접 말을 걸어온다.

 

이는 갯벌에 사는 생물의 활동을 인간의 삶과 겹쳐 보게 하는 몽타주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는 경험이다. 오동필 활동가가 생업인 목공 작업을 하는 장면 다음에 물새가 먹이활동을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물새 부리가 펄을 파고들 때 드릴 소리가, 톱질, 타카질 소리가 삽입된다. 다시 목공 작업 장면이 이어진다. 관객은 그 순간 인간의 생계와 물새의 생계를 같은 무게로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이식받는다.

 

새끼를 거느리고 물가에서 먹이를 잡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쇼트들 다음으로 아이들이 펄을 뒤지고 놀아볼 수 있도록 해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어른의 쇼트들이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감각을 불러온다. 펄에 박힌 사람들 다리의 클로즈업이 부리를 펄 속에 박는 새들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군산이라는 터전에서 사람의 삶이 이어지듯, 다른 생명의 세대도 전승된다는 것이 마땅한 무게를 지닌 명제로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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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지나치게 주관적이기도 한, 아름답게 채색된 생물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끈질기게 화면에 머문다. 관객은 생물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표정을 알아채고, 눈을 마주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화면에 꽉 차게 잡는 클로즈업은 대상의 감정에 이입하라는 노골적인 주문이다. 망둑에게, 게에게 무슨 감정이 있을까. 그러나 처음으로 갯바닥을 기는 생물의 외피 위 촉촉한 반짝임과, 눈 안에 깃드는 빛을 목격한 관객은 경청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들은 마침내 가공의 발언권을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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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관객은 도요새의 시점으로 ‘나무 같기도, 핏줄 같기도’ 한 갯벌을 내려다보기에 이른다. 영화에서 대상은 보이고 판단에 처한다. 무엇을 보여줄지를 프레임이 한정하기 때문에 대상의 행위조차 수동태로 화하고 만다. 그런데 감독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드넓은 갯벌의 드론 쇼트를 ‘도요새의 시점’이라고 칭함으로써 도요새에게, 갯벌의 생태에 시선의 권력을 가공으로 이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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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에서 감독은 청춘을 새만금에 바쳤으며 수라를 자신에게 소개해 준 활동가와 대화할 때, 수라가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는 그 감각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구현했다. 이때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발화할 권리, 바라볼 권리를 가지게 된 인외의 생물, 그들이 살아가는 최후의 협소한 영토에 인간이 행사하는 권리는 전능할 자격을 잃는다.

 

나는 앞서 반복해서 ‘가공’이라고 했다. 공방의 장에 ‘진실’이랄 게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그러한 권리는 부재한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다. 호소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눈물, 캠페이너로서 어린이의 얼굴을 겹쳐놓은 것까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투박할지도 모를 설득의 시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지니게 되는 건, 객관이라는 허상의 기준을 내려놓고 황윤 감독이 날아가 버리는 장면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논쟁적 사안을 다큐멘터리라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내용의 ‘진실함’을 상정하게 되는 매체로 다룰 때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다각의 확보를 팽개치고 감독은 부재하는 주체의 목소리로 영화를 이끈다. 존재한 적 없는 권리가 실재하는 가공의 순간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의 지형도를 상상하게 한다면 그 또한 새로운 방식의 탁월함이 아닐까.

 

2024 지구의 날 공식 주제는 “지구 vs. 플라스틱(Planet vs. Plastics)”이며, 2040년까지 세계 플라스틱 생산의 60%를 감축하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올해 안에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할 예정인 유엔 플라스틱 협약(정확하게는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기 위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 협약’)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돌아오는 11월 최종 성안을 위한 마지막 정부간 협상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은 2021년 기준 세계 3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국이다. 환경부는 “전주기에 걸친 의무 조항 신설을 지지하되, 국가별 상황을 고려하여 합리적이며 협약 당사국이 이행 가능한 의무 부과 추진”하겠다고 한다.

 

‘상황을 고려’, ‘합리적’, ‘이행 가능한’, 이 앙상한 언어를 타고, 지구가 플라스틱을 상대로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까. 대결을, 패배를 선언하고 시작해선 안 되지 않을까. 그러니 이번 지구의 날에는 환경의 위기를 망각하는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는 재활 운동을 해보자. 수라 갯벌의 아름다운 기억을 눈에 새기는 걸로 시작해도 좋다. 지독하게 눈부신 그가 말을 걸어온다는 급진적인 상상에 당신을 맡겨보라. 그다음엔 무엇이 있을까. 이번엔 당신이 내게, 모두에게, 혹은 수라에게, 되도록 큰 목소리로, 답을 돌려달라. 답신을 기다리고 있겠다.

 

 

[이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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