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있잖아, 나는 너를 본 적이 없다.

글 입력 2024.03.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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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꿈을 꾼다. 이상하게도 너무 자주 꾼다. 어릴 땐 누구나 매일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겐 밤이 너무 신비로웠다. 낮의 밝고 따뜻한 기운이 저물어 전혀 상반되는 신비로운 밤의 그늘. 달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밤. 그래서 더욱 세상을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는 밤.

 

깨어나서 생각해 보면 꿈의 조각들은 이 세계에선 맞추어지지 않지만, 꿈속 세계에서 맞추어지지 않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더 재밌는 꿈, 중독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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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 꾼 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잿빛의 배경에 원기둥이 아주 많았다. 나는 그 원기둥 중 하나에 서있다가 떨어진다. 이 꿈을 몇 번은 꾼 것 같다. 그렇게 기분 좋은 꿈은 아니었다. 내 꿈엔 종종 재난이 일어난다.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데 영화처럼 그걸 피하고 있다든지, 마시면 안 될 유독의 기체가 세상을 떠돌고 우연하게 나는 안전한 기지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인물이 되어, 그 안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는 꿈이라든지. 누가 나를 죽이러 찾으러 다니는 꿈이. 아 그리고 전쟁이 나 싸우는 꿈을 꾸고 있는데, 그곳은 마치 동화 속같이 잔디가 가득했다. 손에 무기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내 느낌에는 누군가와의 긴박하고 평화로운 전쟁이었다. 신기한 게 전에 똑같은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때 꿈에서 본 적 있는 사람이 나와 "전에도 우리 본 적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꿈이 이어졌다.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그도 똑같이 기억한다는 게 기이했다. 그리곤 꿈을 잘 마치곤 깼다.


안 좋은 꿈을 너무 자주 꿨을 때는 자는 게 행복하지 않았다. 꿈에서조차 일을 해야 했다. 절실하게 쉬고 싶은데, 깨면 피곤했다. 수면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도 싶었지만, 막상 또 꿈을 꾸지 못할까 하는 모순적인 마음에 문제를 해결하러 가진 않았다. 이젠 꿈을 안 꾸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좋은 꿈만 꾸고 싶어 큰 의미 없는 노력들을 한 것 같다. 꿈은 나를 자꾸 그리게 만든다. 꿈을 도피의 수단이라 생각하고 그냥 자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안 좋은 꿈일 때는 암담했다.

 

위험한 꿈에선 살고 싶다는 욕망이 내재되어서인지 늘 죽지 않았다. 어느 꿈은 이랬다. 해일이 세상을 덮친다. 나는 사방이 투명한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간다. 무섭게 엘리베이터 바닥까지 드미는 파도. 결국 또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살아남았지만 다 부서진 마을. 하지만 꿈에는 한 번도 죽은 누군가의 형상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묘하게도 전혀 무섭지 않았고 재난 속에서도 세상은 맑고 파랬다. 다시 내려가 재난 속을 걸어 다니지만, 물은 내 잠긴 두 다리가 너무 잘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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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게도 꿈속에선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도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내 꿈의 시나리오 속에서 그저 한 인물로써, 난 그저 순리대로 움직일 뿐이다. 꿈은 왜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문득 그 순간을 그리우게 만드는 걸까.

 

어느 날 꿈에선 학생 시절로 돌아간 적이 있다. 처음 보는 하복을 입고 있었고 이름이 '이지'였던 친구랑 나는 보건실 침대에서 에어컨을 쐬며 누워있었다. 학교 보건실에 왜 그렇게 넓은 침대가 있었던 건지. 본 적 없는 '이지'라는 친구는 당최 누군지 이 글은 쓰는 지금, 얼굴이 기억도 안 나지만 우린 왜 그렇게 행복하고 예쁘게 웃고 있었는지. 신기하게도 보건실 침대에서 잠이 들었고 꿈속의 꿈을 꿨다. 그 꿈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교복 입은 친구들과 일상 같은 시간이 지나갔다. 밖에선 보라색 농구복을 입은 학생들이 체육대회인 것처럼 운동장에 있었고 갑자기 녹차라테가 등장한다. 이상하다. 한참을 짚어도 이상한데, 익숙하고 포근하다. 돌아갈 수 없는 그날의 나는, 꿈속에서 매우 행복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친구들과 행복했다. 다시 그 꿈을 꾸고 싶었던 것 같아, 억지로 눈을 다시 감았던 것 같다. 그날의 햇살은 꿈속에서 느낀 날씨처럼 따뜻했고 나른했다.

 

꿈은 참 다양하다. 안 좋은 꿈도 많았지만 좋은 꿈도 정말 많았다. 꿈에서 살고 싶을 만큼 좋았던 경험도 있었다. 무척이나 나를 사랑해 주셨던 외할아버지가 꿈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환하게 웃고 계셨을 때. 나는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그저 지켜만 봤다. 한마디라도 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나는 제어도 안되는 꿈의 한 조각에서 내가 아닌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을까. 아쉬웠다. 다시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깨어나서도 엄마를 붙잡곤 한참을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와 엄마는 꿈을 아주 자주 꾸는 편이라, 종종 꿈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하곤 한다. 아주 오래전 내 친구가 꿈에 나온 적이 있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난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지만, 문득 그 친구와 함께 하던 순간이 마음에 스민 적이 있어 안부를 물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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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꿈을 하나의 세상으로 받아들이고, 깨어나면 바로 메모장을 켜 기억나는 단어와 분위기들을 노트에 적는다. 꿈 노트를 만들고 있다. 비록 적힌 건 비몽사몽한 채로 적어둔 알 수 없는 암호 같지만, 단어들을 보면 어떤 꿈을 꿨는지 기억이 난다. 적어야지 하다가 놓친 꿈들도 많다. 영영 잃어버릴 꿈이지만 이젠 잃어버리기 싫어서 조금씩 적어둔다. 언젠가 꿈에 든 어느 날을 다시 기억하길 바라서.

 

꿈의 사전적 의미는 수면 시 경험하는 일련의 영상, 소리, 생각, 감정 등의 느낌을 말한다. 또 희망 사항, 되고 싶은 직업, 목표 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꿈은 사람을 그리우게도 하고, 희망적인 꿈을 삶에 그리기도 한다. 매일 꿈을 그린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글에 마지막 온점을 찍으면 드디어 꿈에 든다. 오늘은 어떤 세상이 내게 초대장을 건넬까.


2024. 03. 10 - 오늘 밤은 모두 평온하고 꾸고 싶은 꿈을 꾸길 -

 

*


이 글은 '드림 코어' 음악과 함께 읽으면 더 필자의 꿈속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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