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라인 속 유령들의 공간

글 입력 2024.03.0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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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비평가는 《투명사회》(문학과 지성사)에서 모든 주체가 자신들을 드러내는 공간, 그 이미지들의 투명성 이면에는 “유령들의 공간”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상에 이미지로 납작해진 개인들 사이에도 유령들의 공간이 생긴다. 위험에 처해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손쉽게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며, IT 기업들마저 조심스레 외면하는 이용자, 어린이의 공간이다.

 

 

 

‘잼민이’로 호명된다는 것



누군가를 ‘잼민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호명 당하는 상대가 ‘어린이’라는 사실을 낮잡아 부르는 것 이상의 부정적인 함의를 가진다. 어린이가 혐오 표현으로 사용되는 시기에, SNS 속 어린이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김아미 연구자는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민음사)에서 어린이들은 여러 유형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긴 학교폭력은 하교 후에도 밤낮으로 어린이의 뒤를 따른다. 물리적인 거리는 더 이상 의미가 사라졌다. 전학 간 학교에서도 이미 소식은 빛보다 빠르게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어른들에 의하여 어린이들은 스스로 그 문제를 견디거나 해결하려고 한다.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를 넘어, 열려 있는 SNS 속 이용자들이 스스로 경계를 만드는 상황에 어린이들은 자신이 초등학생 혹은 미성년자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는 ‘잼민이’라는 혐오 표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예방책이다.

 

성인은 어린이‘처럼’ 미성숙하거나 어리숙한 이용자를 향해 ‘잼민이’라고 부른다. 어린이의 존재는 마치 유령처럼 온라인에서 너무나 간단한 방식으로 배제되며, 실제 이용자인 어린이는 성인의 조롱 문화에 상처받는다. 그러나 어린이는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혐오 표현을 서슴지 않는 곳을 피해 애써 찾아온 또래집단에서도 아이들은 좀처럼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 ‘잼민이’에서 ‘페미’로 혐오 표현이 변화했을 뿐, 서로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문화는 닮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실제로 만나서 대화로 해결하기보다는 SNS에서 저격하는 게시물을 올리고, 누군가 다른 의견을 제시했을 때는 게시물을 캡처한 채 자신의 편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그 의견을 비웃는다. ‘요즘 어린애들’로 치환할 수 없는 어린이들의 온라인 문화는 성인의 온라인 문화와 정확히 일치한다. ‘심심한 사과’라는 관용구를 몰라 논란이 되었던 ‘요즘 어린애들’의 문해력에 대한 기성세대의 의문 또한 소통 대신 혐오와 조롱으로 논의를 대신하는 온라인 내 소통 구조를 원인으로 제시해야 정확한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돈이 되는 ‘좋아요’



SNS에서는 모든 가치가 수치화된다. ‘좋아요’와 ‘싫어요’, 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수와 내가 단 댓글의 ‘좋아요’ 수, 조회수, 노출 수, 팔로워 수. 그리고 이러한 수치는 자본이 된다. 그리고 어린이들은 이것을 이미 체감하고 있다. 

 

김지효 작가는 《인생샷 뒤의 여자들》에서 ‘좋아요’의 숫자를 넘어서 누구에게 ‘좋아요’를 받는지가 중요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양적 수치를 넘어선 질적 반응까지 살피게 되는 이유를 “인스타그램의 모든 기능은 이용자가 타인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즉각적인 보상을 획득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좋아요’ 수라는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와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성인 이용자들과, 의도적으로 이용자들을 중독시켜 SNS 체류시간을 늘려 최대한의 광고 수익을 얻으려는 IT 기업의 합작품은 반짝거리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라는 포장지 속에서 어린이를 유혹한다. 


2021년 메타는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서비스 계획을 발표했으나, 인스타그램이라는 이미지 기반의 플랫폼이 어린이들의 성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수렴하여 그 계획을 철회하였다. 이렇듯 어린이를 ‘키즈용’에 가둔다고 해도 기업이 이용자를 중독시키는 알고리즘이 공고히 존재하는 이상 어린이는 반짝이는 포장지 속 납작해진 이미지를 선망하게 된다. 그렇다면 혐오와 배제가 간단히 이루어지고, 개인이 평면의 이미지가 되어 모든 가치가 수치화될 뿐 아니라 경제적 이득이 되는 온라인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 마주친 상대가 어린이라고 생각해 보자. 더 이상 ‘잼민이’라는 혐오 표현에 갇혀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어린이가 아니라, 오늘 아침 SNS에서 댓글을 남긴 바로 그 계정의 주인이 어린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반사적으로 흠칫하는 반응의 이유를 깊이 고민하자. 우리는 온라인에서 무엇을 어린이에게 보여야 하고 보이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온라인에서 어린이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순간으로 대답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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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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