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금붕어처럼 [사람]

Get some rest
글 입력 2024.02.2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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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닝 시간이었다. 대화문 받아쓰기를 마치고 바로 풀이를 해주려다 학생들더러 자주 쓰는 문장이 안에 있으니 먼저 찾아보라고 했다. 선생님 입장에서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들을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I didn’t even have time to study for the exam.

이 문장을 답하길 기대하면서.

 

학생들이 하도 이런저런 이유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핑계 대기 때문에 단번에 위 문장을 찾아낼 줄 알았다. 스스로 알아차릴 줄 알았다. 웬걸, 내가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뒤 문장을 손으로 가리킨다.

 

Go home and get some rest.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답이다. 왜지. 그냥 선생님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란다. 이 지문을 수없이 봤으면서도 왜 이 문장을 못 봤지. 학생들은 언제 나를 봤지. 네가 알아차리길 바랐는데 오히려 내가 한대 맞았다. 행간이 큰 것도 아닌데 rest 단어를 코앞에 두고 놓쳤다. 내가 쉼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학생들은 똑똑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쉴까 궁금해진다. 사람들을 구경하러 성수동 거리를 걸어본다. 곳곳에서 맛집 웨이팅을 하고, 사진을 찍고, 쇼핑을 하고, 웃고 떠드느라 바쁘다. 묻고 싶다. 주말을 이렇게 보내고 나면 잘 쉬었다 느껴지는지. 이상한 사람 취급할게 뻔해서 묻기를 참는다. 약 두 시간을 옆 사람들처럼 보내고 집에 오자마자 뻗는다. 긴장이 풀리며 몸이 으슬으슬 아플 신호를 보낸다. 주섬주섬 만두를 꺼내 우동을 끓이고 사이드로 밥도 비빈다. 일식집 전골에 버금가는 맛이다. 남들처럼 쉬려다 쉰밥 될 뻔했다.

 

배도 채웠으니 짐을 한 보따리 싸서 카페로 향한다. 커피 주문해서 겨우 앉았는데 하필이면 한 시간 뒤에 문을 닫는단다. 난감하다. 대충 마시고 2차로 다른 카페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따라 안 하던 쉼을 시도해서인지 카페인이 수면제처럼 와닿는다. 졸리다. 잠을 깨기 위해 가방을 뒤진다. 이병률 작가의 여행산문집이 손에 잡힌다. 그저 펼쳤을 뿐인데 문장이 꽂힌다.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삶은 일방통행이어선 안 된다. 살아온 분량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그걸 탈탈 털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듣건 듣지 못하건 무슨 말인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다 털어놓을 한 사람.”

 

생각할 것도 없이 알 수 있다. 내겐 없다 그런 사람. 지인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봐도 없다.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신뢰 가는 사람은 없다. 유치원 시절부터 알았다. 없다는 걸. 살아온 분량이 나름 차오르고 있지만 털 곳이 없고 털고 싶었던 마음조차 사라진 것 같다. 그 마음을 묻어두고 있는 걸지도. 그래서 글을 쓰는 걸지도. 대신 털림을 받는다. 나를 믿고 찾아주는 지인들이 있어 감동이다.

 

집으로 가려는데 수업 시간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한 친구가 짝꿍을 금붕어라 놀렸다. 금붕어처럼 무엇이든 금방 잊어버린다며. 다 말해놓고선 잊어버린다고 했다. 금붕어로 불리는 학생은 사실을 인정하며 웃기만 했다. 사랑스러웠다. 남들보다 쉽게 쉴 줄 아는, 행복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구나라고 했더니 그 학생이 듣고선 눈이 금붕어처럼 커졌던 장면이 생각난다.

 

타고나길 금붕어가 아닌 이상, rest는 노력해서 get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쉼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하늘 보기,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인사하기, 디저트 한 입 크게 음미하기, 자기 전에 기도하기, 감사하기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더 깊은 쉼을 탐해도 될 것 같다. 탈탈 털리길 허용해 봐도 될 것 같다. 의식적으로 쉬기 위해 노력하다가 끝내 노력 없이 쉼을 얻는 금붕어가 될는지도.


Go home and get some rest.

I will. Thanks.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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