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명의 완결 -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글 입력 2024.02.25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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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평범한 하루, 극적인 하루, 비극의 하루, 설렜던 하루, 짜증났던 하루.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주어진 시간, 그리고 각기 다른 하루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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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자의 역할과 인물들의 대비


 

서술자는 이 극에 등장하는 각 인물에 대해 깊은 서술은 하지 않는다. 각 인물의 이야기 농도는 짙지 않다. 하지만 관객은 어느 때보다 깊게 빠져들게 된다.

 

각자의 극명한 성격에 선명한, 때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더해 짧고 굵게 여러 인물을 서술, 연기한다. 그렇게 서술자인 배우는 사건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이어나간다.

 

 

 

경계


 

비극을 실감하는, 실제적 순간에 다다른 자와 그저 살아남은 혹은 자신에게 닥쳐올 비극을 아직 모르는 자 사이의 극명한 경계선이 죽음과 생의 경계선보다 더 진하다. 그들은 경계선에서 상대방에게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느낀다. 굉장히 큰 모순으로 다가온 점이기도 하다.

 

극 내내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에 명확한 구분을 해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두 가지가 같은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한 모호한 경계와 달리 역지사지라는 말이 무색하듯, 비극 앞에 서 있는 사람과 옆에 서 있는 사람은 극명하게 다르며 그 둘의 진정한 공감은 불가했다.

 

 


바다의 파도와 심장의 박동


 

나는 바다의 파도와 심장의 박동을 구분할 수 없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다의 생명력이라고 적었던 적이 있다. 바다가 갖고 있는 활력을 따라 취하고 싶기에 바다를 바라본다. 마치 시몽처럼, 나를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파도에 나도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파도는 사그라져도 언젠가 다시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안다. 인간은 그럴 수 없지만 바다니까, 파도니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바다의 생명력을 나에게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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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한히 재생되지 않기에 슬프고 그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여기선 인간은 죽음을 통해 끝나는 존재가 아님을 말해준다. 의학적으로 뇌사, 장기기증이 가능한 상황에서의 환자는 심장의 박동이 건강한 사람과 동일하게 뛴다. 장기 기증을 결정하게 되었을 때, 본체에서 일부 장기들은 사라지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심장은 다른 이에게 전해져 계속 박동하고, 다른 장기들도 자신의 쓰임새를 다한다. 이 상황을 죽음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에겐 바다의 파도처럼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상황으로 다가왔다. 시몽의 장기들을 적출하고 기증받을 환자에게 삽입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활력이 느껴진다. 단단한 파도만큼이나 단단한 생명의 의지와 긴급한 떨림이었다.

 

의학적으로 시몽은 죽어가는 과정에 있지만, 나는 시몽 랭브르의 서핑 장면 다음으로 삶에 대한 화이팅을 느꼈다. 심장을 꺼내기 직전, 시몽은 그토록 좋아했던 바다에서의 파도 소리를 듣는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많은 찬란함을 느꼈을 그 순간을 떠올리며 삶의 마지막을 쓰게 된다.

 

죽음의 순간에서 '살아있음'의 순간이 교차된다.

 

 

 

살아있는 자


 

누가 살아있는 존재일 수 있을까? 누구보다 터질 듯한 심장으로 파도의 순간을 달리던 시몽 랭브르일까 몇년 전 심근염 진단을 받고 조금만 발을 앞으로 내어도 숨이 끊길 듯 벅찬 끌레르일까. 시몽을 사랑하던 주변 가족과 사람들일까. 삶과 죽음에 대해 점차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의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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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으로는, 뇌사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맥박은 계속해서 뛰고 있다. 즉, 숨을 쉰다. 특히나 시몽의 심장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입혀져 최초의 박동을 다시 시작한다.

 

시몽은 그렇게 다른 이들을 통해 살아간다고 믿는다. 말그대로 '살아있는 자'를 수선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생명의 완결은 고귀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장기 기증에 대해 곱씹으며, 생명의 완결은 단지 죽음뿐만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마음속에 떠올려본다.


최초의 박동, 여명을 알리는 첫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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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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