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회색빛 빌딩 숲과 푸른빛 나무 도시 -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글 입력 2024.02.24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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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연극을 한다면 가장 중요하고 인기 있는 역할은 단연 주인공 캐릭터다. 그다음으로 비중이 조금씩 줄어드는 조연 캐릭터가 이어지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나무 역을 정한다. 나무는 대사도 움직임도 없이 그냥 서 있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존재감이 드러나서도 안 된다. 그냥 조금 입체적인 배경일 뿐이다. 사실 나무 역이 있는 이유는 그 무대에 나무가 필요해서라기보다도 극에 필요한 인원보다 배우가 더 많아 생기는, 불상사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그런 나무 역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의 저자 수마나 로이는 나무가 되고 싶다.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아라



저자는 나무를 원한다. 나무가 가득한 ‘숲’을 원할 때도 있고 숲이 아닌 ‘나무’ 한 그루를 원하기도 한다. 그는 나무와 숲을 구분한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순간 짜증이 치밀기도 한다. 나무와 숲에는 무슨 차이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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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별칭으로는 회색빛 빌딩 숲이 있다. 도시가 회색빛 빌딩 숲이라면, 반대로 숲을 푸른빛 나무 도시라고 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물론 나무는 인간과 건물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차이가 있긴 하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저자가 나무와 숲을 구분해 인식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람은 말이야, 길을 잃기 위해 숲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보리수를 보러 갈 때는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p.281)

 


숲은 사색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용한 곳이냐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 안에 사는 동물들 때문이 아니라, 그 숲을 만드는 나무들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이 시끄럽듯, 나무가 많은 곳은 소란스럽다. 그 소란스러움이 좋아서 숲을 찾아가고, 그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무를 찾아간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도시에 살다가도 한적한 곳으로 떠나는 것처럼, 나무 한 그루를 그리워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 본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아라. 지엽적인 것에 꽂혀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을 타이르는 말이다. 가끔은 반대의 말도 필요하다. 숲을 보느라 나무를 못 본다,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아라. 

 

 

 

나무의 시간으로 사람의 시간을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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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시간에는 노인에 대한 경멸이 만연하다(p.14). 사람에게 젊어 보인다는 말은 칭찬으로 통하지만 저자는 이에 의문을 가진다. 40년 된 나무에게 스무 살밖에 안 되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모욕이 아니냐는 것이다. 


시간이 남긴 흔적을 성숙한 나이테로 볼 것인지, 기계를 망가지게 하는 녹으로 볼 것인지. 우리는 입으로는 전자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항상 후자를 신경 쓴다. 우리는 그냥 나이 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멋지게 나이 들고 싶어 한다. 멋지게 나이 들고자 하는 욕망은 얼핏 보기에는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멋지게’ 나이 든다니. 실은 나이 드는 것 자체로 멋진 일이 아니던가.


저자는 나무의 시간을 살고 싶어 한다. 사람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이 무엇이 다른지 책에서 정확히 서술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사회의 시계에 맞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시간이다. 나무는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무슨 소리인가 싶으면서도 왠지 나무의 시간이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나무의 시간을 살 수 있는 걸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재를 즐겨라, 순간을 움켜쥐어라, 지금을 살아라.

나무의 시간은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햇볕이 내리쬐면 꿀꺽 삼키고 먹는다. 밤이 오면 쉰다.

 

(p.16)

 


책의 첫 장에서 저자는 나무가 프리랜서인지 월급쟁이인지 고민한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그들의 루틴을 생각해 보면 월급쟁이일 것 같지만, 실은 휴일이나 근무 시간과 같은 개념 또한 인간의 산물일 뿐이다. 나무가 그런 루틴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틀에 갇혀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나무가 프리랜서라면 그것은 그가 자유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규칙이 필요하지 않아서이다. 


우리가 사는 사람의 시간도 처음부터 그랬을 리는 없다. 규칙과 틀과 마감으로 채워진 사람의 시간. 문명의 시간, 혹은 자본의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에 와서는 사람의 시간과 문명 혹은 자본의 시간을 구분하는 것에 의미가 없겠지만서도, 잔뜩 흐려진 이 경계선을 찾으려 애쓰다 보면 우리도 나무의 시간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말대로 현재를 즐기고, 순간을 움켜쥐고, 지금을 살면서. 그러면 우리도 나무의 시간을, 아니 정말 ‘사람’의 시간을 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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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빌딩 숲이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이것이 도시가 가지는 한 톨의 생명력을 극대화하기 위함인지 반대로 그 한 톨마저도 앗아가기 위함인지 헷갈렸다. 난 후자에 해당하긴 한다. 그렇다면 푸른빛 나무 도시라는 표현은 어떤가? 우리가 알던 숲과 비교하여 더 삭막해 보이는가, 더 낭만적으로 보이는가. 만약 전자라면 도시라는 전체에 집중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일 테고, 후자라면 나무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기에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일 테다. 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좋겠다. 숲속의 일원이면서도, 나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그런 숲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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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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