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선택된 이야기와 선택된 사실

글 입력 2024.02.1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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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파이는 호랑이가 갇힌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먹이를 건넨다. 그런 파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나무란다. 동물의 눈을 보면 그 안에 영혼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아들의 말에, 짐승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짐승의 영혼이 아니라 짐승의 눈을 통해 비춰진 인간 그 자신일 뿐이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다소 긴 호흡으로 파이의 일생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종교와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러한 흐름은 영화의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파이의 놀랍고도 신비한 표류 이야기와, 후반부에서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과 연결되어 과연 우리에게 있어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예기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가족을 모두 잃게 된 파이는 망망대해 위의 구조 보트 위에서 호랑이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표류 초반, 파이는 호랑이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물고기를 죽이게 된다. 그가 도끼로 물고기를 내리치고, 생동감 있게 빛나던 물고기의 비늘은 어느새 무채색으로 변한다. 파이는 이를 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곧 죽은 물고기에게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경배한다. “감사합니다. 비슈누 신이시여! 물고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렇게 우리를 구하셨네요!” 이 장면은 영화의 전반부에서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 대신 그 자신을 희생한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어린 파이 자신과 대비되는 행동이다. 어쩌면 파이는 그 생존의 상황에서 종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리처드 파커의 먹이 대상이 파이 자신에게서 물고기로 전환된 그 순간, 물고기의 생명이 꺼지는 순간을 목도하며 느꼈을 죄책감은 신의 숭고한 자기희생으로 변모하여 괴로운 표류 생활을 견딜 수 있게 도왔을 것이다. 이렇듯 영화는 인간에게 있어 모든 것은 인간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리고 인간 그 자신의 개인적 속성에 따라 어떻게 수용되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영화는 익스트림 롱 샷을 사용하여 바다가 하늘인지, 하늘이 바다인지 알 수 없게 하고, 다양한 특수 효과를 통해 이 동화같은 이야기가 과연 사실일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후반부, 구조된 파이는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환상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요구한다. 파이는 기다렸다는 듯 두 번째 이야기를 건넨다. 첫 번째 이야기보다 더 이치에는 맞지만, 너무나 잔혹하고 괴로운 두 번째 이야기를. 두 일본인은 두 번째 이야기를 듣고 납득된다는 듯 자리를 떴다. 동시에, 현재의 파이는 캐나다 소설가에게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하며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관객에게도 전해지는 이 물음은 과연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이야기가 그가 잔혹한 표류 생활을 외면하고자 선택했던 환상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가 경험한 실제의 이야기인지 궁금하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가 사실인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신뢰할 것이며, 그것은 우리 안의 어떤 신념이 그 선택을 하게 했는지 이다.

 

모든 사실은 이미 존재한다. 동물의 눈에 존재하는 건 단지 그 눈동자에 비춰진 인간의 모습일 뿐이라고 말한 아버지의 대사처럼,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사실을 의미부여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진실로 중요한 것은 사실이 아니고 우리가 사실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삶을 유지하고 견디게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또는 수습하기 위해 인간이 취하는 태도라는 것 말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삶과 영화는 아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얻는 감정과 생각, 혹은 깨달음들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관람자가 이 영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게 되고 그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사실의 연속인 삶을 통해 우리는 어떤 깨달음을 얻고, 또 어떤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다.

 

 

[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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