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절대 부칠 수 없는 편지 [도서]

문상훈,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2024, 위너스북)
글 입력 2024.02.1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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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하는 얘기들을 대부분 좋아했으니까요. 어쩌다 당신을 알게 된 후부터 죽 그래왔어요. 사람들이 앞다투어 ‘무해하다’라는 단어의 아름다움을 찾기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무해한 사람. 사람들은 당신을 그렇게 불렀고, 나도 곧 동의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의하지 않을 방법이 도무지 없었습니다. 당신은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만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었고, 나 역시 당신의 장단에 맞추어 자주 웃었으니까요. 그 웃음이야말로 당신에 대한 나의 전적인 이해라고 여겼을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작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멀리 있는 당신과 친해진 줄로만, 그래서 당신을 잘 알게 되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이따금씩 고백하곤 했지요. 당신은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 자신의 슬픔을 생각한다는 걸요. 당신은 당신의 슬픔과 우울을 깊게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잠시 헤엄도 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기를 툭툭 털고 나와 웃음을 건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 여기 하나씩 받아.  이건 내가 방금 건져낸 슬픔 한 덩어리야. 난 이런 것에도 슬퍼해. 어때, 웃기지?’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주는 웃음엔 당신의 슬픔 말고는 다른 누군가의 상처가 묻어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우리는 코미디언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의 본질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코미디언, 당신은 코미디언이었습니다.

 

 

[위너스북]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_표1.jpg



그리고 당신의 책을 읽었습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2024, 위너스북)에는 당신이 있어야 했습니다. 내가 잘 안다고 믿었던 코미디언 문상훈이 가지런한 활자로 적혀서 ‘그래요 나 문상훈이에요, 재미있죠?’ 라고, 그러다가 ‘가끔씩 나는 이런 깊은 생각도 해요’ 말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늘 만나던 친숙한 당신이기에 조금 뻔해야 했고, 꽤나 웃겨야 했고, 많이 편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당신은 서문부터 “미안합니다”, 하면서 사과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너무 무겁지 않게 적으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사실에, 그러니까 당신의 본질인 코미디언에서 조금 비껴가 자신을 희화화하지 않았다며 책망하고 있었으니까요.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빼곡하게 적힌 당신의 사과문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너무 천천히 읽어버린 탓인지 책을 완전히 덮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네요.


종종 무거웠습니다. 당신을 향한 당신의 고민이, 원망이, 반성이 이토록 깊어질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마침내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게 된 당신인데, 여전히 “나를 싫어하는 것도 나여서, 내가 봐도 별로인 내가 감히 누군가를 싫어할 자격이 있나”(115쪽)를 고민하다니요. 그런 순간이면 숨이 막힐 듯 깊이 우울해지는 당신이지만, 그래도 당신을 미워하는 당신의 마음에 곧 수긍을 하고 맙니다. 그 마음이 무해한 당신의 뿌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우울이 “미워하는 사람과 미움받는 사람이 둘 다 나인 것이 둘 중 하나인 것보다는 낫지 않냐고”(같은 쪽) 믿고 마는 건강한 우울로 끝날 것임을,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마음을 내어 당신에게 편지를 쓴 당신과, 그런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나는 분명 너무 다른 사람입니다. 당신은 부끄럽지 않은 것까지 부끄러워하면서도 모든 걸 보여주는 사람이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마저 부끄러워 실오라기 한 올까지 꽁꽁 싸매 숨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은 나를 조금 슬프게 해요. 그래서 여러 페이지 속 꼭꼭 숨어있는, 이런 문장들을 나는 기어이 찾아내서 오래 머무릅니다.


 
밤을 즐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 당신도 나 같은 새벽 2시 21분을 보내고 있는지. 당신도 지금처럼 어두운 밤에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지는 것들을 떠올리고 있는지. 아니면 마주보고 있는지, 매만지고 있는지, 안고 있는지, 멀리 던져두고 있는지. 당신도 나처럼 이것들에 대해 서로 꺼내놓고 자랑하고 싶은지 궁금하다.

 

- p.45

 


화면 속에서 보이는 당신의 낮을 나는 모르지만, 적어도 당신의 밤이, 그 깊고 “농도가 짙”(45쪽)은 밤이 나의 밤과 조금은 닮았다는 사실이 기쁘고요. “밤이 되어야만 밤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을 더 사랑할 것 같다”(48쪽)는 고백은 정겹습니다. 시끄럽고 화려한 밤보다, 고요하고 짙은 밤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동질감을 느끼나 봅니다.


슬픔에 감사하고 우울에 기꺼운 사람. 당신은 당신이 한 말을 오해하지 않기로 했는데, 나는 당신을 자꾸만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당신이 이곳에 적어놓은 문장들 중에 당신이 아닌 것은 없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해주는 당신의 솔직함에 이따금 흠칫 놀라지만, 당신을 다시 알게 되는 그 놀라움 또한 즐겁습니다. 내가 알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 당신을 제일 좋아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묻는다면 무엇이 그토록 좋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이렇게 눙쳐서 말할 수밖에 없어요.


책 잘 읽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아요. 막상 만나면 한 마디도 못 하게 될 걸 알지만요. 그래도 그런 날이 오면 꼭 한 번은 이렇게 불러보고 싶어요. 상훈이 형, 이라고. 부끄러운 마음에 이 편지조차 당신에게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만, 멀리서 진심을 전합니다.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상훈이 형. 여러 깊은 밤 내내 무해해주시길. 

 

 

 

컬처리스트 명함.jpg

 

 

[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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