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피지컬 시어터로 풀어낸 망각, 그리고 기억 - 네이처 오브 포겟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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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치매를 겪고 있는 톰은 55세 생일날, 어머니 엠마와 오랜친구 마이크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옷걸이에 걸린 수많은 옷과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딸 소피의 목소리.
"주머니 속에 빨간 넥타이가 있는 남색 재킷을 입어야 해요, 아빠"
재킷을 고르는 과정에서 우연히 학창 시절 입었던 교복을 입게 된 톰은 망각했던 지나온 세월의 파편 조각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학교에 등교하던 기억, 교실에서 벌어지던 이야기, 대학교 졸업식, 연애와 결혼, 불의의 교통사고 등 행복했던 순간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헤어짐을 마주한다.
흩어지고 얽힌 조각들을 찾아 보기좋게 끼워 맞추고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끼워 맞추려고 할수록 오히려 어긋나고 풀기 힘들 정도로 얽혀버리기 일쑤다. 그가 겪었던 일생일대의 사건은 되감기 되고 빨리감기 되기도 하면서, 톰을 보이지 않는 철창에 가두어놓는다.
과거 기억을 재구성하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톰은 움직임과 표정, 사물을 통해 답답하고 혼란스러운 심경을 표현한다. 피지컬 시어터로 진행되는 공연의 특성상, 명확한 텍스트로 전달되는 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은 머릿속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며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준다. '조기 치매'와 '치매'를 사전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극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연출가 기욤 피지는 이를 '무대 위에 은유를 만들어 소통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움직임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표현의 수단이기에, 시각적으로 구성되는 기억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된다.
움직임과 동시에 사용된 또 한 가지의 방법은 '음악'으로, 톰의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 주변 인물들과의 과거 기억 속 장면을 재현한다. 작곡가 알렉스 저드가 상황에 따라 만들어낸 음악은 멀티 연주자와 퍼커셔니스트의 호흡으로 탄생한다.
그들의 호흡은 오픈형으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선보여지며, 섬세한 연주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네이처 오브 포겟팅>의 장면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계속해서 무대를 스쳐 지나간다.
톰의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다양한 장면, 그러나 시간에 따라 차례대로 재생되지 않고 여러 개의 기억이 서로 간섭하고 있는 그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게 된다.
놓쳐왔던 기억의 실타래를 엮어가는 톰에게서 나의 삶을 오버랩해 보는 동시에, 멀어져 간 기억을 다시금 찾아가 붙잡아본 70분의 시간이었다.
[최세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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