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주 짧지만 파괴적인, 숄

글 입력 2023.12.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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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숄>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책 제목과 같은 단편소설 <숄>과 <로사>로 엮여 있으며, 각각 1980년과 1983년 뉴요커 지에 발표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첫 번째 단편 <숄>은 수용소로 걸어가는 길이 배경이다. 젖먹이 딸 '마그다'와 마그다의 엄마 '로사', 로사의 조카 '스텔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이들의 목숨은 위태롭다. 조용한 적막을 뚫고 마그다가 잠시 울어도 죽고, 로사가 마그다를 숨긴 사실을 들켜도 죽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용소에 도착해서도 미래는 어둡다.

 

그렇기에 숄은 생명을 살리고, 뜻하지 않게 죽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굶주린 마그다가 '숄'을 붙잡고 빠는 동안에는 생명을 살리는 '리넨 젖'으로, 조카 스텔라가 '시도 때도 없이' 추웠던 나머지 마그다를 감싼 숄을 가져간 이후로는 마그다의 짧은 생을 앗아가는 수단으로.

 

[마그다는 벙어리였다. 로사는 마그다의 성대에, 숨관에, 후두에 문제가 있다고 믿었다. 마그다에게는 결함이 있었다, 목소리가 없었다. 어쩌면 귀가 먹었을지 몰랐다. 지능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랐다. 마그다는 소리를 내지 못했다.] (p17)

 

*

 

두 번째 단편 <로사>는 <숄>의 배경이 된 시대로부터 약 30년 뒤,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다.

 

<숄>이 강제수용소라는 희망 없는 지옥을 그려낸다면, <로사>는 살인적인 태양 아래서의 삶을 그려낸다. 로사는 누구보다도 살리고 싶었던 소중한 마그다를 잃어버리고, 마이애미의 한 호텔에서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로사는 여전히 마그다가 살아 있다고 믿으며 마그다에게 편지 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뉴욕에 사는 조카 스텔라가 보내주는 돈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스텔라에게는 속물이라 욕하면서도 아름다운 형용사로 그녀를 묘사하기도 한다. 여전히 로사의 시간은 홀로코스트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마그다에게는 이렇게 썼다. 너는 암사자로 자라났구나. 너는 황갈색이고, 털북숭이 발가락을 있는 힘껏 펼치지. 너를 훔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죽음을 훔치는 거야.] (p25)

 

작가 신시아 오직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묘사하지 않았다. 다만 장면들을 조용히 엮어내 우리 앞에 은유로 보여줬을 뿐이다.

 

<숄> 자체는 두 편의 단편을 엮었지만, 엽편소설에 가까운 분량으로 읽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전부 다 읽고 난 다음에 밀려오는 이름 모를 무게감은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문장은 가끔씩 끈적거렸고, 동시대를 살지 않은 내 어깨마저도 무겁게 짓눌렀다. 그래서 평소처럼 '왜?'라고 질문하기를 멈추고, 이들의 이야기를 소리 없이 받아들였다.


<숄>은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하나의 거대한 역사로 서술하기보다 남겨진 개인의 '빼앗긴 삶'으로 그려냈다. 송두리째 도둑맞은 삶을 통해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질문하도록 했다. 우리는 이 비극의 역사를 어떻게 돌아보아야 할까.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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