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I는 우리의 취향을 통제할까? [문화 전반]

레브 마노비치의 글 「AI Aesthetics」를 읽고
글 입력 2023.11.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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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는 예술가이자 작가이자 디지털 문화 이론가로, 글 「AI Aesthetics」에서 현대의 사회와 문화에 AI의 영향과 한계 및 효용성을 고찰하며 ‘문화적 분석(Cultural Analytics)’에 대해 설명한다. 논지는 크게 AI와 문화 생산, AI와 문화 분석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전자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AI가 미적 다양성을 위협하는가 아니면 도움이 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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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비치는 먼저 AI(인공지능)의 초기 목적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획득하는 것임을 밝히면서, 현재엔 다양한 산업, 학술 분야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수준에서도 어디서나 존재하는 AI의 편재성과 활용도를 언급한다. 특히 전자기기의 보급과 네트워크의 발달은 AI의 확산과 발전에 기여했으며, AI 기능이 초기 인식의 자동화를 넘어 ‘초인식(super-cognition)’이라 불리는 능력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사진 분야에서 AI는 특정 조건에 맞춰 원하는 사진을 선택하는 기능과 이미지를 보정 및 생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나 역시 어도비의 라이트룸을 사용하면서 ‘자동 보정’ 기능을 종종 이용하며 갤럭시의 갤러리 앱은 사진에서 인물을 꾹 누르는 인터페이스 작용을 통해 인물과 사진을 분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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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이러한 AI가 미적 다양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이다. AI가 제시하는 ‘더 나은’ 이미지는 하나의 규범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다양성을 제한한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기술 향상에 따른 기능의 다양화는 더 세분된 이미지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논의는 국제화에 대한 논의로 확장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른 국제화는 세계를 하나의 문화적 시장으로 통합하는가, 아니면 더욱 다양한 문화적 코드가 이용 가능해지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두 방향 중 어느 한가지만이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며 우세한 쪽을 쉽게 설명할 수 없겠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점, 그에 따른 AI 기술의 발전과 확산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장에서 마노비치는 문화적 데이터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AI를 설명한다. AI는 인간이 다룰 수 없을 만큼의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로부터 유의미한 분석이 가능하다. 이와 가장 연결되는 학문은 통계물리학일 것이다. 

 

얼마 전 김범준 교수의 저서 『관계의 과학』 관련 세미나에서 들은 바로 통계물리학은 “티끌 모아 태산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곧 개별적 요소가 어떤 체계를 만들어 복잡계를 구성하였을 때 나타나는 창발 현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패턴 찾기 과정으로, 다량의 데이터를 우리가 식별할 수 있는 특정 형태의 그래프로 제시함으로써 의미를 도출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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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같은 통계적 분석은 마노비치가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문화적 데이터를 정량화하는 것, 곧 질적인 문화적 양상을 양적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균의 함정’에서 알 수 있듯 사회문화적 자료를 바탕으로 특정 결괏값을 도출해 내는 행위는 각 개별적 요소들의 무수한 차이가 배제되는 것을 수반한다.

 

마노비치는 문화적 데이터의 분석 중 필연적인 환원 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문화적 분석이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통계 모델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에러나 노이즈로 치부하고 삭제하는 것을 거부하며 전통적인 질적 문화 이론 및 최근의 양적 문화 분석 양자가 가진 환원적 요약을 거부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방안으로서 더 다양한 차원의 기준점을 한 번에 시각화할 수 있는 분석을 수행하고자 한다. 마치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로 좌표의 차원을 확장하듯이, 다각적 측면에서 분석할수록 환원으로 배제되는 부분들을 포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노비치는 데이터를 가공하여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환원이 온전히 배제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결국,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선 특정한 문화적 패턴을 관찰함으로써 가능하며, 이러한 패턴 찾기는 동질성의 논리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분석학이라는 일정 연구 분야의 속성으로 국한되지 않으며, 사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서의 인지 과정과도 상통한다. 우리는 대상을 경험하고 인식할 때 지속해서 과거의 기억, 데이터와 비교하며 패턴을 찾아내고 그 안에서도 차이의 유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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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제갤러리에서 진행중인 로니 혼의 드로잉 전시도 이와 같은 우리의 인지 과정를 다루고 있다. 마치 같은 그림 찾기 게임처럼 짝으로 이루어진 8개의 드로잉이 하나의 작품군을 이루고, 이러한 작품군이 무수히 반복된다. 관객들은 기하학적으로 그려진 각 기호의 패턴과 차이를 관찰하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마노비치의 문화적 분석 개념은 초기 인공지능의 목표가 인간의 인지 능력을 구축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우리의 뇌 역시 경험을 지식으로 축적하는 과정에서 범주화의 메커니즘을 이용하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분석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후자는 인간의 역량으로는 다룰 수 없는 방대한 양을 더욱 다양한 기준에 근거하여 계산함으로써 다양한 차이를 발견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마노비치는 AI가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주장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준다.

 

글을 읽고서 내가 그동안 인공지능과 다양성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부정적인 방향, AI가 다양성을 저해할 것이라는 입장에 너무 확신을 두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는 인간의 두뇌와 인지 능력 그리고 창의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아방가르드의 독창성: 포스트모던적인 반복」에서 『노스앵거스 수도원』 속 풍경화에 대한 이야기와 『존슨즈 사전』의 ‘픽처레스크’에 대한 정의를 통해 풍경화 작품의 독창성이 범주화와 패턴을 기반으로 구축되었음을 주장하였다. 자크 라캉 역시 개인 주체는 이미 사회에 주어진 언어를 통해 구조화되며, 무엇을 보고 보아야 하는지의 시각 체계 역시 이미 주어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미적 감수성이 결국 인간의 인지 메커니즘과 그 역량에 의한 한계가 존재함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면, AI 미학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참고자료: Lev Manovich, 'AI Aesthetics' (Strelka Press, 2018).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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