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목을 자르는 칼바람에도 살아낸다는 것 - 낮은 칼바람 [공연]

글 입력 2023.11.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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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이 부는 11월의 어느 주말에 여행자극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2023년에 마주한 1930년대 만주 민초의 삶은 다난했고 또 치열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칼바람을 견뎌내며 갈등과 선택, 좌절, 신념, 그리고 꿈과 같은 다양한 희로애락을 맞이하는 그들의 삶은 어딘가 따스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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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만주 하얼빈 북쪽 대흥안령 아래 외딴 객점.


객점 주인 ‘용막’과 건달 ‘종수’ 그리고 ‘수염’은 한족 지주들과 어울려 며칠째 투전과 아편에 빠져 있다. 객점의 일꾼 ‘금석’은 용막의 눈을 피해 글 배우기에 여념이 없고, ‘복녀’는 식당 주인이 되겠다는 포부로 가득하다.


이러한 객점으로 몰려드는 이가 있었으니, 비밀임무를 진행 중인 ‘야마모토’ 중위와 ‘마에다’ 하사, 돈으로 용막에게 팔려 온 어린 신부 ‘부근’과 사냥꾼 ‘맹포수’이다. 칼바람과 늑대의 하울링을 피해 작은 객점으로 모인 이들은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


가장 낮은 칼바람이 그들의 발목을 자를 것이다.


정신 까닥하면 얼어 죽는 이곳 만주의 칼바람은 사람의 발목을 잘라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에게 있어 발목은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신체 부위라 할 수 있다. 새에게는 날개, 맹수에게는 발톱과 송곳니처럼 말이다. 아포칼립스나 긴박한 전투에서 동료가 발목을 접질려 팀의 짐이 되곤 하는 상황이라던가 ‘살아야만 하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 발목 부상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만주의 칼바람은 그들의 발목을 잘라가는, 생존에 있어 커다란 위협 요소로 등장한다. 즉 궁지에 내몰려 발목이 잘리기 직전 위태로운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칼바람이 부는 만주로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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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객점으로 모인다. 그것이 비록 노름하고, 팔려 가고, 또 의심스러운 임무를 띠고 있더라도 객점 밖은 죽음과도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억압의 환경에 놓여 있었다. 지속된 토지, 식량 등의 경제적 수탈로 인해 조선 농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강화도의 대룡시장에서 팔고 있는 ‘강아지떡’에 ‘쌀을 수탈하던 일본군에게 개가 먹는 떡’이라 속였던 유래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조상이 얼마나 굶주리고 억압받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주로 망명하여도 생활고와 박해를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박해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영웅이나 악인을 그리고 있지 않은 연극 <낮은 칼바람>은 주변을 살피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그려낸다. 그리고 나는 그 주변에서 발화하는 따스한 불씨를 발견하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우리 민족이라면 익히 듣고 불러봤을 동요 ‘반달’의 한 구절이다. ‘반달’은 1924년에 발표된 것으로, 윤극영이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동요를 부르게 하자.”는 신념으로 창작한 서정동요이다. 복녀는 시도 때도 없이 이 ‘반달’을 부른다. 객점 식구들이 그만 부르라며 ‘너는 토끼 한 마리까지만 아냐’고 타박해도 꿋꿋하게 저 구절만을 돌림노래처럼 부른다.


복녀는 수염에게 희롱당한 직후에도 담담하게 ‘반달’을 부르며 바닥에 떨어진 옥수수를 줍는다. 아니, 굳센 척하며 자신의 불행을 숨기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반달’인 것이다. 젊은이와 어린이 구분 없이 ‘꿈과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했던 노래’가 변질해 버린 순간이다. 명랑해 보이던 복녀였지만, 그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나면 그녀의 노래는 어딘가 악에 받쳐 크게 외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복녀는 식당 주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한 포부를 가지며 하루하루 살아낸다. 그럼에도 그녀의 삶은 변화하는 게 없고, 하루하루 돌림노래처럼 반복할 뿐이다. 그때 야마모토 중위가 복녀에게 ‘반달’의 다음 소절을 알려준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순조로운 운항을 위해 필요한 것이 돛대와 삿대이다. 돛대가 없으면 바람을 이용할 수 없고, 삿대가 없으면 수심이 낮은 곳에서 배를 밀지 못해 이동할 수가 없다. 이는 어떠한 지원도 없이 자신만의 배를 타고 가야 하는 복녀의 상황과 일치한다. 그럼에도 ‘가기도 잘도’ 가길 응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반달’을 부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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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움도 받지 못한 복녀. 그에 반해 금석은 야마모토 중위의 도움을 받아 글을 읽고 쓴다. 금석에게는 재주가 있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금방 익힌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 있어 뛰어난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구박을 일삼고 폭행하는 객주로 인해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한다. 어느 날, 중위는 금석에게 또 다른 책을 건네며 읽어 보라 한다. 이내 금석은 서투르지만 차근차근 글을 읽는다.

 

 

상쾌한 여름 저녁이 되면 나는 들길을 가리라.

보리 이삭에 찔리고, 가느다란 풀을 밟으며

꿈꾸듯이, 나는 발자국마다 신선함을 느끼리.

불어오는 바람에 내 맨 머리카락이 날리는구나!


말하지 않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리.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끝없는 사랑만이 솟아오르네.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방랑자처럼

자연 속으로, 연인과 가는 것처럼 행복하게.

 

- 아르튀르 랭보, ‘감각’, 1870년 3월

 


겨울과 정반대의 계절인 여름의 풍취를 그리는 랭보의 시 ‘감각’. 어떠한 포부가 느껴지기도, 그리움의 정서를 풍기기도 하는 이 시를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낮은 칼바람>은 연극 내내 극심한 추위와 서로를 쉽게 믿지 못하여 날카로운 이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얇은 옷을 입고 들길과 풀밭을 거닐고 싶은, 그러니까 지금 눈앞에 놓인 생사의 갈림길이 아니라 풍요와 사랑,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미래를 꿈꾸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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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은 랭보의 시를 접한 뒤 홀로 마구간에서 말을 돌본다. 이때 금석은 말과 대화하며 처음으로 비유를 시도한다. 하늘에 뜬 달을 보곤 노란 것이 유자 같다고 하는 금석. 서툴지만 따스한 그 비유가 추위를 녹이는 것 같다.


객점에 한바탕 소동이 일고, 금석은 객점에서 벗어나 독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연극은 막을 내린다. 그 이후의 금석을 상상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졌다. 어쩌면 금석은 계속해서 글을 배우고, 야마모토 중위가 준 시집을 읽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1942년, 만주로 망명한 조선인의 시를 엮은 <재만조선시인집(在滿朝鮮詩人集)>에 금석의 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

 

“삶의 방식에 대한 가치판단은 잠시 잊고,

'살아낸다’는 의미가 얼마나 숭고한지 나누고자 합니다.” - 정승현


<낮은 칼바람> 공동연출을 맡은 정승현 연출가의 말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았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비교적 흐름에 맡기는 성싶고, 살아낸다는 것은 해낸다는 어떠한 의지가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옳다’, ‘그르다’로 나눌 수 없었다.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칼바람 부는 만주에서 살아내고 있었기에.


우리는 각기 다른 칼바람의 시대를 겪어 왔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팬데믹. 그 외에도 모두 각자 크고 작은 칼바람을 갖고 있다. 그러한 칼바람이 불어도 ‘살아내며’ 따스한 희망을 갖기에 우리는 여름을 바라볼 수 있는 걸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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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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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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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튜핏
    • 가사랑 시구랑 연결하는 부분이 넘 좋네요 잘 읽었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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