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실을 경험한 소년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상실을 메우려 하지 말고, 새로움을 채우자
글 입력 2023.11.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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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기 어려운 장면의 전환,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단서들, 이해할 수 없는 대사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사뭇 친절하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이 영화는 진정 '불친절함' 그 자체다.


설명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보여주기' 형태로 대부분이 전개되어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난 다음에도 내가 이해한 것이 제작자의 의도와 어느 정도 맞는지 전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토록 제대로 본 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드는 영화도 흔치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대한 평이 최악이 아닌 이유는, 제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내가 이해한" 내용이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의 이야기는 정말 '주관적인' 이야기가 될 것임을 미리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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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난 불로 엄마를 잃은 '마히토'는 아버지를 따라 도쿄를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마히토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새엄마가 될 '나츠코'. 나츠코는 마히토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하다.

 

임신한 상태인 나츠코는 임신 자체에도, 마히토를 만난 사실에도 상당히 들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히토는 그런 나츠코에게 예의는 지키되 썩 살갑지 못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히토는 아직도 돌아가신 엄마의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리는 어린아이인 것이다.


그런 마히토에게 갑자기 달라진 환경과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말하는 나츠코가 그리 달가운 존재일 수는 없었으리라. 시샘 어린 시선과 행동에 둘러싸였던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 마히토는 제 주먹보다 큰 돌로 자신의 머리를 찍어 버린다. 이러한 돌발 행동은 변해 버린 환경에 대한 반항, 또는 도망치기 위한 핑계로도 보인다.


그렇게 마히토는 나츠코를 어느 정도 등진 상태였지만, 나츠코가 없어졌을 때 앞장서 그를 찾아 나선다. 그때 마히토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나츠코의 실종에 돌아가신 친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얽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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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를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모험을 겪은 마히토는 친엄마의 어린 시절 모습인 '히미'를 만나게 되고, 히미의 도움을 받아 나츠코가 있는 곳에 도달한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나츠코와 함께 돌아가자는 마히토가 대립하는 순간, 둘을 각각 감싸는 것은 산실의 천장에 걸려 있던 수많은 하얀 끈들이다.


단순히 산실을 둘러싸는 부적의 의미만이 아닌, 하얀 끈은 무엇을 의미할까. 붉은 실이 흔히 운명을 의미한다면, 여기서 하얀 끈은 각자가 갖고 있는 자신만의 고집, 아집이 아닐까 생각했다. 대립의 상황에서 화해를 막는 가장 큰 적은 아집이다.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편견에서 비롯됐을 수도, 나의 부정적인 경험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지만, 그 원인이 무엇이든 대립을 격화시킨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그 하얀 끈들을 없애버린 것은 바로 히미의 불이다. 히미, 즉 친엄마를 마히토에게서 앗아간 것은 불이지만, 마히토의 새로운 엄마와 마히토의 불화를 '소화 것도 불이라는 점이 꽤 아이러니하고 재미있다. 엄마를 잃은 불을 통해, 마히토는 새로운 가족과 마주한다.


이것이 실제로 마히토와 나츠코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마히토의 생각에서 비롯된 환상이어도 재밌겠다고 느꼈다. 나츠코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마히토에게, 환상 속 나츠코의 거부 반응은 마히토가 실제 느꼈던 거부감이 거울처럼 비친 모습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마음속 거부감을 거울로 마주한 마히토가 나츠코에게 주었던 상처를 반성하고, 나츠코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아닐까.


실감하기 어려운 큰 '세계'의 이야기보다 이처럼 작은 '가족'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당연한 이야기겠지 싶지만, 상실의 아픔을 겪은 한 소년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따라가는 이야기로서도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상실된 자리를 메울 수는 없겠지만, 그 비워진 자리 옆에 새로운 자리를 마련해 채우는 것으로 충족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기에.

 

 

[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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