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재들 [공간]

글 입력 2023.11.05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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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저녁쯤 집으로 향하다 보면 아파트 단지에 주차된 아버지의 차를,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계시는 아버지를 종종 만나곤 했다. 아버지와 함께 집에 들어가기 위해 차 쪽으로 걸음을 옮겨 운전석 창문을 두드린다.

 

아버지는 유튜브 또는 드라마가 재생되고 있는 핸드폰을 한 손으로 쥐고 계신 채 창문을 내려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버지는 저녁을 먹었냐는 짧은 인사말과 함께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하신다. 그러고 아버지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피식대학 - 신도시 아재들의 개인공간은 어디인가'

 

 

시간이 흘러, 한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콘텐츠인 ‘05학번이즈히어’의 영상으로, 제목은 ‘신도시 아재들의 개인공간은 어디인가’였다. 영상을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그 개인공간은 바로 자동차였다. 영상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퇴근 후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후, 그 안에서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에 나는 큰 재미와 함께 한편으로는 놀라운 감정이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차된 차에서 이와 같은 개인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놀랐고, 이러한 그들만의 시간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였다. 해당 영상이 업로드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나는 대학생이었고, 자취생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해 큰 체감을 할 수 없었을 때였다.


영상을 본 딱 그때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사회초년생’이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나의 자취 생활은 마무리되었다.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학생도, 자취생도 아니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동안 체감하지 못했던 ‘혼자만의 시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씻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선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라는 사회초년생의 전형적인 걱정과 함께 사람 몇 명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퇴근을 하면 밤이 된다.


이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몇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 시간마저도 내일을 준비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 ‘내일은 없어’라는 말은 이제 노래 가사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돼버렸다. 직장 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평일은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고, 글피도 있다.


나에게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물론 퇴근 후 귀가해도 나 홀로 방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있어서일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여유롭지도 않을 뿐더러 집중력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 같다.


취업을 하면서 자그마한 차 하나를 중고로 구매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어떠한 생각이나 마음, 감정 등을 정리하고 싶을 때, 잠시나마 여유롭게 휴식하고 싶을 때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향한다.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히고, 많은 생각들을 한다. 친구들과 통화하기도 하고, 유튜브 영상을 보기도 한다. 지금처럼 노트북을 들고나와 글을 쓸 때도 종종 있다.


늦은 밤, 아파트 단지는 상당히 조용하다. 내일은 월요일이기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적당한 비까지 내린다. 빗물들이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다시 한번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보탬이 되어주고 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아마 이번 주 회사에서 해야 할 일, 다음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서 할 일 정도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 같다. 조금 더 있다 들어갈 거면 유튜브나 SNS를 볼 예정이다.


수십 년째 혼자만의 시간을 차에서 보내신 아버지,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나. 그렇게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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