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탄탄한 기초와 애정이 가득한 동물 드로잉 가이드북 -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

글 입력 2023.10.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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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욕심이 생기기 전에 나의 자기 표현 수단은 사실 그림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반절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림으로 밥 벌어먹고 싶어서 진로를 가지고 제법 마음고생 했었는데 정작 20대 중반 즈음부터 나는 손이 굳어버렸다. 잘 안 그린 거다. 그렇게 그리고 싶어하던 그림을.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내게 너는 OO분야도 어울리지만 너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은 그림이라고, 다시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 때문일까.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의 문화초대를 신청하게 된 건.


사실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에 미술사나 아트 컬렉팅 관련 지식을 풀어낸 도서는 자주 올라왔지만, 적어도 내 경험상 이렇게 드로잉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책이 나온 경우는 처음인 듯하다. 그래서 이런 유형의 도서는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하나 고민이 된 것도 사실이지만, 드로잉 교본을 손에 쥐면 아무래도 그림에 대한 욕구가 자극받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된 것이다.

 

인물 위주로 그리느라 동물을 거의 그려보지 않아 동물 드로잉 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궁금했던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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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폰드가 쓰고 그린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에는 ‘아티스트,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들을 위한 동물 드로잉 실전 가이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림 그리기 교본 책에서 ‘실전 가이드’라는 문구만큼 사람을 혹하게 하는 게 있을까? 당장 그리고 싶은 마음 만만인 사람일수록 더욱 이 문구에 끌리겠지 싶다.


반전이 있다면 저자 팀 폰드가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을 진심으로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는 선 긋기, 타원 그리기, 기본 도형 그리기 등 미술의 기초에 대한 설명을 먼저 읽어야 한다. 선 긋기 예시를 보고 있으니 미술학원에 처음 갔던 날이 떠오르기도 했고, 타원 그리기를 보고 있자니 원기둥을 그릴 때 위아래 원의 양 끝을 뾰족하게 그리면 그건 원이 아니라고 지도를 받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선 긋기를 하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이걸 왜 하나 싶겠지만 기초는 매우 중요하다. 한 선을 그을 때 힘의 강도를 일정하게 하는 법, 그리고 손목이 아니라 팔목을 쓰는 올바른 자세를 익히게 된다. 이 기본적인 직선을 잘 그을 줄 알아야 유려한 선도 그을 수 있고, 묵직하거나 가벼운 느낌의 선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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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술의 기초를 익힌 뒤로 바로 동물 그리기를 하느냐.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이번에는 생물의 기본적인 구성-뼈, 근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절과 근육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인간을 포함한 각각의 동물 종들이 어떻게 다른 계열로 분화하여 진화하게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간략하게 이해시킨다.

 

동물들이 각각의 계열로 분화하여 진화하기 전, 지금보다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원형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수많은 종의 동물들, 그리고 처음 그려보는 동물을 그릴 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구조에 대한 이해 역시 이 취지와 흡사하다.


동물 도안을 따라그려 볼 셈으로 이 책을 펼쳤다가 예상치 못하게 본격적인 생물학적, 해부학적 지식이 가득한 페이지들을 맞이한 독자들은 동물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도 분명히 명시하고 있듯이, 미술에 필요한 지식만 가져가면 되는 것이고 모든 근육이나 뼈 구조의 이름을 외울 필요는 없다.


사실 책을 펼친 초반에는 생각보다 여러 장을 차지하는 생물학적, 해부학적 지식들에 당황했지만, ‘이것이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이라고 생각하니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확실히 외관 이면의 뼈대, 근육, 관절에 대한 이해를 하고 넘어가니 외형 도안만 보고 그려야 할 때보다 더 속 시원하고 탄탄한 느낌이 들었다.


사물을 그리더라도 해당 사물의 원형과 구조에 대한 이해는 더욱 탄탄한 그림을 만드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물감도 묻고 흠집도 난 페인트 통의 한 귀퉁이가 찌그러져 있는 모습을 소묘로 그려야 한다면,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기 전에 그 페인트 통의 원래 모습과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머리로 그려 보고 그림을 진행하는 것이 훨씬 더 그림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그리는 이의 내면에서 일어난 과정들은 결코 쓸모없지 않다. 대상의 원형과 구조에 대한 높은 이해도, 그리고 현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선후 관계를 헤아릴 줄 아는 힘은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 감상자의 시선을 더 오래 잡아두게 만든다.


이렇듯 회화의 기본기와 그려낼 대상의 원형과 구조에 대한 이해는 이후 하게 될 드로잉을 위한 단단한 초석인 셈이다. 저자는 동물을 그리는 과정에서 육안으로 관찰하는 사생 드로잉을 수행한 한편, 옛 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물이 그려진 여러 그림들을 참고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 종의 특징이나 살아 있는 개체들의 본질을 파악하기 가장 좋은 방식은 역시 사생 드로잉이라 여기고 있는 듯했다.

 

책 초반 페이지의 여러 기초 지식들이 살아 움직이는 동물들을 보는 즉시 드로잉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말이 통할 길이 없는 동물을 그리는 일은 사람 모델 드로잉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동물을 크로키 모델로 고용하며 첫 세션에는 한 포즈에 몇 분씩 있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는가. 자유롭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동물들을 그리려면 역시 인간은 겸허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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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책을 읽으며 새로운 동물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북부흰뺨긴팔원숭이, 사탕벌새, 파라다이스날뱀 같은 동물들을 지금이 아니면 또 어느 기회로 알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익숙한 동물들은 초면인 동물들 사이에서 보게 되니 더 반가웠고, 생경한 동물들은 새로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본격적으로 동물별 드로잉 팁을 전수하는 부분에서는 동물별 외형을 도형화하거나(위젯) 평면화하여(기즈모) 그 동물만의 특징을 알게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이고 장르 역시 드로잉 가이드북이지만 동물의 피부 표면이나 털의 질감, 색감이 특징적인 경우에는 연필, 펜 외에 어떤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쓰면 좋은지까지 알려준다.


때문에 그림을 공부하는 학생, 실제 동물들을 기반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애니메이터 등에게 이 책은 좋은 자료집이 될 것이다.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에게도 이 책은 도움이 된다. 예컨대 판타지 세계관 작품에서 가상의 식생을 등장시킬 때, 환경과 기후마다 다른 특징을 가진 현실세계의 동물들을 이해하고 있다면 더 설득력 있는 동물 디자인을 만들고 개연성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서사가 있는 창작물에서 설득력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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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은 일종의 동물, 곤충(곤충도 절지동물이므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도감 기능도 하는 책이기에, 동물박사 곤충박사인 어린 학생들에게도 권할 수 있을 듯하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자기가 몰두하고 있는 생물의 긴 이름과 특징도 곧잘 외우곤 한다. 여기에 사진을 보며 생김새를 따라 그려보고 싶어하는 친구라면 더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이처럼 팀 폰드의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은 다양한 지식을 다루고 있어 여러 목적의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나처럼 굳은 손을 풀기 위한 독자들에게도, 대상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림들은 역시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결국은 관심 어린 애정이 모든 예술의 가장 강력하고 기본적인 설득력이기 때문이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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