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 대 자연, 어리석은 정치에서 벗어나기 [미술/전시]

글 입력 2023.10.2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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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근방에 자리한 자하미술관에 다녀왔다. 현재 진행 중인 《Hybrid-Ground》 전시와 더불어 학술 강연을 통해 카이스트 인류세 연구센터에서 근무하는 김준수 연구원과 장한나 작가의 연구 주제, 질의응답을 통한 강연자와 참여자의 대담을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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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를 처단해야 할까


 

‘인류세(Anthropocene)’는 지질학적 용어로써 그리스어 어원의 ‘인간(anthropos)’과 ‘새로운 시대(cene)’라는 시간적 의미를 합친 말이다. 네덜란드 화학자 폴 크뤼천(Paul Crutzen)가 신생대 4기 홀로세(충적세)인 2000년 현시대를 인류세라고 정의할 것을 주장했다. 2011년부터 미국 지질 학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국제층서위원회에 인류세 워킹그룹(WGA)이 이 용어를 공인화하기 위한 과학적 증거를 수집 중에 있다.

 

폴 크뤼천 외에도 전문가들이 현시대를 인류세라고 분류하게 된 데에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이 전 지구적, 행성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에 대한 제안이었다. 물론 그 시기는 학자들 사이에서 분분하지만 인류의 환경 파괴로 인한 지구 환경 체제의 변화에 따른 제안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 종을 비롯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영향을 받은 인간 외 존재와의 관계도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인류세를 둘러싸고 수많은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준수 연구원이 주목한 건 정치생태학의 영역이었다.

 

정치생태학이란 환경 변화를 정치적 변화의 산물로 파악하고 연구하는 생태학의 한 분야를 말한다.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까지 탐험하면서 순수 자연을 관찰하던 방식 대신, 우리 주변에 일상에서 나를 조형하는 ‘사회자연(socionature)’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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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 SK 하이닉스 공장에서는 따뜻한 배수(26~34도)를 1년 내내 배출한다. 그래서 인근의 하천에서는 겨울에 수증기가 피어나기도 하는데, 2018년에는 구피가 발견되었다. 작은 물고기를 키우는 집이라면 1순위로 등장하는 대중적인 이 물고기는 본래 열대 지방에 서식한다. 혹독한 우리나라의 겨울을 나기란 불가능인데 온배수 덕에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아마 유기되면서 모였을 구피들은 다른 송사리과 생물들을 밀어내고 우점종으로 죽당천을 점령했다. 이에 국립생태원은 구피의 위해성을 두고 생태적으로 피해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했지만, 환경 단체는 온배수를 끊거나 생물학적 방재를 논의하는 등 ‘제거’에 초점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외래종 사안은 이렇듯 단순히 토종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방재 혹은 제거의 정책이 행해진다. 당장 죽당천만이 아니라 환경이 변한 하천이 2~3곳 발생했고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한반도의 환경은 변할 것이며 생물권은 교란될 텐데 그럴 때마다 인간이 개입해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달이 하천을 찾아왔어요∙∙∙.’처럼 덮어놓고 낭만화된 자연을 전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어느 한 쪽에 매몰되어 비용만 들인 채 인간의 식대로 마무리 짓는 방식 역시 문제다. 어떤 대안이나 정책을 제시하고 실천할지는 꾸준한 연구 아래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정치생태학처럼 물질 간, 물질과 지역, 물질과 전체 생태계의 관계를 직시하면서 시야를 넓혀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예기치 않게 플라스틱은 거기 있었다



장한나 작가는 ‘돌’-처럼 보이지만 실은 플라스틱-을 수집한다. 작가가 수집하는 돌의 조건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플라스틱일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자연과의 교류이다. 이렇게 최소한의 조건과 더불어 미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물론 그 기준은 작가에게 달려있겠다.

 

2017년부터 진행하는 ‘뉴 락 프로젝트(New Rock Project)’는 작가가 바다에서 돌처럼 생긴 플라스틱(뉴 락New Rock)을 발견한 후로 이어진 작업이다. 어쩌면 그 돌은 마침 장한나의 눈에 띄었다고 볼 수도 있다.

 

작가는 당시 쓰레기 처리에 대한 관심으로 동료들과 일명 쓰레기차를 추적하는 환경 프로젝트를 하던 때였다. 그런 중에 바닷가에서 우연하게 플라스틱 돌을 발견하게 된다. 불현듯 그 돌의 생산, 처리, 소비, 풍화 같은 수많은 과정이 작가의 머리를 스쳤을 것이다.

 

‘플라스틱’은 자연의 유한성과 대조적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적인 생산이 가능한 물질이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당구공의 수요가 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할 만한 물질을 찾아 나섰고, 그때부터 발견하고 만들어 낸 대체 물질로써 플라스틱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 석유화합공업에서 주원료로 쓰이는 ‘나프타(naphtha)’는 합성수지,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으로 제조되고 있다.

 

장한나 작가가 바닷가에서 마주한 돌, 아니 플라스틱은 쓰임을 다하고 버려지고 뜯기고 흩어져 자연의 어느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변했다. 그리고 작가는 그 기묘함을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본격적인 수집을 나섰고 플라스틱 혹은 석유산업과 관련한 자료를 모아 전시의 형태로 구현하여 담론의 장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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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플라스틱을 향한 관심보다는 그것이 점차 자연화되면서, 가시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섬뜩함을 인지해 본격적인 수집을 시작했다. 그런데 전시에서 보이는 인공과 자연의 결합이 조화롭기도 하고, 그런대로 잘 녹아들어 또 하나의 생태계를 발견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괜찮은 건가? 께름칙한 감정은 뭐지.

 

의문을 해소하고 싶었기에 강연 질의응답 시간을 빌어 작가에게 물었다.

 

장한나 작가는 심미적인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앞서 제시했던 두 가지 조건 외에 작가가 수집하는 돌은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가 전달할 메시지의 수단으로 쓰이기 위함이다. 우선 눈길을 끌면 관객은 그것에 다가가게 되고 비로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에 도달하기가 수월해진다. 장한나는 말 그대로 작가의 입장에서 그의 방식대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었던 거다.

 

여기에 그는 아름다운 것이 옳은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미화’하는 것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작업을 하면서도 그 점에 고민이 많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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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류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자연으로부터 닥친 시련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거대한 힘을 가진 그것은 신화나 전설 속에서 미약한 존재들의 대척점으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17세기를 거쳐 근대 과학이 등장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인류는 인간과 인간 외의 것을 분리했고, 차근차근 세력을 넓혀가며 끝내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그 이후의 결말은 모두가 알고 있듯 미세먼지, 태풍, 홍수, 가뭄, 산불로 내성이 생긴 것 마냥 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그 앞에 우리는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인류는 지금 2023년까지 수없이 잘못과 뉘우침을 반복해왔다. 과연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린다면 어느 시대에 어떤 방식이 최선일까. 그건 아무래도 무리다.

 

여기서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갈등만 부추기고 목표를 흐릴 뿐이다. 이때 우리가 담지 할 태도는 ‘정동(affection)’이다. 장한나 작가가 ‘뉴 락’을 목도하면서 문제를 자각하고, 그 안과 밖에서 일어난 변화를 살피어 인공물과 자연물의 새로운 관계를 제시하는 것처럼. 김준수 연구원이 문제 해결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전체 생태계와 이를 둘러싼 ‘정치’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것처럼 말이다.

 

 

[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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