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자아 찾기 3급,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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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었던 입시의 늪을 지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느꼈던 것은 한없는 불안감이었다. 짧은 인생에서 가장 컸던 목표가 사라진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음을 방패 삼아 이곳저곳에 부딪혀 보기에는 주어진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았을 뿐더러, 두려움이 많은 성향도 한몫 하여 나는 그저 안전한 사정거리 내에서만 머물렀다. 도전도 하지 않지만 실패도 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렇게 졸업했고, 별다른 시행착오 없이 취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던 어느 날 느껴진 것은 공허함이었다. 나는 나였지만 동시에 내가 아니었다. 벙커와도 같은 안전한 공간 내에서 머무르는 사이 좋아하던 것도, 잘하던 것도 잃어버리고 무뎌져, 나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꽤 있어 보이는 이력서를 쓸 수 있었고, 괜찮은 경력 기술서도 쓸 수 있었지만, 실제 나에 대해 설명하지는 못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와 가장 가까웠던 '내'가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다. 썩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사실, 눈물이 찔끔, 아니 많이 나기도 했다)
만화 [허니와 클로버]에서 등장인물 다케모토 유타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자아 찾기' 여행을 떠난다. 살던 곳에서 무작정 자전거를 끌고 나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터널 속을 달리던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두려웠던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어쩌고 싶은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리고, 그래도 가차없이, 흐르는 나날이."] - 우미노 치카, [허니와 클로버] 6권 中
나도 그랬다. 내가 어쩌고 싶은지 모르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시간은 무자비할 정도로 빠르게 지나간다. 보일 듯 말듯 희미한 미래 속에서의 내 모습이, 설령 밖으로는 괜찮아 보일지라도 그 내면이 지금과 같이 공허하다면, 그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내가 잃어버린 것부터 하나둘씩 되짚어 나가 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만화를 좋아했고, 책을 좋아했고,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했고, 노래를 좋아했다.
또 뭐가 있을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공감하는 그 모든 행위가 좋았다. 그 순간순간이 찬란하게 느껴졌으며, 가끔 내 생각에 사람들이 공감해 줄 때는 어디서도 느끼기 힘든 보람을 느꼈다.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에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 발이 닿은 곳이 '아트인사이트'였다.
이 곳이라면 내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간신히 이겨내며 에디터에 지원했고, 다행히 좋은 기회가 되어 벌써 에디터로서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생각과 같지는 않았다. 아트인사이트에서의 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것이 '왜' 나에게 와 닿았는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보다는 나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공간에 가까웠기에, '나'에 대한 고민이 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트인사이트에서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싶었다. 내가 애호하는 문화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하되, 그 기반이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충분한 사색이다. 나만의 가치와 색이 담긴 글이 모이고 모여 나를 이룬다.
그래서 나에게 아트인사이트는, 일종의 '자아 찾기' 여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언제 끝날지는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아트인사이트 안에서 나를 찾고 있으며, 나 자신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이 여정의 끝에서 아마도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채워질 수 있지 않을까.
[허니와 클로버]의 다케모토는 자아 찾기 여행이 끝난 뒤 '자아 찾기 3급'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나도 그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래도 1급이나 2급은 좀 부담스러우니까. 3급 정도면 꽤 괜찮은 이력이 될 것 같다.
[유지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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