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이름 모를 사람이 쉬어갈 벤치를 만들듯이

그 의자의 마지막 다리를 목공하며
글 입력 2023.10.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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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및 웹상에 정식 출력된 글은 송출 규정상 삭제/수정을 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기절할 뻔했다. 활동 초반에 아트인사이트에서 온 메일이었다. 이미 올려버린 두 편의 글이 생각나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고 죽도록 후회를 하는 것이 내가 글 쓰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종국엔 전부 '수정' 버튼으로 귀결됐다. '뭘 그렇게까지?'라며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위해 첨언한다. 손톱 주변의 거스러미를 발견한 순간 그것을 뜯어버리지 않고는 못 버티겠는 기분과 유사했다.

 

물론 지금은 고질적이던 '손톱 거스러미 뜯기'를 어느 정도 완치한 상태다. 아트인사이트 측에서 치료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 구체적인 치료 일기는 아래와 같다.

 

 


너의 글을 이만큼 읽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하나 더 왔다. 수정 버튼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두 번 다시 쳐다도 보지 않던 글의 구체적인 조회수였다. 대외비라 자세히 적지는 못하지만, 꽤 높았다. 얼굴의 구멍이 전부 커졌다.

 

글을 다시 눌러보았다. 조금 재밌는 것 같기도 했다.

 

「이처럼 작가는 알약, 물방울, 알약과 같은 작은 물체를 촬영한 뒤...」

 

물론 글 쓰는 방식은 여전했다. 같은 단어를 두 번이나 반복하다니. 정말 바보 같군. 그렇게 생각했지만 삭제 버튼은 어디에도 없었고 거스러미를 떼려면 피를 흘려야 했다. 그깟 오타로 대표님과의 면담을 청할 수는 없었기에 참았다.

 

지금 생각하니 치료 방식이 조금은 반강제였던 것 같다.

 

 

 

메인에는 대체 어떤 글이 올라가는 걸까


 

동시에 욕심이 생겼다. 아트인사이트에서는 매일 6개의 글을 선택하여 메인 화면에 올리는데, 그곳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진 것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다. 몇 번 올라가 보니 그 자부심이 이루 말할 것 없이 대단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와도 올리는 족족 아트인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차지하진 못할 거다. 기준이 꽤 까다로웠다.

 

체스판과도 같은 여섯 개의 네모 칸에 하루 동안 전세를 낸 사람들을 질투했다. 뭐 얼마나 잘 썼길래. 그렇게 생각하며 눌러봤는데, 정말 잘 썼다. 할 말이 없어졌다.

 

 

antoine-rault-uWQu9NqBh6g-unsplash.jpg

 

 

어느 순간부터는 즐기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약속이 없는 휴일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이름 모를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보며 웃기도 했고 공감하기도 했다. 조금 서투를진 몰라도 진심만큼은 가득 담긴 글들이 매력 있었다.

 

내 글도 누군가에게 휴식일까? 별안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이 본 글'에 간택되다



'많이 본 글' 상단에 며칠 동안 글이 올라가 있었던 적이 있다. 머리 위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글을 읽은 사람들의 감상이 궁금해졌다.

 

재밌었을까? 공감할까? 혹은, 글의 내용을 비판할까?

 

물론 마지막이라면 마음은 조금 쓰리겠지만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공고히 하며 스스로의 세계를 넓혀나가는 과정이 됐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공감을 해줬다면 더 바랄 것도 없다. 그저 하루의 한켠에서 내가 쓴 글자들에 집중해 줬다는 사실에 의미가 생겼다.


 

 

길가에 놓인 벤치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그 이름 모를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친 일상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설레는 만남을 앞둔 아침에. 무료한 하루를 보내던 중에. 혼자 밥을 먹으며 심심할 때. 짧은 순간 동안 그 사람들의 대화 상대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생겼다.

 

글 쓰는 일을 비롯한 문화예술 전반이 그렇지 않을까. 뮤지컬을 감명 깊게 본 사람은 그때의 기억을 양분 삼아 회사에 출근한다. 방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드라마나 예능을 두고 '밥 친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내 오랜 밥 친구는 무한도전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은 누군가가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목공들이 이름 모를 사람들을 위해 나무를 적당히 자르고 사포질하는 모습이 문화예술을 만드는 사람들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벤치 1.jpg

 

 

그리고 아트인사이트는 나에게 의자 다리 세 개만큼의 의미를 가졌다. 이미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의 공간인 것이다. 그저 마지막 다리를 정성껏 다듬어서 꿰맞춘 뒤 앉을 사람을 기다리면 된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열심히 벤치의 네 번째 다리를 만들려고 한다.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열심히 사포질을 할 것이다. 튀어나온 나무 거스러미에 다치지 않고 편히 쉬다 갈 수 있도록. 물론 그곳에 앉을 사람의 이름조차 모르지만.

 

 

[이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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