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야할 곳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 [도서/문학]

글 입력 2023.10.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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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단편소설집에 수록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운영하지 않는 우주 정거장에서 몇십 년 동안 우주선이 오기를 기다리는 노인 ‘안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안나는 젊었을 때 인체 냉동 수면 기술인 딥프리징을 연구하는 연구자였다. 그는 가족들과 지구를 떠나 슬렌포니아 행성에서 지내고자 했다. 안나는 하고 있던 연구를 마무리해야 했기에 남편과 아이는 먼저 슬렌포니아행 우주선을 타고 떠났고, 안나는 연구 발표가 끝난 후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넘어가 가족들과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다.


안나가 연구하던 딥프리징 기술은 연구 초반만 해도 우주 탐사 분야에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지구에서 다른 항성계에 도달하는 시간은 수백 광년부터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냉동 수면을 해서 다른 행성으로 가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딥프리징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더 경제적으로 우주 탐사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발견됐고 이는 연구 진행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지만 안나가 가족들과 여생을 보내는 데에는 영향을 끼쳤다. 더 경제적인 우주 탐사 방법이 나왔기에 기존의 우주 탐사 방법은 폐기됐고, 이는 슬렌포니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연구개발한 딥프리징 기술로 냉동 수면에서 자고 깨는 것을 반복하며 슬렌포니아로 떠날 희망이 있다고 보이는 폐기된 우주 정거장에서 슬렌포니아행 우주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기존에 사용하던 방법보다 경제적인 방법이 있다면 원래의 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기술 발달로 인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고, 서로 만나지 않고도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게 됐고, SNS의 발달로 서로의 근황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SNS를 해도, 하지 않아도 외로운 세상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친해질 때 번호보다는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먼저 물어보기에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을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되는 피드들은 계속 봐도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키오스크를 처음 봤을 때 무척이나 당황했다. 사용법은 모르지만, 화면에 보이는 것들을 감으로 누르면서 얼떨결에 주문했던 기억이 있다. 주문을 마친 후에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요즘 많은 매장에 있는 키오스크는 노인들을 밖에 나오기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그들은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어 밖에 나와 음식 하나 못 사 먹는 본인의 모습을 보며 이 세계에서 분리된 것 같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키오스크 주문을 처음 마친 후 느낀 안도감은 나는 아직 이 세계에서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일지도 모르겠다.


안나처럼 가족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더라도 이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을 편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삶을 따뜻하게 해줬다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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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무리에서 결국 안나는 그의 오래된 개인 우주 탐사선을 타고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여정을 떠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 <낙화> 중 일부

 

그가 개인 우주 탐사선을 타고 슬렌포니아 행성에 도착할 확률은 극히 낮다.

 

그의 낡은 우주 탐사선의 속도로는 슬렌포니아 행성에 한참을 가도 닿지 못할 것이고, 만약 빛의 속도로 간다고 해도 매우 오랜 시간 후에야 도착할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 앞으로의 노후는 즐겁게 살아가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렇기에 슬렌포니아로 떠난 그의 선택은 무모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가야 할 때와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녀가 매일 폐기된 우주 정거장에 갔던 이유는 슬렌포니아행 우주선이 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거장이 철거되고 그가 슬렌포니아로 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의 개인 우주 탐사선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야 할 때는 지금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결국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도 슬렌포니아에 도착할 확률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본인이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택이 의미 없는 선택이라 볼 수 있을까.

 

사실상 결과가 정해져 있는, 그럼에도 확신에 차있는 그의 여정을 무어라 평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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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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