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시락을 싸자!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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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시작!
새 학기가 벌써 거의 한 달이 지났는데도 휴학이 그립다. 느긋했던 오후 기상도, 자유로웠던 일정도 그립지만 가장 그리운 건 집에서 삼시세끼를 다 해 먹을 수 있었던 시간적 여유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물가 상승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분명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한 끼에 9,000원 이상을 쓰면 대단한 사치를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면 10,000원은 기본으로 써야 한다. 심지어 한국인의 마지막 보루인 국밥은 7~8,000원, 대학생의 마지막 보루인 학식마저 6,000원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아르바이트한다고 해도 일주일에 1~2일 이상을 외식하기엔 부담스러운 물가다.
그래도 우리는 새 학기를 누리는 대학생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친구들과 밥을 같이 먹고 싶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캠퍼스를 산책하고 싶다. 그래서 내 친구가 생각한 대안이 ‘도시락을 같이 먹자!’라는 것이었다. 오, 도시락. 정말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사실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서 먹는 내 모습이 남들한테 어떻게 비치려나 고민이 되기도 했고, 매일 아침 혹은 밤에 감기는 눈꺼풀을 부여잡고 도시락을 쌀 자신도 딱히 없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돈을 아끼고 또 모으고 싶고, 그러면서도 친구와 같이 밥을 먹고도 싶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고민을 슬쩍 숨긴 채, ‘헐 완전 좋음 ㄱㄱㄱㄱ’라고 답장했다.
그렇게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우당탕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얼렁뚱땅 샌드위치
첫날, 샌드위치를 하려고 속 재료를 전부 확인하고 잤는데 요리하려고 보니 겉을 감쌀 빵이 없었다. 아차! 급하게 동네 빵집에 가서 치아바타를 사 왔다. -3,000원. 그래도 양상추와 치즈, 닭가슴살, 발사믹 소스까지 야무지게 올려 마무리했다. 성공적인 맛이었는데, 수업이 전부 끝나자 조금 배고팠다. 다음에는 재료를 더 추가할 것!
다음 날, 역시 샌드위치가 편한 것 같아 이번에도 샌드위치를 쌌다. 전날 사둔 식빵의 위에 보리수 열매 잼, 쌈 채소, 토마토 2~3조각, 닭가슴살, 치즈를 올렸다. 양이 조금 적을까 걱정되어 간식으로 먹을 에너지바도 하나 챙겼다. 첫날 싸갔던 샌드위치보다 훨씬 맛있어서 뭐가 이렇게 맛있나, 생각해 봤더니 보리수 열매 잼이 일등 공신이었다. 단 걸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너무 단 딸기잼보단 많이 달지 않은 보리수 열매 잼이 더 맛있었다.
2주 차의 첫날, 적응이 덜 됐는지 단단히 늦잠을 잤다. 허둥지둥 준비하느라 동네 빵집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5,500원. 이 샌드위치도 분명 신입생 때는 4,500원이었는데 어느새 값이 올랐다. 바질페스토에 두꺼운 치즈, 한가득 들어간 양상추에 얇은 햄. 값이 올라 씁쓸하지만, 여전히 맛있는 샌드위치다.
한 주 정도는 친구에게, 나에게 다른 일정이 생겨 같이 밥을 먹지 못했다.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어서 잠은 더 잤지만, 조금이나마 반복되던 일정이 사라지니 조금 허전하기도 했다. 이번 학기의 끝자락엔 부지런히 습관을 들여 도시락을 척척 쌀 수 있게 되려나?
이번엔 샐러드를 쌌다. 잎채소를 씻어 물을 탈탈 털어주고, 남아있던 마지막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한입 크기로 썰어 넣었다. 양이 제법 되는 것 같다가도 부족할지 걱정되어 달걀 2개를 반숙으로 삶아 추가했다. 샐러드 위에 뿌릴 발사믹 드레싱을 따로 챙겼더니 용기가 2개가 되어 가방에 조금 더 불룩해졌다.
내 샌드위치는 내가 봐도 역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찍은 사진이 없어 저작권 프리 이미지로 대체했다.
도시락통, 살까?
사실 나는 도시락통을 살 계획이 없었다. 집에 있는 반찬통에 샌드위치가 딱 맞게 잘 들어가던 것도 있고, 날씨가 선선해져 내용물이 상할 염려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귀여운 미니마우스 도시락통에 유부초밥을 싸주신 적이 있긴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런 도시락통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기도 했다. ‘나도 도시락통을 살까?’ 친구에게 물으니 편하고 좋다면서 자기가 산 곳을 추천해 주었다. 추천해준 곳을 기억해두긴 했지만, 밥을 주로 싸 오는 친구의 통은 샌드위치를 주로 싸는 나와 별로 맞지 않을 것 같아 딱히 살 생각은 없었다.
도시락통의 필요성을 체감한 계기는 만두 볶음밥이었다. 볶음밥은 모름지기 따뜻해야 맛있는 법인데, 아침에 싸서 점심에 여니 밥이 다 식어 있어서 어딘가 밍밍한 맛이 났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라도 사면서 겸사겸사 전자레인지로 데워 올걸, 싶다가 굳이 목마르지도 않은데 마실 걸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먹었다. 에잇, 도시락통 그거 내가 사고 만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도시락통을 찾다가 이 글을 썼다. 지금은 도시락통 하나 없어서 쩔쩔매는 나지만, 서툴게나마 도시락을 싸 동기들과 함께 밥을 먹는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 가져올 변화가 궁금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을 겨울의 내가 훨씬 더 맛있는 도시락을 싸는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자!
언젠간 이런 멋진 도시락을 싸는 날이 오겠지?
[박주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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