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여정 -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작품 속 인물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글 입력 2023.10.0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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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인물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여기 이런 유쾌하고도 발칙(?)한 상상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외치던 햄릿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비극의 연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작품 너머로 우리를 응시한다면?


뮤지컬 <인사이드 윌리엄> 속 세상이 그러하다.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작들을 아직 세상에 탄생시키기 전의 셰익스피어, 아직의 무명의 작가였던 그에겐 그러나 오래도록 마음 속에 간직해온 열망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영원히 빛바래지 않고 사람들에게 읽힐 그런 멋진 ‘이야기’를 쓰는 것. 잊혀지지 않을 강렬한 어떤 한 획을 긋는 것. 그 꿈을 위해 오늘도 한 손엔 작법서, 또 한 손엔 펜을 쥐고 원고와 씨름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집필 중이던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 원고가 섞이게 되고, 어째서인지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어지게 되는데..?

 

 


이건 곧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여정


 

우리의 흥미와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는 사실 강렬한 이야기들이다. 마치 중독적이고 자극적인 조미료를 친 것처럼, 이야기 속 지독한 불행과 슬픔은 종종 우리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이야기란 압축적인 무언가이다. 매일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을 전부 열거하기엔 무대 위 극의 시간은 짧고 지면은 한정적이다. 별로 재미없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 그렇게 때로는 과장되고 압축된 이야기들로, 우리가 주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들로 가득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간다. 


아버지의 복수 대신 시인을 꿈꾸는 햄릿, 사랑이 아닌 검사를 꿈꾸는 줄리엣, 그리고 빛나고 주목받는 무대 위 ‘주인공’을 꿈꾸는 로미오까지. 자아를 찾고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려는 세 명의 주인공들에게 보다 못한 셰익스피어는 직접 말을 건다. ‘그렇게 평범한 이야기는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그런 평범한 이야기들로 너희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이는 곧 무대 밖 현실에서 수많은 순간을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우릴 위한 대사이기도 하다. 우리 삶에서 우리가 주인공이라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과연 스스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지독히 가슴 벅찬 세기의 사랑도, 환희와 낭만으로 가득 한 모험도 할 수 없는, 어쩌면 우린 평범한 일상 속 사람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극의 마지막에서 셰익스피어는 결국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에게 등장 인물이란 결국 자신 내면의 조각들이다. 어떤 식으로든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언제부턴가 셰익스피어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인기작, 명작을 위해서만, 타인의 평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애초에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이 진정 쓰고 싶고 담고 싶었던 진심 어린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아직 내면에 남아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에겐 이름 없는 어떤 검사의 잔잔한 방랑 이야기가, 재능은 없지만 시인을 꿈꾸는 청년의 이야기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주인공이 되는 법은, 우리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인생이란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이야기’니까. 남들 보기에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않아도 그 속에서 나만의 보람과 행복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은 햄릿,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말이다. 




유쾌한 웃음 뒤에 남은 따뜻함


 

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즐거운 웃음, 그리고 배우분들의 시원시원한 가창력과 재치 넘치는 연기력으로 가득 차 있다. 중간중간 배우분들의 익살스러운 연기와 극 중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개그에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었다. 웃음과 재미, 이야기와 감동 그리고 극을 마친 후 잔잔히 남는 따뜻함까지 대학로의 밝은 분위기와 딱 맞는 즐거운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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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비극인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란 독자들에게 읽히고 또 읽힐 때마다 무한히 반복되고, 그렇게 생명력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상상력 속에서 살이 붙은 캐릭터들은 종종 입체적인 실제 인물과도 같이 다가온다.

 

몇 번을 읽어도 똑같이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뻔한 이야기는 캐릭터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느껴지고, 애정하는 캐릭터가 그 운명에서 벗어나 더 행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볼 것을 꿈꿔보기도 한다.

 

원작자인 셰익스피어가 보기에 이번 <인사이드 윌리엄>은 매우 뿌듯하고 즐거운 이야기였을 것 같다.


누구나 다 알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유쾌한 상상력을 담아낸 따뜻하고 즐거운 뮤지컬이었다.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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