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원하는 어떤 삶의 형태로도 행복할 수 있어 [사람]

새롭게 시작할 용기
글 입력 2023.09.2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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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alia, Perth, 2023

 

 

비 오는 평일 저녁. 좋아하는 출판사의 브랜드 및 신간 북토크를 다녀왔다. 

 

출판사를 창업하게 된 계기와 신간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자리. 1인 출판사라 대표님이 디자인, 마케팅, 유통, 편집 등 많은 일을 혼자 맡고 있다고 했다. 의사 결정권이 오롯이 본인에게 있으니 결과물에도 본인의 취향이 듬뿍 담겨있을 터. 그 결과물을 좋아하는 팬들이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점을 꽉 채웠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자리가 얼마나 뿌듯했을까.

 

대표님은 창업전 평범한 직장인으로 17년간 일했다고 한다. 새로운 일을 하고자 40대에 회사를 그만두고 2년 반 동안 디자인 툴, 크로키 수업을 듣는 등 창의성을 깨우는 시간을 가졌다고. 회사를 그만둘 때는 서점을 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출판사를 하게 되었다고해서 의외였다.

 

QnA 시간. 출판업 경력과 인맥 없이 책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돌아온 답은 유쾌했다. 운이 좋았기도 했고, 오히려 출판사에서 일했다면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지 못했을 거고,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드는 줄도 알았다면 도전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망해도 괜찮으니까 해보자는 마음으로 했다고.


오래 쌓아온 커리어와 전혀 다른 분야에 새롭게 뛰어든 사람들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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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2023

 

 

20대는 무엇이든 많이 경험해 보라고 온 사회가 도전을 응원해 주지만, 커리어가 무르익는 30-40대가 되면 점차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주변 친구 동기들은 승진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는데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 늦은 거 아닌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자기 의심과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충고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

 

J와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J는 대학, 대학원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고 동기들 대부분 개발자로 일한다. 연봉도 높고 수요도 많아 국내는 물론 해외취업도 많이 한다고 했다. 같은 업계에 있으면 자연스레 소식을 주고받는데 몇 년 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나중에 전혀 다른 직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 친구는 영어 선생님이 되었고, 또 다른 친구는 바텐더가 되었다면서.

 

"지금 우리 나이가 그런 것 같아. 뻔히 보이는 길을 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느냐."

 

자아가 단단하지 못했던 어리숙한 20대에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와 내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고 으레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모습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30-40대가 되어 나를 데리고 산 시간이 쌓일수록 "나 데이터"가 축적되고, 무엇을 잘하는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점차 분명하게 알게 된다.

 

J의 사라진 개발자 동기들은 계속 개발자로 사느냐,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느냐 고민했을 것이다. 대학원까지 공부한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직업이 보장해 주는 높은 연봉과 안정성 때문에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갈수록 점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점차 삶의 방향이 예측가능한 범위에 놓이며 얻게되는 "안정성"은 새로운 도전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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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alia, Perth, 2023

 

 

업무시간 단축으로 나름의 셀프 갭이어 시간을 가지고 있는 요즘. 바로 주변만 둘러봐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과 다른 모습으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퇴사 후 목공을 배워 공방 사장님이 된 전직장 동기 K도, 딤섬 요리사가 된 D의 남자친구도,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카페를 차린 지인,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친구도 다들 20대에 해온 커리어와 전혀 공통점이 없는 새로운 일을 30대에 처음 시작했고 앞두고 있다. 

 

요리와 베이킹을 좋아하는 J는 언젠가 카페를 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J가 개발자든 카페 주인이든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어떤 삶이든 응원해주고 싶다. 돈과 안정성은 삶에서 중요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니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과 안정성이 주어진 다음에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남는다.

 

우리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흐린 이곳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한 사람들의 삶 그 자체로 용기가 된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돼.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는 없어. 우리는 원하는 어떤 삶의 형태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서. 

 

 

 

에디터 명함 최은지.jpg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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