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화 파헤치기, 티치아노, 루벤스, 반 다이크의 기마 초상 [미술/전시]

말을 탄 모습의 초상화는 왜 그려졌을까?
글 입력 2023.09.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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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161-180AD, 카피톨리니 미술관

 

 

이번 편은 기마 초상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황제나 귀족 등 높은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말에 올라탄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기마 초상은 그 기원이 고대 그리스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회화가 아닌 조각으로 기마상이 여럿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Equestrian Statue of Marcus Aurelius>이다.

 

175년경에 세워진 이 거대한 청동 기마상은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습을 주조했다. 이 기마상은 현재 카피톨리니 미술관에서 4.24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며 황제의 신성한 힘과 웅장함을 과시한다.

 

 

 

<카를 5세의 기마상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


 

Emperor Charles V at Mühlberg.jpg

티치아노, <카를 5세의 기마상>, 1548, 프라도 미술관

 

 

본격적으로 기마상이 그림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시기는 바로 르네상스였다. “초상화를 통해 보는 화가와 후원자” 편에서 잠깐 소개한 바 있는 티치아노의 작품 <카를 5세의 기마상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1548)이 사실상 기마 초상 전통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래 티치아노의 기마 초상을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에서 보았던 황제의 신성한 힘과 웅장함이 그림에 녹아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발이 들린 말의 모습과 힘차게 앞으로 전진하려는 자세가 두 황제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는 듯 하다.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Charles V, 1500-1558)는 광범위한 영토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였다. 그러한 힘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카를 5세는 말에 올라타 기다란 창을 들고 있다.

 

하지만 당시엔 카를 5세가 들고 있는 기다란 창보다 짧은 길이의 창을 주로 사용했고, 기마 초상 전통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무기가 아니였다. 긴 길이의 창은 고대 로마시대에 주로 사용된 무기로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는 창을 실질적인 무기가 아닌 상징적인 무기로 해석했다. 카를 5세는 종교개혁에 대항해 반종교개혁을 지지했고, 정통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수호자였기 때문에 창은 이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써 기능한다.

 

위풍당당한 모습을 한 황제의 모습을 조금 더 살펴보면, 그는 최고 지위를 가진 통치자를 뜻하는 붉은 띠를 투구와 가슴에 두르고 있다. 더불어 화려한 장식의 갑옷과 마구에서도 황제의 위엄과 절대적인 권력을 암시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림의 배경 설정도 흥미롭다. 왼쪽은 울창한 나무들이 서있는 어두운 숲으로 묘사되었고, 그에 비해 오른쪽은 해가 떠오를 듯이 밝아지는 평지이다. 어두운 숲에서 밝은 풍경으로 나오는 카를 5세의 모습은 1547년 뮐베르크 전투에서 승리한 영광을 은유한다.

 

이처럼 화가는 종교개혁에 대항해 가톨릭 신앙를 지키고자 했던 카를 5세를 초상화에서 기사이자 위대한 통치자로서 표현했고, 황제는 이 그림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레르마 공작의 기마상 Equestrian Portrait of the Duke of Le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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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 <레르마 공작의 기마상>, 1603, 프라도 미술관

 

 

다음 살펴볼 작품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기마 초상이다.

 

화가 루벤스의 생애와 작품활동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작품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레르마 공작의 기마상 Equestrian Portrait of the Duke of Lerma>(1603)에 집중해보자. 루벤스는 유럽 대륙 전역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던 화가였다. 루벤스가 20대 중반이었던 1603년에 그의 고용인이었던 만토바의 공작 빈센조 곤자가(Vincenzo Gonzaga, 1562-1612)는 루벤스를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Philip III, 1548-1621)에게 줄 선물과 함께 그를 스페인으로 보낸다.

 

하지만 험난한 여정과 많은 비로 인해 선물로 준비한 그림들이 다수 손상되어버리는 참사가 발생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오히려 루벤스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는 직접 손상된 그림들을 수정하기도 하고 손상 정도가 너무 심한 경우 자신이 원본을 토대로 다시 그린 그림으로 대체했다.

 

마침내 스페인에 도착한 루벤스가 당시 수도였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머무르며 국왕을 기다리던 시기, 루벤스가 재작업한 그림 선물을 보고 놀란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펠리페 3세의 총애를 받았던 레르마 공작(Francisco Gómez de Sandoval y Rojas, 1st Duke of Lerma)이었다. 레르마 공작은 루벤스의 그림을 본 뒤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기마 초상을 의뢰한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레르마 공작의 기마상>이다.


이 작품은 루벤스가 앞선 티치아노의 카를 5세 기마 초상화를 보고 영향을 받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가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당시 티치아노의 그림은 스페인 왕실 컬렉션 아래 있었고, 루벤스는 바야돌리드에서 머무르면서 스페인 왕실이 보유한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루벤스는 티치아노가 만들어놓은 기마 초상의 전통을 따르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녹여냈다.

 

앞서 이야기한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면 화가는 황제의 옆모습을 안정적인 자세로 묘사했다. 반면 루벤스는 각도를 살짝 바꾸어 말을 탄 공작이 관람자를 향해 다가오는 도전적인 자세를 택했다. 자칫 이 구도는 레르마 공작의 체구를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주문자도 말에 비해 자신이 너무 작게 나오는 실망스러운 상황을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루벤스는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만한 화가가 아니었다. 위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영리하게도 그는 말의 앞다리와 목, 머리를 거쳐 안장 위 인물로 이어지는 나선형 구도를 설정해 적절한 비율을 구성해냈다.


더불어 레르마 공작의 머리 위를 보면 왼쪽에는 승리와 평화를 상징하는 야자와 올리브 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오른쪽에는 아치형 구름이 떠있다. 말을 탄 레르마 공작의 모습을 프레이밍하는 이러한 장치는 그의 위풍당당하고 극적인 자세를 더욱 부각시킨다. 이 작품을 본 누군가는 공작의 초상으로는 너무 과한 연출로 보이며 황제의 기마 초상과 대등하게 보인다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 루벤스가 강한 인상을 남기려던 어린 화가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스페인에서 수많은 고위 관료들과 잠재적 후원자들을 만났던 루벤스가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은 레르마 공작에게도, 스페인 왕실에게도 좋은 평가을 받았으며, 티치아노의 기마 초상과는 다른 새로운 기마 초상 유형으로써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기마 초상 전통의 연장


 

새로운 기마 초상 전통은 동시대 화가들 뿐 아니라 후대 화가들에도 큰 영감을 준 것이 틀림없다. 루벤스의 제자였던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1599-1641)는 가장 직접적으로 스승 루벤스의 영향을 보여주는 기마 초상을 그렸다. 아래 작품은 반 다이크의 <생 앙투안과 함께 있는 찰스 1세 Charles I with M. de St Antoine>(1633)로 말에 타고 있는 영국의 국왕 찰스 1세의 자세와 구도가 앞서 살펴본 루벤스의 기마 초상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심지어 인물의 머리 위를 각자의 방식으로 프레이밍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연출마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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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반 다이크, <생 앙투안과 함께 있는 찰스 1세>, 1633, 윈저 성

 

 

지금까지 총 세 화가의 기마 초상을 감상했다. 기마 초상은 단순히 말을 탄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아님을 세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티치아노의 작품에서는 황제 카를 5세의 절대 권력과 가톨릭 신앙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구성과 표현이 두드러졌고, 반 다이크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벤스의 작품에서는 레르마 공작이 지위에 비해 과한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나, 이는 젊고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했던 화가의 야망이 표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마 초상은 모델의 권위와 힘을 강조하고 위엄있는 카리스마를 전달하는 그림으로, 보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고 강력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하나의 선전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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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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